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 - 2010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 수상작
에릭 파이 지음, 백선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짧지만 여운이 길게 남는 한편의 소설을 읽었다. 제목은 '나가사키'. 나가사키라면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고 나서 두번째로 폭격을 맞은 장소라고 한다. 히로시마만 익히 알고 있었던 내게 나가사키라는 제목은 지난 2월에 다녀 온 일본여행의 추억과 맞물린다. 물론 그 때 다녀온 지역은 후쿠오카였지만. 이젠 일본하면 다시는 갈 수 없을 것 같은 불안함이 든다. 물론 그들은 아무 문제없이 살아가는 것 같지만. 얼마전에 연간 피폭량을 어린이에게도 대폭 상승한 수치를 허용한 것을 보고 일본은 이제 방사능에서 큰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일본은 가깝지만 멀고 민족성으로도 가까워진다 싶으면 과거의 역사문제나 독도문제 등으로 멀어지는 불가사의한 존재같다. 사랑한다 미워한다가 알맞는...
 
이 책은 일본인이 썼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묘사 하나하나까지 일본의 작은 풍경을 그대로 담아 내고 있다. 프랑스의 저명한 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의 책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에는 말이다. 2월 여행 당시, 일본 후쿠오카 지역의 시골 풍경을 보면서 작은 목조건물이지만 아파트는 거의 없고 도심에도 단독 주택이 많은 것을 보고 다다미방이나 드르륵 옆으로 여는 방식의 벽장 등 이 책의 표지에 등장하는 이 집의 모습이 매우 공감이 간다. 소도시같이 검소하고 작지만 지저분하지는 않고 작은 정원이 있을 것만 같은 단아함이 숨어 있는...이 책에 등장하는 여인도 그렇다. 물론 그 여인이 주인공의 집에 일년이 넘도록 몰래 숨어사는 노숙자와 같은 여인이었어도 그렇다. 생각해 보면 정말 섬뜩하다. 집에 있는 음식들이 없어지고 물건이 옮겨지지만 절대로 큰 티를 내지는 않고 주인이 자리를 비울 때면 스르르 나타나서 돌아다니는 유령같은 존재가 한 집에 같이 살고 있었다면.
 
이 책은 남자 주인공이 웹캠으로 드디어 돌아다니는 존재의 비밀을 알고 경찰에 신고를 하지만 왠지 모를 고통과 외로움에 휩싸이는 장면을 탁월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일본의 따분하지만 아름답고 나른한 날씨나 풍경의 묘사가 탁월하다. 두 주인공의 닮은 듯 닮은 삶의 묘사도 멋지다. 왜 일본인이 이 책을 쓰지 않았을지 일본인 스스로가 분할 것 같다. 실제로 2008년 5월 아사히 신문에 실렸던 내용을 바탕으로 소설화 하였는데 저자가 2009년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2010년에 글쓰기를 마쳤기 때문에 현재와 비슷한 기기들이 등장해서 전혀 이질감이 들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여인은 감옥에 가고 남자 주인공 즉 집주인의 집에서 없어진 것은 없다는 담담한 진술에 구류 5월에 벌금은 없는 것으로 판결이 나 여인은 곧 풀려난다. 남자주인공의 자비가 있었던 것이다. 왜 그런지는 남자주인공의 심경도 그려져 있으므로 읽으면 알 수 있다. 그리고 풀려난 그녀는 다시 그 집을 찾아가지만 그 집은 이미 내놓아진 상태로 집주인은 어딘가로 사라졌다. 여자주인공은 남자주인공에게 편지를 쓴다. 참 애련한 이야기이다. 과연 이 집과 여인은 무슨 관계가 있었던 것일까. 얇지만 큰 여운이 남는 책이었다. 현대인의 실직문제와 가족, 그리고 외로움에 대해서 이보다 더 잘 쓸 수는 없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