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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죽음의 조건
아이라 바이오크 지음, 곽명단 옮김 / 물푸레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유독 어릴때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가 많았던 것 같다. 둘째를 임신했던 임신기간엔 비염이 너무너무 심했었다. 두 코가 꽉 막히다 못해 터질 것 같았는데 잠자다가 코로 숨을 못쉬고 입으로만 숨을 쉬다 보니 숨을 못 쉴 것 같은 공포에 그만 불면의 밤을 지새웠던 적이 있었다. 불면이 사흘이 되가자 임신한 몸이라 모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태아는 안중에도 없고 나의 아이가 귀찮은 그 무거운 무엇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과 공포에 그만 아파트 베란다에서 충동적으로 아래를 바라보곤 했던 무서운 기억이 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바로 공황발작이라고 한다. 죽을 것 같은 공포에 오히려 발작적으로 살려는 의지가 없어지는...아무리 힘든 수험생 시절이나 재수시절에도 생각지 않았던 자살이 그렇게 충동적으로 다가올 줄 정말 꿈에도 몰랐다. 그 후로는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의 마인드 컨트롤도... 까짓것 죽을 것 같은 공포? 진짜 죽는 것도 아니다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것...하지만 진짜 죽음의 순간은 어떤 것일지 한편 궁금해지고 마음이 아련해지곤 했다.
정말 아름다운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내 나이 마흔이 되가니 이제는 자꾸 생각하게 되는 중요한 내 인생의 이슈가 되었다. 아이라 바이오크는 30년동안 수천 명의 죽음을 지켜본 미국의 유명한 호스피스 전문의이다. 그는 죽어가는 암환자들을 특히 많이 봐왔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실제적인 육체의 아픔을 적절한 진통제로 조절해 주기도 하며 그것으로 의사의 할 일은 다 하는 것일 테지만 그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항상 환자들에게 주었던 것이다. 그가 직접 목격한 수많은 죽음 앞에서 저절로 체득한 여러가지를 말이다.
그는 화해하지 못하고 서로 데면데면하지만 병실을 지키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서로 미안하다고 먼저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을 가르친다. 그는 항상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일단 한번 해보시고 안되면 뭐 손해는 아닌것이니까 밑져도 본전이니까 한번 해보라고 말이다. 그러면 대부분의 죽음을 맞이한 환자와 그의 가족들은 그의 말에 속은 셈치고 한번 시도를 해본다. 그 시도는 - 정말 엄청난 기적을 가져왔다- 죽어가는 이가 죽고 나서도 남은 가족들은 그 때의 화해의 행복한 순간들을, 또 짧지만 강렬하게 서로를 아끼고 보듬은 시간들을 떠올리며 그를 추억함으로서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도 큰 위안이 된다는 것을.
죽어가는 사람은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에 그리고 진정으로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았었다는 사실을 안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평안히 죽어가는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많은 경우들은 하나같이 화해할 수 없을 정도로 골이 깊어진 가족들의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결과는 하나같이 이보다 더 사랑스러운 가족은 없다가 되어버렸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책을 읽고 보니 정말로 큰 축복이다. 수술대에 올라서 그 수술대에서 생을 마감해 버리는 것보다 호스피스 병동에 남아서 생을 마감할 시간을 버는 사람들의 숭고한 마음들에 정말 숙연해지곤 했다. 나도 그렇게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절대로 수술대에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다.
너무나 사랑했다며 자녀 하나하나에게, 사위나 며느리에게,아직도 살아있는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며 내가 혹시 섭섭하게 한 적이 있다면 용서해달라고 그리고 정말로 사랑했다고 인사를 하고 싶다. 이 생각을 하니 아침시간에 쫓겨 윽박을 질렀거나 내 맘에 안 든다고 자녀들에게 박하게 굴었던 일들이 생각나며 가슴이 미어졌다. 적어도 죽음이 다가왔을때 자녀들에게 원망을 듣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 같다. 더 많이 안아주고 이해해 주어야 할 것 같다. 정말 사랑만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