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의 사랑의 힘 - 동화로 읽는 큰 인물 이야기
이붕 지음, 배은정 그림 / 문공사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동화로 읽는 큰인물이야기 '김수환 추기경의 사랑의 힘' - 김수환추기경님이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이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였다고 한다. 추기경님이 떠나시고 나서야 그분의 자리가 이렇게 컸음을 그분의 빈자리가 너무나 쓸쓸함을 깨달았다. 모두들 같은 마음이었는지 추도의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나 역시 그 행렬에 끼어서 배웅을 해드리고 싶었지만 아이들도 어리고 해서 참았었다.

 

참사랑을 몸소 실천하셨던 그 분...생의 마지막즈음엔 왜 그렇게 찾는 이도 없이 외로우셨을까..우리가 진작에 이 분의 삶을 알았더라면 그렇게 몇몇만 찾는 불상사는 없었을 텐데..왜 이 시대는 살아있는 위인에 대해 조명해 보지도 않고 알아보려 하지 않았을까.. 역시 위대한 사람들은 떠난 뒤에야 그 진가를 아는 것인가.. 너무 안타까웠다. 마더 테레사같은 경우는 살아 생전에도 많은 이들이 알아주고 있었는데..

 

우리 아이에게는 김수환추기경님에 대해 바로 알리고 싶어서 이 책을 구했다. 어른들이 읽어도 재미있고 감동적인 일화들..3학년인 딸아이는 신랑이 되고 싶었던 소년 김수환이 어머니의 바램대로 신학교에 입학하면서 했던 말, "나는 신부가 아니라 신랑이 되고 싶었는데.."에서 웃기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엉뚱한 반응이었지만 다시 읽어보니 어린아이들의 마음에는 곧이곧대로 우스운 말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역시 동화로 풀어쓴 글은 어린이에게 더 맞는구나 라는 생각에 마음이 흐뭇했다.

 

어린 수환은 역시 남달랐다. 일본의 침략기에 성장했던 그는 일본아이들과 서로 싸우게 된 상황에서 자기도 모르게 앞으로 나섰다가 날아오는 돌멩이를 맞게 된다. 수환의 형이 놀라 어머니에게 걱정을 끼치면 어떻하냐고 하면서도 용감한 동생덕분에 일본아이들도 멈칫하여 더 이상 서로 돌을 던지지 않았고 일이 커지지 않았던 것이다.

 

더 자라서는 신학교에 들어갔으나 수환은 이 길이 자신의 길인지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그냥 평범하게 결혼하고 상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내가 사제가 되는 것이 맞는가 하는 고민이 너무나 커서 당시엔 사제가 될 사람들은 돈을 가져서는 안되었는데 수업시간에 일부러 1전짜리 동전을 꺼내놓고 있었는데도 하나님의 뜻이었는지 한번도 걸리지 않아서 쫓겨나지 않았던 일화도 있었다.

 

당시 윤리과목의 시험문제에는 '조선의 청소년 학도에게 보내는 일본 천황의 칙유를 받은 황국 신민으로서 그 소감을 쓰라'는 어처구니없는 시험문제가 나와서 모두들 분노하고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는데 수환은 1번 나는 황국 신민이 아님, 2번 따라서 소감이 없음.이라는 답안지를 내고야 말았다. 당시 교장은 놀라 학교폐쇄의 위기가 될 수도 있다며 수환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고 한다. 다행히 그 후로도 퇴학은 결정되지 않았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도 신학교에서 퇴출당하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이다. 사제가 되고 많은 사람들을 특유의 친화력으로 보듬어주고 나아가 우리나라 최초의 추기경이 되라는 하나님의 섭리..

 

일본 유학시기에 크리스마스 전날 어느 절의 불상 뒤에서의 장차 목사가 될 학생과 신부가 될 수환이 부르게 되는 크리스마스캐롤은 훗날 불교, 천주교,기독교의 벽을 허무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최연소 추기경님이 된 김수환추기경님은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서 청와대에서 대통령에게도 입바른 소리를 하는 이 시대의 용기있는 발언과 금이 되는 침묵을 가진 분이셨다. 우리 아이가 참 재미있게 읽었고 김수환추기경님에 대해서 잘 알게 되어 너무나 행복하다고 했다. 이런 분이 계셨다는 걸 정말 몰랐다고 왜 이렇게 빨리 가셨냐는 것이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정말 위대한 어른을 잃은 기분..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속에서 특유의 표정으로 웃고 계실 김수환 추기경님.. 저 위에서 항상 우리를 위해 기도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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