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이들 없는 세상
필립 클로델 지음, 정혜승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필립 클로델- 프랑스의 지성을 대표하는 작가. '브로덱의 보고서'로 공쿠르 데 리세엥상을 수상하였다. 이 책 <아이들 없는 세상>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집이다. 이 책의 몇 단편만을 읽은 채로도 작가의 다른 작품인 '브로덱의 보고서'나 '회색영혼'이 너무너무 읽고 싶어진다. 읽고싶었던 이야기와 문체가 딱 기다리고 있었던 작가가 아닌가.. 특히 회색영혼을 얼른 위시리스트에 넣고 다시 책을 읽었다.
로알드 달의 단편집 '맛' 과 어딘지 모르게 살짝 닮은 느낌의 하지만 더 짧지만 강한 임팩트를 지닌 '아이들 없는 세상'은 사실 어린 시절 읽었던 '아이들만의 도시'처럼 그런 아이들만이 살아가는 장편소설을 기대하고 있었던 내게 책을 넘긴 순간 어 장편소설이 아니네 하는 실망감을 느끼기도 전에 정말 재미있다 라는 반전을 주었던 짧은 소설집이다. 그런데 이 책은 정말 번역이 절묘해야 할 것 같은 책이다. 그런 점에서 번역가의 수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어쩐지 작가의 원본 느낌이 잘 살아나는 책이었던 것이다. 물론 프랑스어를 모르지만 말이다.
'옛날옛적에' - 어느 할아버지가 손주들에게 이야기들 들려주려고 애쓰는 모습, 안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야기마다 저번에 들었던 거라느니 시시하다느니 너무 무섭다느니 너무 더럽다느니 온갖 핑계를 다 대며 거부한다. 그 거부하는 말들이 어찌나 진지하지만 웃긴지..블랙유머가 따로 없다. 결국 할아버지를 주무시라고 내모는 아이들...책을 읽어달라고 졸라대는 아이들처럼, 할아버지는 "아냐 괜찮다. 그럼 이 이야기는 어떨라나.." "나 안 졸린데!" "어허 난 누울 생각이 없다니까 그러네!!!" 끈질기게 이야기를 해주시려는 할아버지와 아이들의 처지가 뒤바뀐 것 아닌가!! 이 같은 이야기들이 어찌나 기발하고 재미있고 배꼽잡게 하는지 말이다.
'요정이라는 힘든 직업' 에서는 여섯살난 아이가 거울을 보며 인형의 머리를 빗는데 열중하고 있는데 짜잔하고 요정이 나타난다. 얘..나 요정인데...어 그러세요 한마디 하고 돌아서는 아이...이래뵈도 요정인데...안절부절 못하는 요정의 모습이 어찌나 기가막힌지!! "저기 얘...나 요정이라니까" " 재방송하시네!" "뭐라고?" " 그 말 벌써 했다고요. 한 얘기를 계속 또 하고 있잖아요. 그쪽이 요정인 거 이미 다 안다고요!" 요정에게 바란 것도 없고 귀찮다는 아이의 반응에 놀란 요정은 요정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설득하게 되고 아이는 정말 귀찮다는 듯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은 가택침입에 아이에게 희롱하는 거라며 경찰을 부를 수도 있다고 하니.. 요정은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만다. 사실 오랫동안 실직상태여서 요술도 엉망이라 미안했다고 (사실 일주일이나 아이의 방에 찾아와 요술이랍시고 해서는 실수만 했던 것..) 백수에서 겨우 벗어난 건데..하며 꺼이꺼이...
하하하 정말 직접 읽어봐야 이 느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른들뿐만 아니라 사춘기의 아이들에게 읽게 해 주어도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 같다. 아직 초등학생인 딸에게보다 중학생인 조카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물론 나를 위한 책이기도 하고..
필립 클로델..정말 독특한 작가인 것 같다. 얼른 다른 장편도 읽어보고 싶다. 이 책을 통해 내게 딱 맞는 작가를 만난 것 같은 기쁨이 든다. 이 책 역시 소장했다가 우울할 때 꺼내어 읽으면 기분전환하기 좋은 책 같다. 낄낄대며 읽다 보면 마음 한 구석이 싸해지기도 하고 아련해지기도 하고 인간들의 모습에 우습다가 비장해졌다가 참 우리가 사는 사회의 여러가지가 이 책에 다 들어있구나...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