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 청춘의 밤을 꿈을 사랑을 이야기하다
강세형 지음 / 김영사 / 2010년 7월
평점 :
오랜만에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을 만났다. 이 책의 저자는 강세형이라는 이름을 가진 라디오 작가이다. 그동안 김동률이나 테이, 이적과 같은 유명 가수이자 디제이들과 같이 작업했던 작가였단다. 나이가 적혀 있지는 않았지만 책내용으로 보아 서른을 넘긴 나이 같았다. 같이 나이들어가는 세대여서 살짝 반가웠고 더 공감이 가게 되었다고나 할까. 제목을 보고 끌려서 책을 들기는 했지만 혹시나 별로일까봐 걱정을 했던 것은 이내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몇장만 읽어야지 했는데 그새 술술 반이 넘게 읽었다.
무엇보다 이 책은 나만이 그러한 것은 아니구나..하는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그래서 묘하게 위로받는 느낌을 받게 한다. 어떻게 이런 것까지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게 감정의 세밀한 묘사라고 할까, 그 어떤 상황을 기억하고픈데 다음날 아무리 기억해내려 해도 기억이 나지 않아 낭패를 볼 때 바로 그런 상황을 정확히 기재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너무나 놀랍고 즐거운 경험적인 책읽기였지만 반대로 샘도 났었다. 나는 왜 이런 글솜씨가 없는 걸까. 왜 이런 기억력이 없는 걸까 하고..
그런데 몇 페이지도 지나지 않아 그녀도 도무지 머리를 짜내도 글을 쓸 수가 없어서 절망에 빠져 커피만 연신 마시고 밤을 샜다는 대목을 읽으니 그녀도 그랬었구나...하는 안심이랄까. 역시 동질감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조금 슬퍼지고 말았다. 너무 딱딱해져 버린 내 마음. 사랑도 그리움도 아픔도 품어본 지 너무 오래됐구나 싶어서. 넘쳐나는 세상의 사랑 이야기가 어느새 모두 남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듯 싶어서.(25P)
이 부분도 내 얘기 같았다.
'어제 저녁에 내가 뭘 먹었더라'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억나질 않고 방금 몇 번이나 되뇌며 외웠던 누군가의 이름이 돌아서자마자 아 까먹었다, 생각나지 않을 때.
"나도 이젠 늙었나봐. 그래도 어렸을 땐 꽤나 총명하단 얘기도 듣고 그랬는데 갈수록 머리가 나빠져." 이런 푸념이 절로 새어나오는 순간, 그런데 언젠가 한 선배가 그렇게 투덜거리던 내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갈수록 무언가를 기억하는 게 어려워지는 건 우리가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라." ....팔을 스치는 바람에서 가을이 느껴지자마자 나는 제일 먼저 긴팔 옷을 찾으려 옷장을 뒤졌다. 그런데 왜 이렇게 옷이 없는지. 도대체 나는 작년 가을에 무슨 옷을 입었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거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아주 오래전에 입었던, 이젠 낡아서 더 이상 입을 수도 없는 그 옷만은 선명히 기억났다.
"어? 오늘 예쁘게 입고 나왔네?" 그 말과 함께 빙긋 웃어 보이던, 그 사람의 얼굴과 함께.(42p)
나도 그렇다. 초등학교 4학년때 엄마와 함께 내 옷을 사러 갔던 길, 나는 이 옷을 사고 싶었는데 엄마는 얼굴이 어두워 보인다며 내가 사고픈 원피스 대신에 평범한 옷을 사주셨을때. 그 사고 싶었던 원피스가 아직도 선명히 기억났다. 해지청 옷감으로 된 원피스...그리고 중학교때 조다쉬에서 돌청바지와 주황빛 체크 반팔을 사서 친구들의 눈길을 느꼈을 때. 바로 그 옷이 마치 어제 입었던 옷처럼 선명하게 기억나는데 정작 작년에 입었던 옷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옷에 관심없고 만화책을 좋아하고 늦잠 자는 것을 좋아하고...다른 독자들보다 더 저자와 비슷한 성향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반한 책일지도...하지만 다른 독자들도 아하 하고 공감가는 부분이 많은 책일 것이다. 그래서 더 멋지고 신기한 책이다. 마치 누가 읽어도 내 얘기 인 것처럼,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독자들도 그렇게 느낄까? 갑자기 궁금해져온다..
아, 작가도 이런게 궁금할 때가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