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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은 지옥이다
비프케 로렌츠 지음, 서유리 옮김 / 보랏빛소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읽다보면 있을 수 있어 있을 수 있어라는 말이 떠오른다. 강박증은 누구에게든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 특히 트라우마를 지닌
사람들에게는 가까운 가족을 잃었다거나 사고를 겪었다거나 계속 참기만 한다거나 속으로 삭히는 사람들.. 그리고 공황장애로 나타나기도
우울증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본인이 모르고 있다가 어느 순간 펑 하고 터질 때도 있는 것이다. 감기도 초장에 잡는다고 정신적인
감기도 초기에 잡으면 크게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비프케 로렌츠.. 본인이 살인강박증에 시달렸던 과거가 있다고 한다.
글을 쓰면서 그때가 생각나 괴로웠을텐데 그 괴로움을 딛고 훌륭한 추리소설을 써냈다. 원래 소설을 쓰던 분이라 확실히 문체라든가
심리묘사가 탁월하다. 처음에는 그냥 문학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주인공 마리가
정신병동 감옥에서 귄터라는 남자가 자꾸 자신을 귀찮게 굴고 그의 더러운 몰골을 보고 구토를 할 것 같을때 그런 심리묘사가
탁월하다. 그러다가 정신병동의 의사인 팔켄하겐을 만나 드디어 자신의 일을 털어놓기 시작하고 전남편인 크리스토퍼가 뒤늦게 그녀에
대한 일들을 알고 면회를 오면서 그녀의 과거의 이야기들이 펼쳐질때도 그러했다.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 셀리아의 안타까운 죽음.
그것도 자신의 유치원생들을 돌보다가 조금 늦게 가서 생긴 사고라는 자책감에 시달리다 크리스토퍼와 이혼을 하게 되고 그 후에 엄청난
살인강박증을 가지게 되고(이 때의 살인강박증이 가져오는 상상들이 무서웠다 이 정도로 사람을 괴롭히는구나 하고)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상에서 엘리라는 여인을 만나 그녀의 조언을 듣게 되고..그러다 소설가인 파트릭을 만나게 되는 과정들이 그냥 소설처럼
너무 재미있게 읽혔다.
그러다가 중후반을 거치며 급속도로 스릴러적인 작풍을 띠며
추리소설가로서의 진면목을 발휘한다. 오히려 이런 것이 좋았다. 무미건조하게 나 추리소설이요 하는 작품들에 조금 지겨워질 무렵에
너무나도 멋진 작품을 발견했다. 왜 독일에서 넬레 노이하우스를 제치고 독일의 최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읽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처음부터 눈을 뗄 수 없게 그렇다고 마구 사건이 몰아치는 연쇄살인마 이야기도 아닌데 끝까지 정말 잘 읽힌다. 후반으로
갈수록 추리소설에서 이제 범인이 드러나는 부분은 어쩔 수 없이 기존의 법칙들을 따라가는 것 같은게 아쉽지만 어쩌랴..그러한
반전같은 상황이 아니면 너무 밋밋할 수도 있으니까. 그 반전이라는 것도 추리소설 매니아라면 충분히 미리 짐작할 수 있지만 마리의
과거, 마리와 의사의 대화, 전남편 크리스토퍼, 죽은 남자친구 파트릭과 사귀게 되는 이야기, 엘리와의 인터넷상의 대화, 정신병동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또 다중인격인 한나와의 우정 비슷한 이야기, 마리와 딸 셀리아와의 행복한 순간 등 소설 중간중간이 너무나
좋아서 계속 읽고 싶어지는 소설이었다. 그녀의 과거였기에 너무나 생생했던 살인강박증에 대한 추리소설.. 이런 소설이 또 나오긴
힘들겠지? 다른 소재로 쓴다면 이렇게 못 쓸 것 같다. 요즘 읽은 추리소설중에 제일 좋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