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읽어버린 왕국, 상도의 최인호가 현대소설로 돌아왔다. 항암치료를 하면서 손톱과 발톱이 빠져나가는 고통에도 컴퓨터로 쓰지 않고 만년필로 원고를 쓰는 수작업을 하던 그대로 2010년 10월 27일에 시작해서 12월 26일에 끝난 두 달 만에 쓴 그의 현대소설이 돌아왔다. 나는 줄거리고 뭐고 상관없이 최인호씨의 현대소설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냥 읽어버렸다. 어른 시절 겨울나그네를 읽고 감동했었지만 이후에 그가 쓴 대하소설들이나 역사소설들이 너무나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기 때문에 별 불만이 없었지만 나도 역시 그의 현대소설을 기다리던 독자였었나 보다. 읽어나가면서 역시. 이 한마디밖에 할 수 없었다.

소설은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 단 삼일동안 주인공에게 일어난 사건, 일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마치 초현실적이고 나른한 오후의 환영을 보는 것처럼 환상적인 작품이다. 카프카의 변신이나 성이 연상되기도 할 정도로 역시 대가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일어난 K는 모든 게 낯설다. 마치 벌레가 되어 버린 카프카의 '나'처럼. 간밤에 벌어진 일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아내도 자신이 매일 쓰던 스킨도 처제도 처제의 결혼식도 모두가 낯설다. 그가 가는 카페에서 그를 유혹하는 듯한 노출증의 저 여인은 대체 누구인가. 정신과 의사인 친구와 그의 정부는 무엇인가. 십년만에 만난 누이는...모든 것이 혼돈 그 자체이다. 읽어나가는 입장에서는 만약 처음 소설이란 것을 써보는 젊은 작가가 쓴 작품이라면 치기어린 유치한 작품이 되었으리라. 하지만 최인호이기에 다르다. 치밀하고 밀도있는 문체는 집요하고 그만의 장점이 돋보인다.

책을 다 읽었건만 뭐가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원래 인간이란 그런 존재가 아닌가. 나 자신도 낯설고 내 가족도 어머니도 언젠가는 낯설었던 때가 있었다. 뭔가 다른 차원에서 살고 있고 원래의 나는 따로 있는 듯한 느낌. 어려서부터 한번쯤 겪어 본 그런 현상이다. 그래서 대단하다. 이 작품을 읽고 나란 인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 빨리 건강을 회복하셔서 다음 작품에서는 다소 난해하지 않고 진짜 재미있는 줄거리가 있는 멜로도 있는 현대소설을 또 한 편 보고 싶은 것이 내 작은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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