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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 소실형 ㅣ 레드 문 클럽 Red Moon Club
가지오 신지 지음, 안소현 옮김 / 살림 / 2014년 9월
평점 :
일본 추리소설장르는 방대하고 작가층이 매우 두텁고 짜임새가 있고 문체도 좋은 책이 많아서 늘 즐겨읽게 된다. 가지오 신지의 작품은 처음인데 이분의 작품들이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이 곧잘 되었다고 해서 꼭 읽고 싶었다. 부활은 못 읽었지만 이 작품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소실형>은 제목부터가 느낌이 있는 소설이었다. 소실형이라니..소실대탐도 아니고.. 알고 보니 인간이 존재는 하지만 다른 사람에 눈에 보이지도 않고 눈에 띄어서도 안되는 형벌을 새로이 받게 되는 내용이었다.
약간 SF적인 소설인 셈인데 미국의 SF작가인 로버트 실버버그의 '무시형'을 힌트로 삼았다고 소설속에서도 밝히고 있다. 아직 개발중인 완전형이 아닌 형벌로 이 형벌을 택하면 1년의 징역을 8개월로 줄여준다고 하니 누구라도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감옥안에서 징역을 사는 것이 아닌 자신의 집에서 어느 정도의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다니..나라도 소실형을 택할 수 있을 것 같다. 목걸이형의 링을 목에 부착하면 어떤 전파가 나와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 '투명인간'이 되어 살 수 있다. 하지만 눈에만 안 보일 뿐이지 존재는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통사고나 다른 사람과 부딪히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소리가 나지 않는 특수한 신발까지 있어서 완벽하게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한다. 하지만 1미터 이내로 사람이 가까이 있게 되면 저절로 링이 목을 조이게 되어 얼른 간격을 유지해야 하며 목소리를 내어서도 안된다.
사실 괜찮은 형벌이겠구나 했는데 소설을 읽어갈수록 얼마나 괴로울지 상상이 되기 시작했다. 남을 그리워해도 만지지도 목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갑자기 다가오는 사고의 위험에서 늘 조심해야 하고(왜냐하면 사고가 나서 나중에 백골이 되어 링이 목에서 분리될 때까지 사람들은 그의 시체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음식도 정해진 것을 배급받아 와야 하고 티비나 라디오까지 금지된 생활이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운동시간이 있고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하는 감옥이 나을 것 같다. 이렇게 갑갑한 형벌이지만 소설의 내용은 정말 재미있다. 당장 영화화하면 재미있을 정도이다. 다양한 에피소드가 등장하고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방법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서평에서는 자세히 밝힐 수 없지만. 스토리텔링이 매우 잘 되어 있는 소설을 좋아하는데 이 소설도 그렇다. 인간이란 때로는 잔소리가 하기 싫어서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어하는 존재인데 이 소설을 읽고 나니 어느 정도의 부잡스러움은 견뎌야 하겠구나 외로움이 더 싫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