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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 가족의 성장일기
심재철 지음 / 문예당 / 2011년 12월
평점 :
사람들은 말한다. 혹은 부모들은 말한다. 죽을 고비를 넘긴 내가 무서울 게 무엇이 있겠느냐고 혹은 자살의 유혹을 견딘 내가 무엇을 못 하겠느냐고. 혹은 죽을 뻔한 내 아이는 무조건 건강하게 자라기만 하면 바랄 게 없다고 공부 못해도 좋다고...
누군가에게 하루는 기적이라는 말이 다시금 생각나게 하는 책이었다.
어린 딸을 두고 금지옥엽 육아일기까지 쓰던 아빠였다. 학생운동과 정치적인 행동으로 감옥에까지 갔던 아빠. 그리고 고문을 견딘 아빠. 1991년 12월 30일에 태어난 딸의 육아일기를 장모님께 선물받은 육아 일기장에 써나가기 시작한 것이 1992년초. 그리고 1980년 계엄 치하의 서울에서 학생운동을 하다 합수부 치안본부 특수대로 끌려 가 고문을 당하며 언제 죽을지 몰라 비상사태에 신부님이 예배당이 아닌 곳에서 비상으로 세례를 주던 비상세례까지 받았던 심재철씨. 그 이름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이다.
1980년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학생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바로 그. 이후 MBC기자로 입사하여 방송사 최초로 노사를 만들었던 그다. 책은 1992년도의 육아일기와 1980년도부터의 저자의 삶이 교차로 기술되고 있다. 이 책은 소리소문없이 나와서 많은 이들이 잘 모르고 있지만 한 번 읽은 사람은 딸에 대한 지극한 아빠사랑에 엄청난 감동을 받을 것이다. 그것도 죽을 고비를 넘긴 아빠의...
그 모진 1980년대의 '서울의 봄' 시대를 견디고도 건강하게 살아남았고 어린 딸의 육아일기를 쓰며 방송국을 오가던 시기에 다시 한 번 감옥에 가게 되었고 감옥에서 딸 '정민'이의 돌을 맞은 아빠의 심정이 어땠을까. 그는 애써 담담하게 아내에게 편지를 전한다. 오히려 그 편지가 더욱 슬프게 느껴졌다. 무기수가 될 수도 있다는 어려운 상황에서 다행히도 1993년 1월 20일에 열린 선고 공판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구치소에서 나올 수 있었다. MBC 대파업으로 구속된 사람들 중에서 최후의 출소자였다고 한다. 시인인 이도윤 기자가 툭 던지고 갔다는 시를 나도 읽은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너는 꽃이다' 라는 시이다. <너를 다시 보니 눈물이 난다. ....어린 자식은 철없이 아비를 찾고 모진 땅은 그예 너를 가두었으나 ...너를 보니 눈물이 난다...생략...오랏줄에 피어 시들지 않는 꽃이여 - 이도윤->
시들지 않는 꽃이라는 문구가 의미심장하게 와닿는다. 그는 그 몇개월뒤 생사를 오가는 큰 교통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빗길에 미끄러진 5톤 트럭이 중앙선을 침범하여 그의 소형차를 뭉개버리고 그 차 안에서 누군가가 살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사고...그 사고에서도 그는 죽을 고비를 병원에서 수차례나 넘기며 살아남았다. 그의 부인은 진정한 열사이며 투사이다. 어떻게 그 고난의 세월동안 남편 옆에서 그렇게 굳게 남편을 지킬 수 있었을까. 지금은 정민도 아가씨가 되었고 살아남은 그의 계속된 육아일기 겸 재활일기(1994년부터 계속)는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아빠라면 엄마라면 꼭 읽어볼만한 책이다.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