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녀 - 궁궐에 핀 비밀의 꽃, 개정증보판
신명호 지음 / 시공사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신명호씨는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국사의 한 단면을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내게 각인이 되었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읽었던 <조선공주실록> 덕분이다. 이 책에서 왕의 딸로서 살았던 수많은 공주들과 옹주들의 삶을 추적하고 단 몇 줄이라도 찾아내어 기재했던 공주들의 삶이 세월을 초월해서 약간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런게 역사를 아는 묘미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지금은 많지 않은 자녀들이 혹시라도 사고나 질병으로 죽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고 또 그만큼 거의 모두 생존하게 되고 아이에서 성인이 된다. (나조차도 내 자식이 그렇게 된다면 살아갈 자신이 없다) 조선 시대에서는 성인이 된 공주나 옹주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많은 아이들이 질병으로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기록으로만 남아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신명호씨가 이번에는 궁녀들의 역사를 들고 찾아왔다. 사실 이 책은 2004년도에 출간된 <궁궐의 꽃, 궁녀>의 개정증보판이라고 한다. 신간으로 다시 재출간된 덕분에 잊혀질뻔 한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한국의 과거의 역사를 연구하고 집필한다는 사람들 중에서는 진정성이 조금 아쉽달까 너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역사의 한 부분만을 들춰내는 그런 책들이 많이 나왔다. 그런 가운데 이 책은 진정 세분화된 역사속 뒤안길에 파묻힐 뻔한 이야기를 발굴하는데 의의가 큰 그런 책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책의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는 부분이지만 구중궁궐속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궁녀들에 대한 기록은 조선의 놀라운 역사 기록 속에서도 찾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어느 이상은 알 수가 없는 한계에 부딪혀 버린다. 실록이나 야사의 단 몇줄로서는 그녀들이 입궁한 나이도 자세한 사건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궁녀들은 나인이나 상궁들로서 후에 후궁이 되는 인물도 있지만 대개는 궁중의 복식과 음식 등 궁중문화를 만들어내는 주역들이다. 하지만 그녀들의 이야기가 조선 시대안에서의 역사서에 자세히 실리지 않는 것은, 왕의 옆에서 시중을 들면서 알게 되는 비밀이나 여러가지 왕의 사적인 일들을 관장하며 돕게 됨으로서 왕의 치부를 알게 되는 여인들의 이야기임으로 감춰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인천하' 등 사극이나 사극영화를 통해서 왕비와 후궁과 궁녀들의 삶을 많이 아는 것 같지만 드라마화하면서 상상력이 더해지는데 드라마를 조선의 역사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조선 시대의 궁중 여성들이 조명되는 것 이상으로 저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좀 더 많은 자료들이 발굴되어서 이 부분을 끊임없이 연구하는 학자들이 생겼으면 좋겠다. 우리가 사극을 통해서 나쁜 궁녀의 대명사로 알려진 장녹수나 김개시의 이야기가 되풀이 되는 것은 이처럼 왕가를 저주하고 반기를 드는 반정을 일으킬 수 있는 궁녀들의 이야기는 왕의 반대세력으로서 실록등에 실리기 때문에 그나마 자료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궁녀들의 이야기는 이런 궁녀들이었던 것이다.

 

1장에서는 그야말로 역사의 파편속에서 찾아내는 단편적일지라도 진실에 가까운 궁녀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고 2장에서는 나쁜 궁녀의 대명사인 장녹수와 김개시의 이야기가 그리고 조선의 신데렐라로 사노비에서 후궁까지 오르는 신빈 김씨의 이야기가 실려있으며 이 책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고 놀라운 궁녀의 이야기인 고대수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장이었다. 고대수는 마흔 두살의 나이에 몸이 건장하고 힘이 세어서 남자 대여섯은 너끈히 감당한다고 해서 고대수라고 불리는 무수리 출신의 궁녀가 있었는데 명성왕후 민씨는 고대수를 호위병 정도로 생각했는지 늘 가까이 했다고 한다. 그런데 3일 천하로 끝난 갑신정변의 주역인 김옥균에게 포섭되어서 창덕궁에서 폭약을 터뜨려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을 해냈다고 핝다. 김옥균이 기록한 <갑신일록>에 그 일이 비교적 자세히 실려 있었는데 훗날 3일 천하로 끝난 갑신정변의 김옥균은 자객에게 암살당했지만 고대수는 궁중에서 체포되어 공개처형을 당했다고 한다. 어찌보면 더욱 험한 죽음이다. 단번에 죽는 것도 아니고 그 고통을 겪고 죽다니.. 불쌍하다.

 

그리고 이 일을 해방이후까지 생존했던 조하서 상궁이 어린 시절에 길에 끌려 다니며 산발을 하고 온몸에 피를 흘리며 거리에서 돌을 얻어맞는 고대수를 보았던 기록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역사는 이토록 아귀가 맞아떨어질때 비록 과거의 일이지만 정말 일어났던 일이구나 진짜구나 하는 확인을 하면서 희열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신명호씨의 이 같은 아주 작은 단서들을 모아모아서 집대성하는 책이 나오는 것은 독자로서 크게 반길 일이다. 앞에도 썼지만 더욱 많은 자료들이 발굴되어서 하나하나 퍼즐이 맞아떨어지는 그런 책들이 나와주었으면 좋겠다. 고대수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기록이 많은 것이 아니라서 이 책에서 몇 장에 불과한 내용이지만 흥미로워서 조금 더 자세히 적어보았지만 고대수말고도 많은 궁녀들의 진실이 이 책에 실려있다. 그러니 이런 리뷰만 읽어서는 알 수 없고 이 책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은 직접 읽어야 알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