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균형 아시아 문학선 3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인도의 작가가 쓴 책은 처음 읽어보는 것 같다. 인구가 많아서일까. 문학성이 뛰어난 민족일까..그들의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고 상을 휩쓸기도 한다. 이 책의 작가도 인도에서 태어나 이십년을 살다가 이주해 간 캐나다에서 십년도 지나지 않아 권위있는 상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 천재적 작가의 이름은 로힌턴 미스트리. 아무리 인도가 영어를 쓴다고는 하지만 서구에서 십년도 살지 않고 영어로 쓴 작품이 이렇게 상을 받기가 쉽지는 않을텐데.. 우리나라에서 파란눈의 외국인이 국내의 문학상을 받는 것을 상상해 보니 더욱 대단해 보인다. 각설하고, 그만큼 호기심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 <적절한 균형>은 그 엄청난 두께에도 불구하고 흡입력이 상당한, 그리고 마음을 절절히 저미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어서 푹 빠져서 읽게 되었다. 왜 이 작가를 이제야 알았을까.. 소설을 읽으며 그 크기와 파동에 압도당하며 읽어나갔다.
 
두꺼운 소설이지만 비교적 복잡하지 않은 인물들로 인해 더욱 집약적으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디나, 이시바, 옴프라카시, 대학생 마넥 본인의 이야기와 또한 가까운 가족의 이야기로 가족의 역사와 현재의 이야기가 교차로 편집되어 있는 소설이다. 복잡한 기차에서 만난 이시바와 옴프라카시 (둘의 관계는 삼촌과 조카이다.) 는 마넥이라는 젊은이와 우연히 동행하고 같은 주소를 찾아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대학생인 마넥은 도시에서 대학에 다니면서 기숙사에서 지내며 때론 다른 하숙집을 다니기 위해서 엄마의 친구였던 디나아줌마를 찾아가는 길이었고 이시바와 옴프라카시는 재봉사로서 디나에게 고용되기 위해 찾아가는 길이었다.
 
소녀였던 디나는 의사였던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어머니가 정상적인 삶의 끈을 놓아버리고 오빠인 누스완의 보살핌과 극도의 참견을 겪으며 살아가고 나이들어가야 했다. 우연히 도피처였던 음악회에서 만났던 청년과 가난하지만 행복한 결혼을 하게 되고 그로부터 삼년이 지난 어느 날, 자전거타기를 좋아했던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게 된다. 오빠의 집에서 조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도우며 살아가다가 또다시 오빠인 누스완의 간섭과 질타를 견뎌낼 수 없어 남편이 남긴 누추한 아파트에서 홀로서기를 결심한다. 한달 월세를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녀.. 그녀는 마흔 두살의 나이까지 겨우 버티며 살아가다가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경고에 재봉일을 그만두고 중간에서 일감을 따내어 두명의 재봉사를 부리며 그들에게 임금을 주고 하숙을 치기로 결심하고 바로 그 순간 이시바와 옴, 그리고 마넥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이시바와 옴은 처음에는 열심히 일을 하다가 삯을 받기 시작하자 점점 요구가 많아지고 디나의 집주인은 집을 다른 사업적 용도로 쓰는 것 같다면서 집을 나가라고 독촉하고 디나는 하루하루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반면, 이시바와 옴의 불가촉천민으로서의 탄생과 그의 부모님이나 가족의 이야기들과 천민이라는 이유로 모질게 매를 맞아야만 했던 그들의 이야기와 무두질로 처참한 노동을 겪어야 했던 어린시절의 이야기들로 인도의 계급제도와 불가촉천민의 삶이 비참하게 고발되고 있다. 소설의 중반에서 후반으로 갈수록 여러 빈민들의 처참한 삶들이 계속해서 보여지고 그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과 선택들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너무나 가슴이 아프고도 아픈 이야기로 인해 이 책의 추천사를 쓴 뉴욕타임즈의 문학평론가 피코 아이어의 '당신의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플 거'라는 글이 실감이 났다.
 
IT강국이라는 인도.. 브라질과 중국과 더불어 신흥세력국으로 이미 발돋움하였고 철저한 계급제와 빈민들의 생활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나라, 여자들의 삶이 고단한 나라, 로힌튼 미스트리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인도의 모습을 그대로 그렸다고 한다. 강국으로 변해가는 만큼 자국의 사람들을 위해서 좋은 방향으로 바꾸어 간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 그렇다고 다큐같은 소설은 절대로 아니다. 문학성이 살아있는 마치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소설을 읽는 듯한 문학적인 느낌이 강한 소설로 정말 간만에 멋진 작품을 읽었다. 아마 십년이 지나도 손꼽는 소설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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