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쯤 베벌리 나이두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정권 치하의 남아프리카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백인 아이로서 아프리카 대륙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끔직한 불평등한 처우에 아무런 의문을 가지고 있지 않다가 성장하면서 이 정책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저항운동까지 했던 훌륭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후에 영국으로 망명하여 흑인과 백인 청소년들이 등장하는 흑인에 대한 불평등을 고발하고 사람들의 닫힌 마음을 깨우는 소설을 많이 썼다. 주로 청소년 소설로 분류될 수 있겠지만 이 책 '나는 한 번이라도 뜨거웠을까' 역시 청소년용 소설이며 성인책으로도 손색이 없다. 청소년용으로 읽기에 어렵지도 않고 심하게 잔인한 장면들도 없지만 흑인들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보다 그들을 믿지 않고 오해하고 배신하는 인간군상들의 이야기가 뼛속깊이 다가와서 읽기가 힘든 장면들도 많았다. 폐부를 깊숙이 찌르는 기분이었다. 자신들의 땅에서 노예나 하인이 된 그들은 백인 농장주들을 주인님과 작은주인님이라 부르면서 충성을 다하지만 왜 백인들은 무슨 일만 생기면 그토록 신뢰했던 자신들을 보살피던 흑인들을 끝까지 믿지 못하고 그대로 다른 잔인한 백인 대장들에게 내어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책의 청소년인 백인소년 매슈와 케냐의 원주민 소년인 무고의 우정어린 이야기와 안타까운 이야기들은 케냐에서 60년전에 자행되었던 백인들의 정책과 백인들을 위협했던 저항세력인 '마우마우'에 대한 사실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백인들은 고작 몇십명이 희생될때 흑인들은 마우마우라는 오명을 쓰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문당하고 가족으로부터 어디론가 끌려가 생사를 확인할 수 조차 없는 일들이 자행되고 만다. 1960년대 이후에 드디어 백인들의 잔인한 일들이 세계에 알려지게 되고 케냐에 대한 그들의 압박은 서서히 잦아들 수 있었다. '마우마우'는 선량하게 살아가는 흑인들에게도 공포스런 존재였지만 백인들의 탄압이 훨씬 무섭다는 것을 이 소설은 고발한다. 우정조차도 배신당하는, 그것도 어른들의 세계 때문에 자신의 뜻과는 상반되게 흘러가도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한 청소년들의 모습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눈물겨웠다. 무고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삶은 철저히 파괴되어 버린다. 그의 가족들이 너무나 불쌍하다. 차라리 백인주인을 몰랐더라면 그저 원주민으로 살아갔더라면 이렇게 심한 일을 당하지는 않았을텐데.. 소설중의 누군가 하는 말이 이렇게나 가슴이 아플 줄은 몰랐었다. 이제는 편리해져버린 생활속에서 또 다른 불평불만이 많은 청소년들도 이런 책을 읽게 된다면 자신의 고민이 사치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 같다. 우정과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드는 청소년 소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