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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저택
펄 벅 지음, 이선혜 옮김 / 길산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펄벅의 '대지'를 고등학교 시절 읽었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후편인 '아들들'까지 바로 구입해서 읽어버렸다. 당시 유행했던 문고판은 이제 더 이상 보기 힘들다.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이사를 몇 번 하던 중에 책은 없어졌지만 내 기억속에서 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책에 집중해서 읽었던 그 순간들은 늘 기분 좋은 추억이 된다. 성인이 되어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책을 읽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그 시절이 더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오후에 책을 집으면 저녁 먹는 시간도 잊을 정도로 집중해서 읽었던 기억...
그 펄벅의 <여인의 저택>이 이번에 새로 출간되었다. 이십년만에 만나는 펄벅의 책...가슴이 두근거렸다. 읽어 나가는 도중에도 아..역시 펄벅 여사의 책이구나.. 감탄을 하게 되면서도 대지에서 느꼈던 그 문체가, 사람들의 그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아서 의아해 지기도 했다. 번역가가 달라서가 아니라 아마도 이십년전 여고생의 시선과 지금 나의 시선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리라.. 여전히 대부호인 중국의 집안을 그리고 있는 점이 있었다. 펄벅 여사의 삶이 매우 궁금하다. 중국에서 꽤 오랜 시간 성장기를 포함해서 살아갔던 여사는 아마도 중국의 대부호의 집들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을까. 아니면 그녀의 삶 자체가 그 부유층과 어떤 연관이 있었던 것일까...대지에서는 인간의 한계에 도달한 가난에서 엄청난 부자가 된 주인공을 그리고 있지만 여인의 저택은 처음부터 귀족인 어떤 여인의 삶을 그리고 있다. 아이린이라고 남편이 부르는 우씨의 아내인 우 부인...마흔의 나이에 이미 손자들까지 거느린 대가족의 며느리이자 큰마님이다. 시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실질적인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 되었다. 갸날픈 손목과 몸매에 투명한 피부와 흰머리가 없는 검은 머리를 간직한 아름다운 여인...그래서 중국에서도 첩을 많이 거느리지만 우씨는 아내만을 바라보고 산다. 마흔의 나이에 출산의 고통으로 죽기도 하는 지인들을 보면서 그녀는 결심한다. 남편에게 첩을 들이라고 하기로... 가난한 농민 가운데에서 고아인 어느 처녀를 돈을 주고 사들여 우씨의 첩으로 만드는 우 부인의 모습을 보면서 섬뜩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인자하고 냉철하며 공평한 여인이었고 그 칭송이 자자했지만 이런 점에서는 역시 기득권의 권리를 맘껏 누리는 것을 보면서 펄 벅 여사는 과연 어느 층의 사람을 옹호하고 있는 것이었을까 궁금해진다...
항상 대부호와 서민들의 생활을 느끼게 하는 펄 벅의 소설들은 과연 중국인들이 보기에도 인정할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중국 이외의 나라의 사람들이 읽기에는 그보다 더 멋질 수가 없다. 중국의 광대함을 잘 그리고 있는 그녀의 솜씨만 보아도 그리고 그 서사성만 보아도 펄벅 여사의 글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녀만의 중국인을 그린 소설들은 대중적인 사랑을 얻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이번 여인의 저택도 대지를 읽었던 날 처럼 하루만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오랜만의 집중이었다.
우 부인이 마흔의 어는 날 서양의 선교사인 파란 눈의 신부와 대화를 나눈 그 인상 깊은 장면들...대화 후에 혼자 별을 바라보면서 인간의 근원적인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기 시작한 그 최초의 날...은 나에게도 가슴 떨리는 장면이 된 것은 인생 속에서의 여인의 모습을 너무나도 잘 그려냈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서 정신 없이 살다가 문득 발견하게 되는 이제 중년에 가까워지는 나...우 부인의 나이가 되기까지 두 해가 남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