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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 하루 한 장만 보아도, 하루 한 장만 읽어도, 온종일 행복한 그림 이야기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1년 5월
평점 :
어머나, 멋스런 표지의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의 자주빛과 먹색 표지를 넘기다 그만 실수로 벗겨져 버린다. 어? 알고 보니 띠지같은 표지가 둘러쳐져 있는데 바로 저 표지의 자주색이 아닌 수묵화 부분이 모두 띠지이다. 그냥 하나의 표지인 줄 알았다가 발상의 전환에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만큼 멋진 책이다. 책표지부터 점수를 얻은 이 책은 학고재 주간인 손철주님의 책이다. 한시와 꽃, 그림과 붓글씨에 조예가 깊고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는 스테디셀러의 작가인 손철주님의 엄선된 옛 그림들이 보면 볼수록 정감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주제를 잡아 총 68점의 옛 그림들이 선보인다. 우리가 흔히 보던 김홍도의 씨름이나 혜원 신윤복의 알려진 그림들을 또 보겠구나 생각했지만 선입견일 뿐이었다. 역시 조예가 깊은 분 답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만의 혜안에 콕 찍힌 그림들을 보자마자 탄식이 나왔고 감동이 느껴졌다. 우리나라에 이런 그림들도 있었구나 역시 이래서 옛 그림이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로서는 행운이다. 그가 엄선한 그림들을 보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봄> 항목만 해도 미처 알지 못했던 그림들이 그저 나오는데...심사정님의 양귀비꽃을 그린 '양귀비와 벌 나비' 라는 18세기의 그림은 마치 서양화를 보는 느낌도 났다. 무릇 아름다운 것은 독이 있다는 손철주님의 해석처럼 무엔가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니 언제 한 번 꼭 보러가야겠다.
그런가 하면 18세기 오명현님의 '소나무에 기댄 노인' 은 우리가 사극에서 흔히 보던 짜부라진 갓에 어딘지 헐렁해 보이는 도포를 입고 있는 양반이 수줍게 혹은 나무를 느끼며(?) 기대어 있는 그림이다. 손철주님의 해석을 잠깐 보자. "망건 아래 머리칼이 삐져나오고, 귀밑털과 수염은 수세미다. 취객의 꼬락서니가 민망하기보다 우스꽝스럽다. 이 노인, 그래도 입성은 변변하다. 넓은 소매와 곧은 끝자락에 옆트임 한 중치막을 걸쳤다. 이로 보건대 신분은 틀림없이 사인(士人)이렷다. 중략...멋 부린 티가 난다. 무늬를 넣은 갓신도 태깔이 곱다. 왠일로 벌건 대낮에 억병으로 취했을까. 지금 그는 느슨해진 고의띠를 여미고 있다. 무슨 수상쩍은 짓인가. 아, 안 봐도 알겠다. 소나무 등치에 소피 한방 시원하게 갈겼구나. 꽉 찬 방광을 비운 후련함이 입가에 흐뭇하게 남아 있다. 중략...이 그림은 추저분하지 않다. 외려 정겹다. 중략..무얼 봐서 용서하라고? 코 대고 맡아봐라. 지린내가 안 난다." - 이처럼 손철주님의 해석을 보면서 놓친 부분도 다시 보니 정말 그렇다. 중치막이니 하는 우리가 잘 모르는 옛 말들은 따로 주석이 따라온다. 게다가 얼마나 정겨운 문체인가. 전혀 지루할 새가 없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네 옛 그림은 별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서울에 왔던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들에는 열광하면서 고흐의 노란방을 보며 와 정말 어떻게 저런 색이 나올까 감탄했지만 우리의 옛 그림을 찾아보러 다니지는 않았다. 이 책으로 비로소 우리네 그림도 정말 멋스럽고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평이란게 길어지면 지루해서 한두개만 소개했지만 정말 놀라고 감탄한 작품들이 많았다. 손철주님의 해석에 또 한 번 반하고 말이다. 한 번 실물을 직접 보러 다니고 싶다. 일단 서울에 있는 간송미술관부터 찾아가 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