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 개정증보판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어령님의 시집은 처음 읽어본다.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감명깊게 읽은 후라 더욱 와닿는 제목이다. 요즘 들어 계절이 계절인지라 집에서만 틀어박히게 되는 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침대 매트리스 위에서 이불을 덮고 등에 베개를 대고 앉아서 책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데 예전에는 추리소설이나 금방 읽을 수 있는 소설류를 읽었지만 지금은 거의 긍정심리학이나 죽음이나 인생에 대한 책을 읽게 된다. 그게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노작가의 말년의 시집은 그런 점에서 특별하다.

 

원체 시를 잘 읽지 않는지라 이 책도 지루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마치 산문과도 같은 시, 여든에 가까워지는 노작가의 깊은 성찰이 담긴 시에 그만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그 중에는 역시 인생을 다루고 허무하기까지 한 인생을 노래한 시도 있는가 하면 노작가답게 작은 것 하나라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느끼는 그런 감성의 한 조각을 엿보기도 하고 그의 인생역정을 들여다 볼 수 있기도 했다. 무신론자였던 그가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되었는지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를 읽다보면 절절해진다.

 

- 어머니들에게 바치는 시- 첫번째 '눈물이 무지개 된다고 하더니만' 는 지금 현재 어린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나에게 위로가 되는 시들이었다. 어떻게 노작가는 이런 것까지 알았을까. 싶게 위안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새록새록 아기적에 정말 힘들게 키우다가 이제 좀 컸다고 많이 나태해진 마음을 추스릴 수 있게 해준다. 이제 사춘기에 접어드려는 큰 녀석 때문에 마음 고생한 것들도 어느새 사르르 녹는다. 더욱 예뻐해 줘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읽는 자서전'에 실린 시들은 - 나에게 바치는 시- 이다. 그래서 사실 이 부분이 가장 좋았다. 시인에게, 한국에게, 하나님에게 바치는 시도 좋았지만 말이다. 이 중에서 한 시를 소개해 본다. 아직은 아이들을 키우느라 나만의 시간이 절실해서 외로운 줄도 모르고 바쁘게 살지만 어느새 이럴까봐 사실 걱정도 된다.

 

<정말 그럴 때가>

 

정말 그럴 때가 있을 겁니다.

어디 가나 벽이고 무인도이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겁니다.

 

누가 "괜찮니" 라고 말을 걸어도

금세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노엽고 외로운 때가 있을 겁니다.

 

내 신발 옆에 벗어놓았던 작은 신발들

내 편지봉투에 적은 수신인들의 이름

내 귀에다 대고 속삭이던 말소리들은

지금 모두

다 어디 있는가.

아니 정말 그런 것들이 있기라도 했었는가.

 

그런 때에는 연필 한 자루 잘 깎아

글을 씁니다.

 

사소한 것들에 대하여

어제보다 조금 더 자란 손톱에 대하여

문득 발견한 묵은 흉터에 대하여

떨어진 단추에 대하여

빗방울에 대하여

 

정말 그럴 때가 있을 겁니다.

어디 가나 벽이고 무인도이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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