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대왕
호어스트 에버스 지음, 문항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베를린 대왕. 싱긋 웃고 있는 초로의 남자를 그린 초상. 다 읽고 나니 이 모든 것들이 나도 역시 한 쪽 눈을 찡긋거리며 웃듯이 이해가 된다. 근래 읽어본 소설 중에선 가장 재기넘치고 재미있었고 소설다웠던 소설. 호어스트 에버스의 팬이 되어버렸다. 택시기사와 집배원으로 일했던 경력, 그리고 만담가. 이 모든 삶의 경험들이 이 책을 풍성하게 만들었으리라. 특히 주인공이 처한 상황, 대화들은 정말 웃겼다. 그러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진지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도 하고 은퇴한 경감을 통해서 진지한 발언들을 듣게 되기도 한다. 베를린이란 독일의 가장 중심적 도시로 오게 된 경감 라너. 그는 촌뜨기란 소리를 듣지 않으려 애를 쓰지만 동료들은 이미 뒤에서 라너를 조종하고 비웃으려든다. 하지만 악질적이지는 않다. 그냥 읽는 독자들이 낄낄거리게 만들 정도..


이 소설을 통해서 드러나는 콜베의 행동거지나 라너를 놀리는 에피소드는 정말이지 입체적이고 유머스럽다. 만담가라는 것이 괜히 되는 것은 아닌가 보다. 그리고 소설 곳곳에서 큭큭하고 웃음이 터져나는데 라너경감이 변변치 못한 순찰차를 끌고 다니다 급하게 사건을 쫓을 일이 있어 아무곳에나 주차한 곳이 하필이면 교통마비를 야기하는 곳이어서 견인되어 버리고 그 일은 일간지에까지 실리게 된다. 라너의 작은 증명사진과 함께. 콜베와 다른 부하들은 이 일로 또 하나 라너뒤에서 웃을 일이 생기고..은퇴한 경감 림쇼프를 찾아가는 길에선 림쇼프의 집을 찾는 탐문중에 만난 아주머니가 라너를 의심쩍게 쳐다보며 믿지 않으려 하자 자신을 설명하려고 애쓰는데 결국 그 아주머니가 나중에 하는 말-"그리고 여기서는 아무 걱정 안 해도 돼요. 아무 데나 주차해도 사진찍을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 아주머니에게 자신이 진짜 경감이고 좋은 사람이라고 밝히려 애썼던 것은 이렇게 허무하게..이런 상황들이 너무 웃겼다. 하지만 재미있는 대화나 상황은 소설에 그냥 녹아나고 소설이 나아갈 방향을 절대 잊지 않는다. 다 읽고 나면 모든 아귀가 딱 맞는 느낌이 든다. 대단한 구성력이다. 그리고 거의 모든 인물이 마치 살아있는 듯 입체적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 참 재미있다. 도시의 뒤에서 거래된 뒷거래, 그리고 음모이론 아니 실제로 있을 법한 일들.


진정한 베를린의 대왕은 마칼리크 영감이었을까. 쥐를 혐오하기 보다는 오히려 사랑했던 마칼리크. 그의 돈버는 방식과 바람기. 그 모든 것이 이 소설의 시발점이 된다. 맘마라는 단체는 무엇인가. 림쇼프의 과거에 있었던 안타까운 소녀의 일은. 그리고 마칼리크의 남겨진 심약한 두 아들 그 중에서도 특히 막스는 참 인간적이다. 그리고 마칼리크의 두뇌라고 할 수 있는 마테스 부인 그녀는 어디까지 이 비밀을 알고 있을까. 그 밖의 라너경감과 함께 하는 경제사범팀의 여형사 카롤라, 폴란드 출신의 해충 방제사 토니와 그의 부하인 게오르크 볼터스(라너경감의 고향친구이자 이 소설을 이끌어 가는 또 하나의 중심인물)의 이야기는 흩어졌다가 모이고 그러면서도 정신없지 않고 결말을 향해 착실히 모여간다. 정말 웰 메이드 소설이다. 소설을 쓰려면 습작같은 소설말고 이런 소설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소설도..


읽다가 공감했던, 여운이 남았던 부분을 끝으로 적어본다. 128페이지. 

- 라너는 옛날 교관이었던 롤프 페터센이 교육 중에 했던 말이 생각났다. 페터센은 함부르크에서 오랫동안 형사로 일하다 말년에 좀 편하게 쉬라는 뜻에서 클로펜부르크의 경찰학교 교관으로 발령받아 온 그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수사관이었다. 그는 이 직업에 몸담은 사람들을 밤에 뒤척이게 만드는 것은 그들이 수사 중에 맞닥뜨리는 잔인성, 폭력, 부도덕성, 변태성 같은 것이 아니라 무의미함이라고 했다. 라너는 자기 질문이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물어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이렇게 입을 열었다. "아이의 부모는 잘 견뎌 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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