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보다는 너의 꿈을 남겨라 -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 다음 세대에게 남긴 창조와 도전의 메시지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 (명진출판사) 7
박은몽 지음 / 명진출판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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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삼성그룹의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 태어난지 꼭 백년이 되는 해란다. 그래서인지 내가 좋아하는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의 일곱번째 주인공은 이병철 회장이었다. 지금의 삼성그룹을 꼭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는 그 자체로 훌륭한 인물이었다. 후대를 사는 우리들이 잘 몰랐던 그의 인생역정과 과거 삼성의 에피소드들과 그의 꿈이 그룹에 국한되지 않았고 한국의 발전을 위해 많이 노력했던 인물이라는 사실만큼은 존경할 만하다는걸...많은 사람들이 편견을 가지고 그를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재의 후계자나 그들이 어쨌는지는 몰라도 말이다.
 
그는 천석꾼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워낙 외진 곳이라 현대식 교육을 받지는 못했고 서당에 다녔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보다는 좋은 환경이었지만 당시 서울보다 훨씬 낙후된 곳이라 그다지 많은 혜택을 받지는 못했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바깥의 넓은 물을 꿈꾸던 그는 서울로 올라가 학업을 이루고 일본에 유학까지 가게 된다. 하지만 각기병이라는 무서운 병을 얻어서 돌아온다. 충분한 휴식과 잘 먹는 것만이 낫는 길이었기에 다행히 잘 회복할 수 있었고 서울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당시엔 일찍 결혼을 했다.) 자립심을 키워주려 했기에 300석지기 땅을 팔아서 사업밑천을 대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망한다 한들 아버지의 도움을 받을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했다 한다. 첫 사업은 정미소를 차리는 것이었다. 그가 정미소를 어디에 세웠는지 읽어보면 무릎을 치게된다. 당시 대도시들은 일본인들이 이미 정미소를 차려서 한 몫씩 챙기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마산까지 내려오게 되었는데 곡창지대인 마산이 쌀을 쌓아놓고 있는데도 정미소가 부족하여 줄을 서서 기다린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산에 정미소를 세운 것이었다. 당시 아버지의 밑천으로 부족했던 것을 동업자를 알아보아서 부족한 돈을 메꾸어 일을 시작했는데 처음 일년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후에 주식을 사고 팔듯이 시장의 원리를 깨우쳤던 병철은 서서히 사고파는 시점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쌀값이 내릴때는 샀고 오를 때는 내다 팔았다. 이어 화물운송업까지 성공을 거두게 되고 일년만에 큰 부자가 되었다. 하지만 은행이 대출을 몽땅 갚으라는 청천벽력같은 일이 터졌고 모든 것을 팔아 대출을 갚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1938년 드디어 삼성이 들어간 삼성상회을 열며 재기에 성공했다. 이후에 또 망하고 흥하기를 반복하는데 그 와중에 6.25전쟁도 있었고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났다. 양조장도 하고 전쟁후에는 지금은 너무나 유명한 제일모직을, 그리고 제일제당까지 지금 우리가 아는 재벌의 초석이 깔리게 된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비료공장을 국가에 헌납하게 되는 일이 있었고 삼성전자, 반도체사업까지 일으키게 되었는데 이병철 회장의 뚝심어린 힘이 이 모든 일을 하게끔 만든 것이었다. 십년 뒤를 내다 본 반도체 사업은 하드웨어를 잘 만드는 삼성과 우리나라의 전자, IT산업까지 세계속에서 우뚝 서게 한 근간이 되었는데...
 
지금의 한국은 하드웨어의 독식에 눈이 멀어 소프트웨어적인 개발이 많이 늦춰지게 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미국의 아이폰의 국내등장으로 우리의 닫혔던 눈이 드디어 뜨이게 된 것이다. 삼성의 후계자들이나 다른 통신사, 핸드폰을 만드는 큰 기업이 이병철 회장처럼 나라에 도움이 되는 사업에도 눈을 돌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의 IT 강국 이미지마저 많이 추락하고 흔들리고 있다니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이병철 회장의 앞을 내다보는 눈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들을 지금의 재벌들이 가져야 할 필수적인 마인드가 아닐까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쥬...그것을 아는 진정한 기업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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