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사는 것의 의미 - 지친 영혼을 위한 여유로운 삶
피에르 쌍소 지음, 강주헌 옮김 / 공명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현대인들은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간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서울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더욱 그럴 듯 하다. 직장다닐때에도 결혼을 하고서는 더욱 아이들을 낳고서는 더더욱..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쉬엄쉬엄 옆을 보며 살아갈 여유는 없다. 일단 휴가를 길게 낼 수가 없고 정말 힐링이 되는 느린 여행을 할 수 없다. 이 책 느리게 사는 것의 의미는 바로 우리가 그런 생각조차 없이 자각도 없이 살아가던 일상의 삐걱거림을 일깨워주고 생각이란 것을 하게 해준다. 케케묵은 그런 책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첫장을 읽어나가는 순간 현대인들의 정확한 일상을 적확하게 지적해 주고 있는 아주 세련된 책임을 깨닫게 되었다.

 

예전에는 한달씩 휴가를 내어 필요한 것들을 그때그때 조금씩 사서 일주일동안 한 곳에서 적응을 하며 또한 남은 일주일동안 그렇게 쉬엄쉬엄 살다가 다시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집으로 향했다면 현대인들은 몇박 몇일을 그것도 도착하자마자 바로바로 스케줄대로 볼 수 있는한 즐길 수 있는한 최대한으로 하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우리 가족의 여행만 봐도 그렇다. 짧은 일정속에 최소한의 동선을 짜며 최대한 많은 곳들을 들르고 체험하려 애쓴다. 맛집이라고 소문만 곳을 지나치지 못하고 말이다. 그냥 발길닿는 대로 가다가 맛있어 보이는 곳에서 한적한 곳에서 하는 식사는 언제 해봤던가..

 

피에르 쌍소의 책은 제목처럼 느리게 사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준다. 예전에 읽었을 때에는 왜 이 책이 지루하다고 여겼는지 도통 모르겠다. 번역의 잘못 때문이었을까. 이번 책은 정말 달랐다. 한국외대 불어과를 졸업하고 불어번역에 정통한 강주헌님의 새 번역으로 만나는 느리게 사는 것의 의미는 아주 재미있기까지 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잠시나마 한껏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게는 분명히 있을 것인데 정말이지 요즘은 그런 사실을 너무나 잊고 살고 있었다. 권태로움은 죄악인 것처럼 여기는 현대의 기조에서 권태야말로 나를 노예처럼 부려먹으려는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을 길이란 것을 나 역시 깨닫는다. 물론 무턱대고 권태롭게 게으르게 살라는 책은 아니다.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놓치고 살아가는 것들을 음미하며 살아가라는 뜻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피에르 쌍소가 주장하는 몽상이라는 것은 꽤나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어린 몽상가들은 현대의 서울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다섯살만 되어도 영어유치원이니 온갖 사교육을 해야만 아이가 잘 살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예전처럼 해질때까지 뛰어놀고 장난감이 없어서 박스같은 것으로 만들어서 놀고 또한 심심해서 책을 읽었던 그런 아이들을 찾기가 힘든 것이다. 몽상가들에게서 진정한 창의성이 나온다.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같은 사람들이 사교육으로 점철된 그런 어린시절을 보냈을까? 결코 아니다. '몽상의 시간은 일상적인 것을 재창조하고 새롭게 시작하도록 도울 것이다.' 라는 쌍소의 말에 적극 공감한다. 아들 딸 모두 초등학교 3,4학년때까지는 거의 심심하게 보내게 했다. 그 이후는 나도 보장할 수 없지만. 암튼 그래서인지 책을 읽고 몽상하는 일들은 충분히 했던 것 같다. 그것이 앞으로의 삶에 큰 원동력이 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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