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작가의 '황토'가 중단편에서 장편으로 복간되었다. 예전부터 장편으로 쓰고 싶으셨다는 '황토'는 과연 어떤 내용일까. 책을 받아보기까지 매우 설레어졌다. 받아본 그 날 바로 읽기 시작하였는데 이제야 서평을 쓴다. 그 자리에서 한시간 반만에 모두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가독성이 뛰어나다. 원래 중단편이었던지라 그 줄거리가 복잡한 것은 아니라서 주인공의 삶과 애환중심이라서 금방 읽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읽으면서 몇 번이나 한숨을 쉬었는지 모르겠다. 우리 30대의 할머니 세대인 '점례'의 이야기가 너무나 가슴 아팠기 때문이다. 그저 수줍고 활발한 소녀였던 점례가 일제강점기에 과수원 주인에게 점례의 어머니가 강간을 당할 뻔하고 그를 목격한 아버지가 일본인인 과수원 주인을 때리고 만다. 일본인에게 반항했다는 그 이유로 끌려간 점례의 아버지를 면회하러 갔다가 일본인 순사에게 찍혀버린 점례. 그녀를 가지고 싶어한 일본인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진 고초를 겪고 이를 보다못한 점례는 일본인의 요구에 응할 수 밖에 없었다. 갖가지 징그러운 기행을 일삼던 일본인 순사에게 매일밤 시달리던 점례는 아기를 가지고 일년만에 아들을 낳는다. 그러다 해방이 되고 하루 아침에 그 일본놈은 도망을 가버린다. 점례와 아기만을 내버린채. 아직 스무살도 안 된 꽃다운 나이의 점례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어머니는 아기를 자신에게 맡기고 개가를 하라고 하고 결국 이모님의 성화에 못이겨 왠 한국인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 점례에게 어울리는 잘생긴 남자였지만 소위 좌익으로서 점례의 친척들까지 고발하게 되어 점례만 난처해 진다. 결국 한국전쟁이 일어나기전에 빨갱이 소탕작전이 일어나고 남편은 역시 도망을 간다. 이번에는 딸아이만을 남긴 채. 좌익인 남편 때문에 또 모진 고초를 겪는 점례를 미국인 장교가 구해주고 역시 점례의 몸을 탐한다. 이번에는 혼혈인 아들을 낳게 된다. 대령인 그는 점례에게 미국물자를 선물하고 결국 또 본국으로 떠나버린다. 떠나기 전날 점례에게 양심은 있었는지 한트럭 물자를 갖다준 그. 그 물자를 가지고 미군물건 장사를 하게 되고 어머니에게 맡겨둔 장자까지 데려오는데...홀어머니들이 자식들을 어떻게 힘들게 키웠는지 간혹 연예인 중에 어렵게 살다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 어머니들의 희생과 사랑에 눈물이 절로 난다. 점례도 마찬가지인 여성이었다. 악착같이 자식들을 위해서 살아남는 여성. 그 곱디 고운 자태는 어느새 사라지고 큰 장남은 혼혈이라 더럽다며 막내를 그렇게 구박을 한다. 장남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은 모른 채 그러는 것이다. 이 모든 꿈같고 장난같은 일들이 점례에게 일어나고 이제 성인으로 키워 낸 점례는 과거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리고 한가지를 결심한다. 자식들은 이런 어머니의 과거를 알지도 못하고 말 못하고 가슴속으로만 끓여내는 우리네 어머니의 아픔을 절절히 그려냈다. 비극적인 과거의 한국사를 점례라는 여인을 통해서 보여준 것이다. 후대에서 편하게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소설이란 장르를 통해서 이토록 생생하게 전달해 주는 조정래 작가님의 역량에 다시 한번 고개숙인다. 많이들 읽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