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밥상 - 밥상으로 본 조선왕조사
함규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매우 독특한 책이다. 밥상으로 보는 조선왕조사라는 부제가 딱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 든다. 2010년 조선일보 논픽션대상 대상 수상작이다. 마치 <왕의 밥상> 이라는 다큐를 보는 것 같이 생생하게 그려지는데 내용 자체는 논문같은 성격이지만 재미없게 쓴 책은 아니다. 많은 사료를 샅샅이 뒤졌을 작가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리가 아는 드라마 <대장금>이나 <동이>에서 본 것처럼 조선의 밥상은 여자들이 주로 맡아서 했을까. 이런 식의 왕의 밥상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조선초기와 중기 그리고 후기의 밥상은 어떠했을까. 모든 궁금한 점은 이 책을 읽으면 시원하게 풀린다. 승정원 일기나 조선왕조실록같은 우리나라의 멋진 기록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에서는 왕의 어느 날의 식사 장면을 드라마를 보듯이 생생하게 재현한 글이다. 2장은 역대 왕들마다 어떤 식사를 주로 했고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음식과 관련해 풀이해 보고 있고 3장에서는 그런 왕의 밥상을 차리기 위해 있었던 제도,관청, 요리사글과 음식, 음식을 먹는 방법까지 소개되어 있다. 4장과 5장은 전체적으로 살펴 본 조선시대 왕의 밥상의 역사를 좀 더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내용이다.

 

들라. 옥음이 떨어지고 장지문이 열린다. 사모관대를 단정히 입은 신하가 두 팔로 널찍한 음식상을 들고 들어온다. 그 뒤를 작은 화로나 조리 기구를 든 내관이 종종걸음으로 따라들어온다. 빨갛게 옻칠을 한 사각반 위를 덮은 십여 개가 넘는 그릇들과 수라,탕,조치,전골,생채,침채,숙채,찜, 더운구이,찬구이,편육,전유화,장과,마른찬,젓갈,회,수란 등이 상위에서 색을 빛낸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고 각종 영양소가 골고루 있는 반찬인 것이 느껴진다. 그러면 "젓수시옵소서." 라고 사옹원의 총책임자인 제조가 말씀드리면 수저를 드신다. 그러면서 요즘 계속 비가 없소. 혹은 제주도의 비바람 피해가 심각한 모양이오? 라는 식의 대화가 오갈 것이다. 올라온 음식들의 상태를 보고서도 그 지방의 문제를 알아내기도 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조선의 왕들은 마구 돌아다니지도 못했고 정사를 논하거나 회의자리,그리고 나머지는 늘 글공부같은 정적인 활동만을 했기 때문에 먹는 즐거움이 큰 것이었을 것이라는 부분에서 저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임금님을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니구나..희노애락 사는 것이 참 재미가 없었겠구나 싶다. 나라의 모든 것을 떠받는 심정은 때로 잠도 안오는 불면증과 소화가 안되는 더부룩증이 왔을 것이다. 비가 안오는 가뭄이나 비가 많이 와서 홍수가 났을 때에는 고기반찬을 하지 않거나 반찬가짓수를 줄이는 감선에 스스로 들어가 명하기도 하셨다는 우리의 임금...

 

1대 태조는 갈증병이 나서 포도로 갈증을 달래기도 하고 자식들의 참사에 즐기던 고기를 끊기도 했다고 한다. 2대 정종의 이야기도 흥미를 끄는데 그는 마음껏 먹고 마시고 감선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우인 태종이 실질적으로 왕자의 난에서 권력을 잡았지만 일단 형을 왕좌에 앉혔는데 그가 바로 이방과이며 정종이다. 선천적으로 쾌락을 즐기고 게을러 감선의 노력은 하겠다는 반응이었지만 곧 음식을 즐기곤 했다고 하는데 이는 자못 진지하게 왕의 흉내를 내어서 동생인 이방원에게 의심을 받을까 해서 '살아남기 위해' 마음껏 먹고 마시며 놀았다는 내용이다.

 

3대인 태종 이방원은 비록 피로서 정권을 잡기는 했지만 나라를 위해서는 일등공신인 태종은 세종에 이르러서 꽃피운 그 모든 것들의 기틀을 마련했다라는 점에서 대부분 이의가 없단다. 조직과 제도를 정비하고 '밥상에서 벌어지는 왕의 정치'도 기초를 충실히 닦았다고 한다. 때로는 감선이나 철선을 많이 하여 신하들이 걱정을 하기도 했다. 냉혹하기까지 할 정도로 친척들을 죽이고 왕의 자리에 올랐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은 극진해서 열네살에 죽은 아들 성녕대군을 위해 생전에 좋아했던 닭고기를 제사상에 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기대를 저버린 양녕대군을 세자의 자리에서 내치고 다시는 한양에 오지 말라고 해놓고도 안타깝고 불쌍하여 왕비와 함께 눈물을 쏟았다고 하며 유언에 세종이 무리하게 철선, 감선을 하게 되면 신하들이 간곡히 말려서 복선을 하게 하라는 당부를 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절절한 사랑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밖에도 수많은 내용들이 있다.

 

왕의 밥상과 자연스레 엮어진 조선시대사를 같이 읽다보니 우리의 조상이 이런 분들이었구나 왕이란 이런 분들이셨구나. 왕의 밥상이란 이런 의미였구나..역사속의 소용돌이에서 용케 우리 조상들은 살아남았구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우리가 승정원일기나 조선왕조실록을 읽기는 어려우니 이런 책들이 나와주어서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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