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경계

화려한 경계
조정현 지음 / 도모북스 / 2012년 11월

별로 광고랄 것도 소설에 대한 해설서나 추천서도 없이 읽어본 조정현님의 <화려한 경계> 라는 소설은 올해 나왔던 이정명님의 '별을 스치는 바람' 보다 더 재미있었고 놀라웠던 역사소설이었다. 수양대군의 큰며느리이자 한확의 딸이며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는 드라마의 단골 여걸이다. 그런데 인수대비의 두 고모가 중국으로 공녀로서 간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고려시대에만 있는 줄 알았다 나도.. 한규란, 한계란은 한확의 여동생들로서 한규란은 황제가 죽자 같이 순장을 당한 비운의 여인이었고 한계란의 삶 역시 중국의 연경(지금의 북경)에 매여있는 것이었다.

그들의 하녀인 목단이나 계아의 이야기와 여러 여인들의 이야기가 맞물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오히려 그런 퍼즐같은 구성으로 읽는 재미를 더했다. 특히 한계란의 시점으로 말하는 대목은 몰락해가던 양반가문에서 언니인 한규란이 중국의 황제에게 시집을 가고 그로 인해 집안이 부와 명성을 가지게 된 것과 오라버니인 한확은 언니인 규란의 당부대로 자신을 잘 대하고 있지만 언니 덕분에 조정에 나아간 오라버니를 못마땅하고 미덥지 않게 여기는 부분들이 그리고 당돌한 계집으로 자라난 모습들이 마치 인물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잘 묘사하고 있어서 그 시대로 빨려들어가는 듯 했다. 거기에 목단이라는 맹랑한 여종과의 대화라든가 목단의 엄마이자 자신의 유모가 계란이 하는 말과 행동을 보고 살포시 옆으로 한숨을 짓고 다시 제대로 교육을 시키려는 대목은 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과 그녀의 유모의 이야기 같아서 미소가 지어졌다.

권현비마마인 권소옥과 그녀를 모셨던 여진향이나 최순화같은 공녀들은 과연 역사상에 정말로 있었던 인물들일까. 책의 뒷면을 보아도 부록같은 것이 없어서 아쉬웠다. 저자가 어느 정도는 역사이고 어디까지가 허구로 쓴 것인지 너무 궁금했는데.. 중국의 영락제의 후궁들이었던 그녀들이었기에 역사속의 인물은 맞을 것이다. 여미미라는 여씨의 난이 있었고 여미미가 좋아했고 미워했던 여진향은 죄를 뒤집어쓰고 모진 고문을 당했고 권현비마마는 독살을 당했다는 것도 역사속 진실일 것이다. 소녀시절을 조선에서 아름답고 활기차게 보냈던 그녀들은 말이 좋아 후궁이지 팔려간 신세나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을 소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녀들의 기구한 삶과 운명은 조선시대에 과연 이런 일이 있었구나..후대의 우리들에게 많이 알려져야 할 사실인 것 같다. 이 소설을 통해서 새로운 사실들을 알았고 가슴 아팠고 너무나 아름답고 처연하게 읽혔다. 역사속에서 사라진 그녀들의 이름과 있었던 일들이 오래 기억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