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맨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지음, 조동섭 옮김 / 그책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조지는 58세의 남성이다. 그는 '퀴어'이다. 그의 내면은 그것을 감출 생각도 하지 않는다. 스스로 소수라고 생각하고 그 틀에 얽매이기도 하는 노년으로 향해 가는 남자 조지.. 싱글맨인 그는 일년전만 해도 남자애인인 '짐'이 있었다. 짐이 트럭에 받혀 죽기 전까지는 완벽한 한 쌍의 매미같은 연인이었다. 소설은 그가 죽은 뒤의 삶을 살아가는 조지의 모습을 삼인칭으로 때로는 일인칭으로 따라간다. 그리 두껍지 않은 두께의 소설임에도 처음에는 그 호흡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마치 버지니아 울프의 약간 지루한 소설을 읽는 느낌..그러나 감성은 프랑소와즈 사강의 자전적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곧 소설을 따라잡았다. 오랜만에 글의 힘에 압도되는 충만함은 일단 한 번 읽어낸 후 꼭 다시 반복하여 읽어보고픈 갈망을 일으킨다. 역자가 후기에 남긴 것처럼 이십대의 독자가 읽었다면 꼭 십년후에 다시 읽어보라는 주문이 합당하게 느껴진다. 이미 삼십대의 후반인 내겐 '조지'의 마음이 이해되는 것 같았다. 늙은이의 99% 는 추잡하다는 조지의 대사.. 이십대에는 그런가보다 했겠지만 치열하게 살아온 삼십대의 후반에선 정말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그저 그런 추잡한 인간으로 늙어가고 싶지 않을 뿐이다.

조지는 대학의 캠퍼스에서 두 아름다운 젊은이가 테니스를 치고 있는 모습을 그야말로 흐뭇하게 바라본다. 보통의 남자라면 눈길도 주지 않았을 장면에 그는 욕망마저 느낀다. 하지만 소설은 결코 난잡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우아하다고나 할까.. 그가 대학의 영미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라서 그럴까. 그렇다. 조지는 외면으로는 신사적이고 보수적이면서 깨어있는 교수이다. 그는 대학에서는 일부러 티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조지가 바라보는 사람들은- 하나하나 관음적인 시선으로 분석해 놓은 글- 을 보노라면 그의 유머감각 곧 저자의 유머감각도 심심치 않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독백과도 같은 긴 그의 수업을 읽고(듣고) 있으면 그의 식견에 감탄하게 된다. 그 스스로도 놀라 계속 시계를 쳐다보고 있던 학생들을 약간 야속하게 보았을 그 때는 수업이 이미 십분이나 지나있었을 때였다. 1962년에 쓰여진 소설 '싱글맨'은 문학이란 이런 것이다는 것을 오랜만에 느끼게 해준다. 맞아 이런 느낌이었지. 좋은 소설이나 글은 이런 쾌감을 주는 거였지.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만은 젊은 우리들의 싱글맨 조지는 케니라는 제자와 미묘한 유혹을 주고받게 된다. 케니의 정체성은 소설에서는 결코 알 수 없었지만 왠지 모든 것을 들켜버린 것 같은 조지가 안스럽다.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 아까 낮에 테니스장에서 보았던 두 젊은이의 한 사람을 케니로 대체시키며 두 남자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상상하며 쾌감에 떨었던 조지는 짐을 그리워하고 아직도 못 잊고 있음을, 그 슬픔이 왠지 느껴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소설의 마지막은 그가 결국 심장마비로 죽은 것인지 전지적 시점의 상상인지 다시 한 번 읽어봐야 겠다. 일년이 지나기 전에 꼭 다시 읽어볼 책으로 이 책을 우선 리스트에 올려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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