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순이 (반양장) ㅣ 사계절 1318 문고 63
이경자 지음 / 사계절 / 2010년 6월
평점 :
이경자님의 <순이> 를 읽어 보았다. 순이, 영희, 철이, 분이...우리네 이름들이다. 어릴적 교과서에서 익히 보는 이름들이다. 그 중에서도 순이는 어딘지 해방과 6.25시기를 거쳐서 어린시절을 보낸 대한민국만의 순이들로 자연스럽게 부합된다. 그래서 저자인 이경자님도 순이라는 제목을 붙였나 보다. 안타까운 일들이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도 살짝 기억나게 하고 구수한 사투리와 할머니의 말투가 시종 우리 할머니를 생각나게 하기도 하고 줄거리는 정말 순식간에 읽어나갈 정도로 단순하지만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사계절의 1318 청소년 문고로 나왔지만 오히려 30대 중반 이상의 성인들이 읽으면 어릴적 추억도 되살아나고 킬킬거리다 눈물짓다 그렇게 읽어나갈 것이다.
엄마는 어린 딸인 순이만 보면 그 아이의 애교도 싫고 밀쳐내기 바쁘다. 그런 순이의 상대는 매번 할머니가 된다. 할머니는 입냄새도 나고 욕도 많이 하시고 싫을때도 있지만 그래도 순이를 가장 이뻐라 하는 분이다. 아버지는 술만 먹었다 하면 순이엄마를 삼일에 한번씩은 개패듯이 패고 살림을 망가뜨리는 위인이다. 그저 농사일이 싫고 자신이 더 배웠다면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고 속에서 울화가 터지는 인물이다. 그걸 애꿎은 가족에게 화풀이를 한다. 할아버지는 말없이 묵묵히 농사를 짓고 자식을 키우고 손주들도 보았지만 이런 아들을 볼 수만은 없을 터이지만 그렇다고 아비를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못한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뒤에서는 온갖 욕을 퍼붓지만 실상 할아버지가 쯧 소리만 내도 꼼짝을 못하고 쉬이 수그리는 양반이다. 며느리인 순이엄마에게서도 폭력을 휘두르는 아들땜에 위신이 살지 못하고 며느리가 독한 소리를 하면 눈물만 흘리며 또 욕을 하는 우리네 참고 어려운 일만 했던 할머니 그대로이다.
순이는 내년이면 학령기에 접어드는 아이이다. 할아버지는 중대 결심을 하시고 아들내외를 떠나 산으로 떠날 계획을 하신다. 할머니는 순이를 데려가고 싶어하시고 순이는 그런 할머니의 마음을 알면서도 외면해 버린다. 얼마전에 방송에서 한 아빠가 이혼을 하고 세살밖에 안된 딸아이를 시골에 계시는 어머니께 맡기고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아이를 이제는 데려간다고 했다. 할머니는 이제 정이 있는대로 든 상태...매일 손녀만 보면 눈물이 난다. 이 녀석이 없으면 어찌 살꼬...그 할머니의 눈물이 순이 할머니의 눈물과 겹쳐진다.
친정어무이도 내 딸이 어렸을 때 키워주셨는데 아기때 한번 커피잔을 엎은 아이를 두고 더 이상은 못 키우겠다고 니 딸 얼굴에 화상 입을 뻔 했다고 하셔서 그 얼마후 직장을 그만두고 지금은 아이 둘의 엄마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우리 어무이도 아마 더 정이 들면 나중에 떼기 힘들 까봐 그랬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때는 엄마가 야속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백번 이해가 간다. 엄마가 딸을 키워야지 나이 드신 할머니들이 키우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 사회가 그걸 도와주지 못한다. 암튼 순이는 빨갱이가 있고 군인이 있는 그 시대 어린 아이들과 어른들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인 이경자님이 1948년생이니 어린 시절의 기억이 어느 정도 들어갔을 것이다. 순이는 지금 우리 할머니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다. 손주인 우리 딸들이나 아들들이 알아야 할 이야기이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