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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전기 - 축복과 저주가 동시에 존재하는 그 땅의 역사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지음, 유달승 옮김 / 시공사 / 2012년 5월
평점 :
예루살렘. 현 기독교인들에게 베들레헴과 예루살렘 이라는 도시는 낯설지 않다. 하지만 역사속 예루살렘 지역의 역사와 운명에 대해서는 얼마나 무지한가. 기독교는 유일무이한 종교라고 믿고 싶지만 실제로 아브라함의 종교의 한 갈래이다. 성경 특히 구약성경은 유대인의 역사이다. 이런 아브라함의 종교들이 충돌하는 각축장이자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 근본주의의 성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이 곳은 각 제국들이 탐을 내는 장소이며 각각의 종교가 저마다 자신들의 성지라고 주장한다. 즉 예루살렘은 하나의 신이 사는 집이자 두 민족의 수도이며 세 종교의 사원인 것이다. 실제 예루살렘에 가보면 이 곳은 지상의 곳임과 동시에 천상의 도시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아마 성스러운 여러 건축물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유대인의 가정에서 태어나 예루살렘에 대한 태생적인 호기심과 관심을 가지고 역사적 자료를 수집해서 예루살렘의 역사를 쓴 나름대로 세 종교 어느 곳에 치우치지 않도록 중립적이고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는 책인데 무려 참조문헌까지 하면 900페이지가 넘는 대작이다.
기독교인인 내가 아는 헤롯왕은 한 명 뿐인데 이 저서에는 엄청나게 많은 헤롯이 등장한다. 세례 요한을 죽이고 그 목을 살로메에게 주었던 그 헤롯은 바로 누구인가. 그 부분을 찾아 읽는데만도 한참이 걸렸다. 유대의 헤롯왕의 계보는 아주 복잡해서 따라 읽어가는 데만도 머리가 아팠다. 내가 왜 이런 역사까지 읽어야 하는가. 이 책은 예루살렘의 역사를 모두 아우르기로 작정했나 보다. 중세의 가을 같은 저서처럼 읽다 보면 요점을 알수 있는 그런 저작물이었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이런 역사서의 특징이 보통 누가 이랬고 또 저랬다는 바로 그 세밀한 역사를 훑어보는 묘미가 있는 것 아닌가. 인물들의 족적을 따라가다 보면 흥미로운 역사 속 사건을 목격할 수 있고 역사 속에서 내가 마치 뛰어 노는 것 같은 유희적인 감정도 느낄 수 있다. 악랄하고 잔인한 헤롯들과 덜 잔인한 헤롯들 사이에서 흥미롭게 읽다 보면 드디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 200페이지쯤 이르러서이다. 확실히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보다는 지루하지만 이 책도 비슷한 계통의 책이다. 즉 1권에서 10권짜리 시리즈를 한 권에 묶어버렸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두꺼운 것이다. 예루살렘의 역사가 어디 몇 백 페이지에서 다 규명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는 세례 요한의 어머니와 사촌이었다. 예수는 나사렛에 와서 사촌 요한의 설교를 들었고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았다. 로마의 명령을 받았던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자는 헤롯 안티파스, 성경속에서의 그 헤롯이다. 당시 로마의 왕은 티베리우스였고 아버지 헤롯의 왕국 전체를 안티파스에게 주었다. 여기까지는 성경의 내용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차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예수가 태어나자 예수의 소문을 듣고 헤롯이 비슷한 연령의 다윗 가문의 아이를 제거하기 위해 모든 신생아를 학살했다고 하는데 실제 후대에 그 증거는 없다고 한다. 