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작가가 지었던 '덕혜옹주'의 인기몰이는 올초부터 대단했다. 그 바통을 이어받아 김인숙 작가가 '소현'으로 또 한번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스케일이 크고 세밀한 묘사와 스토리가 살아있어서 너무나도 재미있게 읽었다. 오랜만에 책읽는 즐거움을 느꼈다고나 할까. 교과서에서 잠깐 보았던 소현세자의 이야기는 나 역시도 늘 궁금했었다. 병자호란이후 청나라의 볼모로 동생 봉림대군과 함께 끌려간 소현세자, 8년뒤에 조국에 돌아왔지만 병을 얻어 죽고 말았다는 비운의 왕세자.. 기구한 그의 운명에 실제 역사속에서 좀 더 많은 기록이 있지 않을까 늘 궁금했었는데 이제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소설 '소현'을 읽으며 조금이나마 해소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김인숙 작가도 많은 기록들을 찾아보았지만 소현세자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았나 보다. 많은 부분 상상력을 이용해야 했으리라. 조정의 정세나 임금의 인품 등 많은 것들을 참고한 것 같았다. 그만큼 명품 소설이 탄생되었다. 소현세자를 청나라로 이끌고 간 적장 도르곤도 소현세자와 같은 나이의 동갑인 십대소년이었다. 이미 용맹한 적장으로 이름을 떨쳤던 그도 누르하치의 세자중 한명이었다. 부왕 누르하치가 죽자 홍타이지가 왕으로 올랐다. 도르곤의 생모인 아바하이는 누르하치가 가장 사랑한 왕비었는데 누르하치가 죽자 홍타이지가 그녀의 순장을 명했던 것이다. 자신의 것일수도 있었던 왕의 자리도 잃었고 어머니도 잃었던 도르곤은 살아남기 위해서 강인해질수밖에 없었다. 그의 야망의 이야기도 소설에서 한 축을 이루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 소현세자와 이루어지는 우정 비슷한 감정도 잘 보여진다. 실제 역사속에서는 더 이상 만나지 않은 관계였을 수도 있지만 작가의 상상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심석경이라는 인물도 조선에서부터 청까지 소현세자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심복으로 나오는데 실제 인물이다. 조선의 종친 중 한명의 딸인 흔이 청나라로 끌려가 대학사 비파의 작은 부인이 되었다. 대학사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그녀는 석경과 정을 통하게 되고 흔을 통해서 청의 정세를 알게 되는 소현세자..심석경의 존재부터 이 부분은 작가의 상상력 부분이지만 꽤 설득력이 있다. 대학사는 석경과 흔을 질투하여 만상이라는 조선인 출신 역관(여기서는 통역관)에게 석경을 죽일 것을 명한다. 만상과 신기가 내려진 막금이라는 여인의 이야기 또한 흥미롭게 그려지는데 조선에서 청의 군사에게 능욕과 도륙을 당한 조선민들을 대표하는 인물들일 것이다. 부모와 누이의 처절한 죽음을 목격하고 어린 나이에 청으로 들어 와서 어쩔수없이 악만 남은 만상이라는 인물이 조금은 이해가 가기는 했지만 아는 놈이 더한다고 그가 조선의 여인으로서 청에 끌려온 기녀들에게 행하는 악행들은 그악스럽기 그지 없다. 결국 소현세자는 구왕(도르곤)으로부터 조선으로의 환국을 허락받고 조선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돌아가기 전에도 많은 사건들이 일어난다. 만상과 석경과 흔과 막금의 이야기들이 어우러진다. 비극적인 사건들이 일어나고 소현세자는 결국 무사히 조선의 왕실로 들어오게 되지만 두달 뒤에 어쩐 일인지 학질이라는 병에 걸려 죽게 된다. 그런데 보통 왕세자가 죽으면 그 책임을 왕실의 침술을 담당했던 의관의 책음을 물을 것인데 아버지인 인조는 그러지 않았다. 죽음의 의혹을 한 점 확인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얼마 후엔 부인과 자식들마저 유배를 당하고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결과를 보았을때 아버지인 인조가 소현을 독살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아마 조선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겐 공공연한 사실일 것 같다. 어찌 아들이 죽었는데 오히려 그 부인과 자식들까지 유배를 한단 말인가. 억울한 죽음에 쐐기까지 박는 악한 사람이 바로 인조가 아닌가 한다. 그놈의 권세가 권력이 무엇인지 참 서글프다.. 소설을 통해 우리나라의 왕세자였던 소현세자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아마 이 책으로 인해 소현왕자는 억울한 한을 조금이라도 풀지 않았을까 싶다. 장장 5년 동안 집필을 위해 애 쓴 김인숙작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