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하나뿐인 병원
캐서린 햄린 지음, 이병렬 옮김 / 북스넛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지구에 하나뿐인 병원..제목과 출판사에서 홍보하는 문구만 보았을 때는 에티오피아 여인들이 자주 생기는 질환인 '누'에 대한 책인 줄 알았다. 물론 캐서린 햄린이라는 걸출한 여의사가 쓴 임상기록같은 책인 줄 알았다. 처음에 주루룩 훑어보았을 때는 무슨 왕궁이야기나 황제, 공주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많나..이 사람은 진정 봉사정신이 가득한 의사가 맞나..그런 생각이 들었다. 왠걸..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아야 안다.

 

캐서린 햄린 박사의 나이는 어림짐작해도 여든이 넘었다. 현직에서 아직도 손을 놓지 않고 있는 여사는 정말 살아있는 마더 테레사라는 말이 맞았다. 책을 한번 잡으면 너무나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이어서 손을 놓기가 힘든 책이다. 이런 책을 오랜만에 만났는데 예전에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생각나게 한다. 바로 시골의 수의사였던 제임스 해리엇의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지은이의 특출난 기억력을 바탕으로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들을 유머러스하게 흥미진진하게 또 감동적으로 기술했다는 점이 유머러스한 것만 빼고 비슷한 책이다.

 

영국출신으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의사생활을 하던 중 만난 남편 레그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그들의 만남이 있기까지 조부의 조부의 역사까지 기술한 점은 놀랍다. 뛰어난 기억력과 세밀한 묘사가 작가로서도 충분한 자질을 보여주고 있는데 바로 그 점에서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그 느낌이 가끔은 마치 영화 '마지막 황제'를 서구인의 관점에서 본 것 같은 그런 데자뷰 현상이 느껴진다. 에티오피아의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를 가까이에서 여러 본 목격자로서 기술한 부분이 흥미있는데 대부분 독재자로 여러해 집권해 온 그를 단순한 독재자로 그리지 않고 우아한 신사에 많은 것을 갖춘 인물로 기술하고 있으며 이 부분은 어느 정도 정확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1975년 군부 쿠데타에 의해 황제가 하야하는 과정이나 국지전, 시가전 등을 자세히 서술한 부분, 황제의 죽음(타살로 여겨지는..)같은 부분이 바로 마지막 황제의 한 장면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만큼 자세한 기억력은 다시 한번 놀라게 한다.

 

이런 서사적인 부분은 캐서린 햄린 자신과 남편 그리고 아들 리처드의 이야기로 정점을 이루는데 이 가족의 역사 역시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드디어 의사로서 가슴을 찢는 듯한 아픔을 느끼게 한 환자들..바로 '누' 환자들의 이야기는 읽는 나로 하여금 역시 가슴을 찢게 했다. 같은 여성으로서 차마 마주하기 힘든 '누'.. 조혼의 풍습으로 인해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하고 마는 에티오피아의 여성들은 조산사 역시 주술사같은 여자들로 제대로 조산의 역할을 하지 않아 며칠씩 산통을 하다가 제대로 출산을 하지 못하고 아이가 4~5일만에 뱃속에서 사산을 하게 되는데 그 죽은 태아가 저절로 오그라 들면서 자연스럽게 몸 밖으로 배출되는 과정에서 질과 가까이 있는 요도관과 직장을 뚫어 소변과 대변을 항시 흐르게 하는 질환이 바로 이 '누'이다. 늘 지리는 오줌으로 인해 상처가 계속 오염되고 결석이 생기게 되어 나중에는 치료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직장까지 뚫어진 이는 그 냄새로 인해 온 마을 사람들에 의해 오두막 같은 곳으로 유배되는데 평생을 잘 씻지로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남들과는 떨어진 일만 해서 살아야 하는 등...정말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에티오피아는 산악지대가 많아서 병원을 찾아서 수백킬로미터를 구걸을 하며 걸어오는데 그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바로 캐서린 햄린 박사의 남편 레그는 이 누 환자들을 특히 가엽게 여겨서 다른 의사들이 꺼려해도 이 환자들을 먼저 치료해 주고 거처를 마련해 주고 무료로 치료를 해 준 후에도 먹을 것을 확보해 주는 등...이 부부가 한 일들은 정말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모자를 정도이다. 계속 에티오피아정부의 눈치를 보며 무료진료를 해 오던 중.. 누 환자들만을 위한 무료병원을 세우기로 부부가 결심하여 1974년 드디어 무료 누 전문병원을 개원하게 된다. 그리고 1975년의 군부 쿠데타...그리고 현재까지의 이야기는 정말 가슴뭉클한 한편의 드라마였다. 이 감동의 드라마를 여러 사람들이 읽고 같이 공감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캐서린 햄린 박사의 남편 레그 박사가 1972년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개인 박애상을 수상하게 되는데 그 자리에서 했던 연설문을 여기에 적어 본다.
 

유일한 자식을 사산하고, 실금을 슬퍼하며, 몸에서 냄새나는 것이 부끄럽고, 종종 남편에게도 쫓겨나며,
집도 없이, 들일 외에는 일자리가 없는 이들은 친구도 없이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견디며 존재한다.
이들은 말 못하는 부끄러움 속에서 슬픔을 참아낸다. 치료받지 못한 그들의 비참함은 절규한다. 외롭게 평생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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