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그림자의 춤

행복한 그림자의 춤
앨리스 먼로 지음, 곽명단 옮김 / 뿔(웅진) / 2010년 5월

그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이 책을 읽지 못했을 것 같다. 이미 그녀는 맨부커상, 단편계의 저명한 상인 오헨리상을 수상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책의 표지를 가지고 우리에게 오지 않았다면 앨리스 먼로라는 걸출한 작가의 단편소설들을 읽지 못했으리라. 왜 진즉 그녀를 몰랐을까. 첫번째 작품인 '작업실'을 읽자마자 드는 생각이었다. 주부로서 그리고 소설을 쓰고 싶은 작가로서 작업실에 등장하는 한 여성작가는 왠지 앨리스 먼로 그녀 자신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무난하게 나른한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차 한잔이 생각나는 그런 작품을 읽다가 이내 이야기가 전개가 될수록 자세를 고쳐앉고 다시 한 번 집중하며 읽었다. 그리고 인간이란.. 오해란 집념이란 또 집요함이라는 단어가 주는 것이 이토록 무서운 것이었구나.. 호러작가의 무서운 소설도 아니었지만 작업실을 둘러싼 한 남자의 집요함이 무서움을 낳았다. 편안하게 작품을 구상하고 차를 마시며 타이프를 치고 어서 완성하고픈 작품이 있었을 한 여성작가는 완전히 건물주인에게 질려 작업실을 도망치듯 나와버리게 되는 장면에서 허탈함과 후련함을 느꼈다. 이 짧은 단편소설에서 이렇게나 많은 감정과 재미와 흥분을 느끼다니.. 앨리스 먼로가 왜 노벨문학상을 타게 되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작품 또 그 다음..그 다음..와..정말 대단한 작가이다. 과연 그녀는 너무 늦게 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떠돌뱅이 회사의 카우보이'역시 왠지 모르게 나의 인생과 무관하지 않다..라는 느낌이 드는 데쟈뷰가 떠오르는 작품이었다. 미국의 도시와 마을 사이를 떠돌며 힘든 시기를 다같이 겪으며 영업판매를 하러 집집마다 다니는 그 시절의 이야기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지역과 시대의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아마도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더욱 알게 되는 가장이라는 아버지의 고된 일상과 애환과 나의 학창시절의 친했던 이성친구들의 생각이 나서였을까..가난한 영업사원의 부인은 몰락한 집안의 가난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외출할때마다 가장 멋지게 치장을 하고 아이들도 그렇게 꾸민다. 하지만 남편은 쌔가 빠지게 영업을 하고 특유의 능청을 부리고 노래를 부르는데.. 부인은 남편의 그런 힘든 일상들을 같이 떠맡으려 하지 않는다. 어느날 오후에도 부인과 함께 나가기를 원했지만 부인은 누워있겠다고 하고 아이들만 남편과 함께 보낸다. 아이들을 데리고 이집 저집으로 부인 어느 회사의 누구입니다. 이 제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렇게 영업을 하지만 물건들은 하나도 팔리지 않고..둘째가 요청하면 요청하는 대로 한곡조씩 뽑는 아버지의 자상함이 참말로 느껴진다. 그런데 부인은 왜 혼자만 현실을 부정하고 살까.. 이 착한 가장은 고교동창인 듯한 한 여자의 집을 지나다 동시에 알아보고 집으로 초대를 받는다. 식사를 대접받으며 아이들은 아빠를 관찰한다. 아빠는 오랜만에 신이 나서 웃고 떠들고 여자동창과 춤을 추지만 이내 집으로 가야한다며 일어선다. 그 여자동창은 아쉬어하고..화자인 첫째딸은 저 여잔 헛다리를 짚은거야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어느 더운 여름날의 모습이 정말 눈앞에 그려지도록 그리고 묘사와 상황이 너무나 조용하면서도 많은 사실들을 시사해주고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이토록 짧은 단편에 이렇게나 많은 감정들을 추억들을 생각나게 하다니..'태워줘서 고마워' '어떤 바닷가 여행' 등 다 좋다. 앨리스 먼로의 단편집이 계속 출간되기만을 기다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