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의 염소들
김애현 지음 / 은행나무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제목과 산뜻한 표지가 눈에 띄인 김애현의 소설 <과테말라의 염소들>은 오랜만에 한국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주었다. 요즘 일본 본격등에 빠져있었는데 한국소설이 그리웠던 참에 한꺼번에 국내소설만 3권을 읽게 되었는데 나머지 두 권은 실망스러웠고 이 책 <과테말라의 염소들>만이 책읽는 즐거움을 주었다. 매우 슬픈 일임에도 쿨하게 혹은 발랄하게 적어내려가지만 그 문장들이 모여서 더욱 슬퍼지는 것은 왜일까. 나머지 실망했다는 다른 작가들의 한국소설은 요즘 유행하는 인터넷 소설같은 가벼움이 하나, 무거운 주제이긴 하나 그 주제를 풀어낸 점이 많이 아쉬운 작품이 하나였다.

하지만, 2006년에 단편으로 각각 다른 문학상에서 3관왕을 차지했던 김애현씨의 작품은 독보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수상사실을 몰랐더라도 확연히 차이나는 작품으로 볼때 예전의 우리가 소설가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요즘의 자칭 소설가들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정말 누구나 책을 내면 소설가인가? 라는 냉소가 저절로 지어진다. 그런 점에서 김애현씨의 작품은 독보적이었다.

 

<과테말라의 염소들>은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던 소통과 관계의 회복을 보여준다. 어떻게 어떻게 살아라 하는 교훈점 하나 없이 소설만으로 느껴지는 힘. 다소 표정이 없고 매사에 자신이 없어보이고 쿨하다기보다는 소심해 보이는 주인공은 요즘 서로 잘났다고 하는 세상에서 조금 달라보이는 존재이다. 난데없이 개그우먼 시험을 보려고 하는 첫 장면에서 은근히 웃기면서 시선을 잡아끌지만 마구 튀는 소설도 아니다. 구효서씨의 추천의 말처럼 이 소설은 스멀스멀 우리를 덮친다고 하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스멀스멀 등장인물들이 하나 둘 생겨나고 주인공 주변에는 일견 이상해 보이는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주인공의 십년지기 친구들과 함께 어우러져서 따뜻한 호빵을 하나 품고 있는 듯한 흐뭇함과 감성을 자극한다. 내것만이 소중하고 하나도 뺏기려 하지 않는 현대에서 조금 손해보더라도 내 친구에게 먼저 나누는 그런 모습들이 소설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나고 그 따뜻함에 푹 빠져든다. 나도 중학교때에는 이랬는데..친구가 먼저였고 그저 양보했었는데.. 이런 느낌.

 

갑작스런 엄마의 교통사고 소식에 주인공은 개그맨 시험을 한 시간 앞두고 나와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엄마를 찾아가는 것은 남의 일인 것처럼 데면데면하다. 하지만 그녀의 심정이 이해가 되는 순간 이 소설은 그저 가슴을 때린다. 시리게 한다. 어떻게 이렇게 젊은 아이들한테 이런 뛰어난 점들이 있을까. 시니컬하고 못되 보이는 친구인 Y마저 속 깊은 곳에서는 친구를 사랑하고 친구의 엄마를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드러난다. 오히려 사랑하는데 투정하고 오히려 아끼는데 겉으로는 막 대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안 보이는 곳에서는 더 진심으로 감싸안고 위로를 할 줄 알 때가 있다. 바로 이 소설은 그런 느낌이다.

 

하나하나 서로 몰랐던 사람들이 위로하고 위로받고, 친해지고 결국은 모두가 함께 식빵에 잼을 발라먹기 위해 병원의 중환자실 앞에서 장례식장 앞으로 또 산책로로 이동하는 장면에서는 그 긴 행렬이 우습기도 하지만 감동적이다. 사람을 한데 모을 수 있는 힘.. 주인공은 소심하고 쿨한 것 처럼 보이지만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친구는 말수가 없고 그저 듣기를 잘했다는 점...그 점이 바로 사람들을 끄는 힘이 아니었을까.

 

누구보다 어린 나이에 아빠를 교통사고로 여의고 엄마마저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었지만 묵묵히 슬픔을 이겨내는 발랄한 모순적인 필체의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다큐멘터리 구성작가였던 엄마가 필사적으로 바로 과테말라에서 염소젖을 파는 말많은 호세의 이야기를 다큐에 실으려고 했던 따뜻한 마음만큼 소설 속에선 소설안의 소설처럼 이 과테말라의 염소들의 또 다른 이야기를 제공한다. 그래서 제목이 <과테말라의 염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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