바로 이 헤롯은 헤롯 안티파스의 아버지인 헤롯이며 그때 이미 죽어가고 있었다. 지금 봐도 희한한 병으로 살아있는 썩은 시체와 같은 모습으로 부패되어 갔다고 한다. 내장이 타는 듯하고 온몸이 가렵고 액체가 흘러내리며 부종이 부패로 이어지고 곪아 문드러지고...무슨 병이었을까. 천연두는 아니었을까. 이때 18살의 장남인 아르켈라오스는 아버지의 죽음에 춤을 추고 즐거워했다고 하니 헤롯 가문의 기괴함은 그 이전 페이지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지만 놀라울 뿐이었다. 이 10대 폭군 장남은 착실한 동생 필립에게 책임을 맡기고 로마에 왕위계승을 승인받기 위해서 떠났는데 바로 그때 막내인 안티파스가 먼저 로마로 달려가 왕국을 차지하려 했다고 하며 후에 바로 이 안티파스가 세례 요한을 죽이는 헤롯왕이 된다. 아버지 헤롯의 모든 것을 안티파스가 물려받고 중년에 조카인 헤로디아와 사랑에 빠지게 되며 헤로디아의 딸인 살로메가 일곱 개의 베일을 벗으며 추는 춤에 매혹당한 헤롯이 무슨 소원이든 들어준다고 하여 세례 요한의 머리를 달라는 소원을 빌었다는 것이다. 이때의 요세푸스의 기록과 살로메의 인생이 짧게 아래 주석에 달려 있는데 무희에서 여왕으로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시 헤롯 가문에는 살로메가 여럿 있어서 확실하지는 않을 것 같다.
성경과 이슬람과 실제 역사속의 예수의 모습과 헤롯 아그리파의 이야기와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 체제 그리고 예수 종파의 분열까지 읽다 보면 성경속의 단적으로 알고 있던 예수님의 모습을 역사 속에서 재조명하는 의미가 있었다. 그리스도교의 창시자는 바로 바울이다. 우리가 성경속에서 존경해 마지 않을 수 없는 인물 사도 바울. 성경속에 바리새인으로 알려진 바리사이파의 이야기. 이 책은 로마의 역사가 아니므로 헤롯 아그리파의 누이인 베레니스 여왕의 이야기는 매우 생소하다. 하지만 그만큼 흥미진진한 역사가 펼쳐진다. 요제푸스로 하여금 '유대전쟁사'를 집필하게 한 티투스는 예루살렘의 왕이며 기원후 70~ 312년의 이야기 역시 매우 파란만장하다. 베레니스는 오빠인 티투스와 결혼을 하며 유대인의 클레오파트라라고도 할 수 있는 베레니스의 삶이 그려진다.
그리고 이 시기에 이교들이 난립한다. 별의 아들 시몬이니 주피터 성전이니 그노시스파니 마니교니 미트라교들이 그리스도교보다 득세를 했으나 313년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그리스도교만 인정했으며 일요일을 안식일로 선포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지금의 그리스도교와는 매우 달랐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그리스도교를 태양신과 동일시 하기도 했으며 어머니인 헬레나가 초기 그리스도교 개종자여서 아마도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것 같다. 그리고 역사 교과서에서는 나와 있지 않은 콘스탄티누스의 잔인함도 엿볼 수 있다. 자신의 왕권이 바로 그리스도교에서 뒷받침 된다고 믿었고 자신의 아들이 자신의 후처를 강간했다고 믿어 아들을 처형시키기도 하는 등 무서운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의외였다. 또한 피식 웃음이 나왔는데 최초의 고고학자 헬레나 라는 소제목 때문이다. 황제의 어머니인 헬레나는 엄청난 고고학적 성공을 거두는데 예수님의 처형 당시에 쓰인 나무팻말과 실제 사용된 못을 발견했던 것이다. 또한 예수 생애의 모든 유적지를 방문했다는 헬레나 덕분에 그리스도교가 창대하게 된 불씨가 된 것 같다. 이후의 예루살렘의 역사들을 모두 적을 수는 없고 이런 식의 예루살렘 전기는 엄청나게 두꺼운 책임에도 어떤 부분에서는 술술 읽혀지고 어떤 부분에서는 멈칫 해진다. 하지만 한번쯤 예루살렘의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이 한 권으로 어느 정도는 지적 충만감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로마인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재미있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