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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동양신화 중국편 - 신화학자 정재서 교수가 들려주는
정재서 지음 / 김영사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깔끔한 흑백의 디자인에 지문이 묻을 것 같은 요즘의 표지들과는 달리 뭐랄까 지문은 묻지 않으면서 방수가 될 것 같은 재질이랄까. 530여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두께의 양장본이 아니지만 양장본처럼 탄탄해 보인다. 바로 정재서가 지은 <이야기 동양 신화> 의 표지이다. 우리는 그리스로마신화에 대해서는 빠삭하게 잘 알고 있다. 나만 해도 운명의 세여신의 이름까지 외우고 있을 정도인데 이상하게 동양신화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하고 관심도 가져지지 않는 것이었다.
서양의 미술사적으로 유명한 그림들은 그리스로마신화를 소재로 채택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라파엘 전파의 존 에버렛 밀레이처럼 세밀하고도 잘 그려진 순정만화의 표지처럼 아름다운 그림들을 보면서 성장하다보니 어려서부터의 그런 경험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맹목적인 관심을 가져온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 책 <이야기 동양 신화>를 읽고 나서는 동양 신화야말로 우리네 역사와 살림살이와 맞닿아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가독성이 있는지 모른다. 동양철학을 가미한 동양신화는 전에도 접해 보았지만 몇 페이지 넘기지를 못했다. 이 책은 그렇지 않다. 과감히 이야기가 될만한 신화이야기를 잘 채집해서 우리에게 쉽게 알려주는 글쓰기는 정말 정재서님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었을 때처럼 술술 읽힐 뿐만 아니라 신화적인 재미도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혼돈인 '카오스' 처럼 동양신화에도 '혼돈'이 있다. 눈도 입도 귀도 코도 없는 달걀귀신같은 몸에 코끼리 같은 몸매에 네 날개를 달고 있는 기이한 새인 '제강'이 바로 그이다. 제강에게는 숙과 홀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아무것도 없는 제강이 안되어 보여 일곱개의 구멍을 뚫어주기로 한다. 하루에 하나씩 칠일째 되는날 과연 제강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먹을 수 있었을까? 정답은 혼돈인 제강은 그만 죽어버렸다. 숙과 홀의 한자를 살펴보면 각각 '잠깐'이나 '순간'을 뜻하는데 이것은 시간을 상징한단다. 그들은 일곱 개의 구멍을 가졌다는데 인간의 그것과 같아서 인간이라고 볼 수 있고 혼돈이 숙과 홀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내용에서 혼돈의 시대가 이제 시간이 지배하는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뜻하는 것이란다. 이 얼마나 명쾌하고 재미있는 설명인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카오스의 얘기처럼 흥미진진하다. 신화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도 충분하고 말이다.
정재서의 이야기 동양 신화에서는 혼돈에서 태어난 거인 '반고'의 모습을 여러번, 그리고 붉은 악마의 상징이 된 '치우' 의 본모습까지 역사적 사료를 실어줌으로서 궁금증을 풀어준다. 이어 이어지는 홍수속에서 살아 남은 남매의 이야기(복희와 여와)나 들고 있는 북들을 치며 벼락소리를 내는 우레의 신 뇌공의 사실적인 그림이나 여와의 계속되어 지는 다른 이야기들은 아프로디테 여신의 이야기처럼 그리스 로마신화와 비교되고 분석되고 정재서씨만의 감성으로 그려진다. 미노타우르스처럼 황소의 얼굴을 한 염제의 이야기나 서왕모, 우리나라의 견우와 직녀까지 동양의 신들의 향연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경이롭다. 청소년들과 성인이 되어서도 아직 제대로 동양신화를 알고 싶어도 책을 고를수가 없었던 비전공자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동양 신화' 책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