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씨의 '7년의 밤'은 요즘 화제작인 것 같다. 정유정씨의 전작을 읽지 못했지만 이 책을 읽은 후로 그녀의 팬이 되어버렸다. 앞으로 어떤 책이 나올지 정말 기대가 된다. 요즘 인기가 많은 일본 미스테리계의 책들과 비교해 봐도 한 수 위인 작품이다. 우리나라 작가의 글이라 별 기대없이 읽었지만 한 번 손에 든 이상 끝까지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 읽고 나서야 제목이 이해가 되었고 정말 소설의 전체와 잘 어울리는 탁월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2004년 7년전 그날의 밤은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밤이다. 전직 야구선수였던 최현수와 그의 아들 최서원. 이사를 오자마자 두달 만에 엄청난 일을 겪는다. 그날 밤은 여러 사람의 운명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세령호가 있는 세령마을은 대대로 지주의 땅이었고 그 자손은 오영제라는 남자이며 의사이고 도시에 자기 병원이 있는 빌딩을 소유하고 있는 큰 부자이다. 그는 샤프하고 신사적인 겉모습과 태도와 달리 자신의 아내와 딸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천하에 재수없고 나쁜 놈이다. 그에 대한 묘사가 얼마나 섬뜩한지 마치 영화 '공공의 적'에서 자기 부모를 죽였던 싸이코패스로 나왔던 주인공(그 영화에서 물론 연기일 뿐이지만 이성재씨의 모습이 딱 오영제와 오버랩이 될 것이다.)의 모습이 딱 떠올랐다. 그의 딸인 세령은 2004년 당시의 서원의 나이와 똑같은 열 두살 소녀이다. 최서원의 아버지 최현수가 경비팀장으로 이 마을에 부임했을 때 세령은 죽었고 세령호에서 떠올랐다. 최현수의 아들인 최서원은 같은 열 두 살의 나이로 전학을 간 학교에서 세령의 흔적을 발견하고 매일 그 아이의 꿈을 꾸게 되면서 세령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갖는 착한 소년이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가지고 있는 열두 살 소년으로서 아주 이상적인 정말 멋진 아이이다. 세령은 왜 죽어서 세령호에서 떠올랐을까? 오영제의 부인은 이미 도망을 가서 이혼소송을 하는 중이고 세령은 아직도 오영제의 손에서 너무나 불쌍한 생활을 하고 있던 아주 예쁜 아이였다. 정말 이 부분은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야 할 나이에 아빠라는 사람이 하는 짓이라고는 주인이 인형을 마음대로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매일 얼마나 엄마가 그리웠을까. 그 아이는 엄마를 그리워하며 엄마의 큰 옷을 입고 화장을 한 채로 자다가 아빠에게 걸려서 도망을 치다가 그만 차에 치어 죽고 세령호에 빠뜨려지게 되는 끝까지 너무나 불쌍한 아이였다. 또 하나의 아이인 최서원 역시 아빠가 지은 죄로 십대를 온통 살인마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갖고 살아가야 했다. 그를 보호해 주는 사람이라고는 안승환...경비원의 한 사람이며 작가이기도 해서 이 소설을 쓴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무런 댓가 없이 서원을 데리고 도망을 쳐주는 사람이다. 그들이 들어간 곳은 '등대마을'이다. 여기까지 잡지 '선데이서울'은 최서원을 살인자의 자식이라며 고발하고 있는데 그 '선데이서울'을 자꾸 이들 주변에 보내어 발을 못 붙이게 하는 사람은 아마도 오영제일 것이다. 죽었다는 그는 살아있으며 무슨 이유로 최서원을 괴롭히는 것일까. 아버지 최현수는 어떤 죄를 지었던 것일까. 이 책은 안타까움과 미스테리가 적절하게 혼합된 그리고 무엇보다 짜임새가 촘촘한 소설이다. 그래서 정유정 작가가 여자이든 남자이든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책이다. 스케일이 크고 디테일이 살아있고 무엇보다 서사가 살아있는 소설이다. "그녀는 괴물 같은 '소설 아마존'이다." 라고 표현했다는 박범신씨의 글에 절대적으로 찬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