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미국에서 평단의 호평을 받거나 무슨무슨 상을 수상했다는 작품들을 보면 순수문학적인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그리고 외로움도요. 상처나 외로움을 극복하거나 감싸안는 그런 작풍의 소설들이 대세인 것 같습니다. 이 책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도 2008년 플래너리 오코너상을 수상했고 단편 중에서 각각의 작품들이 다른 상들을 받거나 노미네이트 되기도 한 작품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상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도 이런 좋은 작품을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번역이 되지도 않았거나 저 먼 한국에서는 모르고 지나가는 작품들이었겠지요. 그런 점에서 이렇게 읽을 수 있었던 것도 운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운명 하니까 이 작품에서 흐르는 감정중에서 운명적이었던 것들도 많이 있었던 것 같네요..
사람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는 그런 단편들이 몇 있었습니다.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고 평범한 부인이 의사였던 남편이 갑작스런 공황증세에 빠져 정신병 치료를 받는 동안 이웃의 부인과 사랑을 빠진다던지 하는 비밀스럽고도 남들에게 티내지 않는 우아하기까지한 묘사들이 탁월합니다. 책을 읽다보면 현대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빅토리아 시대의 이야기같은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분명 현대임에도요. 그만큼 조용하고도 우아한 일상을 잘 묘사한 것 같습니다. 이 책에는 유독 눈길을 끄는 단 두장짜리 단편도 있습니다. 그냥 평범하고 나른한 오후에 사랑을 나누는 부부의 이야기 같은데 그 부부는 곧 아이를 유산하러 갑니다. 아름다운 단편들이지만 스릴러도 아님에도 뭔가 반전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읽는 독자의 눈길을 끄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말 평범한 일상 속이지만 왠지 모를 긴장감이 감도는 그런 단편들입니다.
또한 작품마다 일인칭의 시점을 등장시켜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것도 큰 특징입니다. 한 권을 다 읽고 났을 땐 약간의 먹먹한 감정과 갑자기 스며드는 외로운 감정들, 그럼에도 따뜻함을 주는 묘한 느낌에 사로잡힙니다. 실제로는 복잡하고 오늘도 아이들에게는 소리치고 남편에게 잔소리하고...결코 우아하지 않은 일상속에서 잠시 여행을 떠난 느낌이랄까요. 나이가 들어가니 이런 책들이 참 좋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디 아워스' (아..작가 이름이 당장은 떠오르지 않네요) 도 그랬지요. 버지니아 울프의 '세월'과 동명소설인(버지니아의 '세월'에 영향을 받기도 한) 퓰리처상 수상작이었던 작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