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예술작품이었을 때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지음, 김민정 옮김 / 밝은세상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파우스트처럼 악마에 영혼을 판 남자의 이야기. 내가 예술작품이었을때.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의 작품이다. 엠마뉴엘 슈미트의 이름은 들어본 것 같으나 그의 책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고백하건데....파우스트는 어릴적 몇번의 시도에도 그 두꺼운 두께와 난해한 글에 눌려서 전체를 다 읽어본 적이 없다. 이 책 역시 악마같은 한 남자에게 자신을 판 또 다른 남자의 이야기라서 난해하고 어려울 줄 알았다. 오호 놀랍게도 술술 읽힌다. 재미도 있다. 게다가 뭔가 생각할 거리도 던져준다. 그럼에도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같은 책을 기대했을까.. 아마도 불어 그대로 읽게 되었다면 훨씬 멋있는 소설이었을 것 같다. 번역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뭐랄까..약간 무게감이 없어보인다고 할까..원작도 그럴지 모르겠지만 내 기우일지도 모르겠지만.. 암튼 잠시 스쳐지나가는 생각을 던져버리고 책에 집중해서 읽다보니 책에 푹 빠져든다.

 
내가 예술작품이었을때의 주인공인 바로 '나'는 '타지오 피렐리'라는 청년이다. 그 아름답기로 유명한 쌍둥이 형제 <피렐리 형제>가 바로 그의 형들이라는 이유로 보통의 기준에서는 잘생겼다고 볼수도 있는 타지오는 피렐리 형들의 눈부신 미모에 가려진 암담한 십대시절을 거치면서 자신은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부모님의 사랑도 받고 있음에도 모든 미디어나 주변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피렐리형제에게만 향해 있으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예 집을 뛰쳐나가 자신만의 독립된 삶을 살았더라면 좋았으련만 소설의 배경인 섬이라는 특성상 그냥 그대로 눌러앉아 살았나보다. 자신을 죽여가며 살 수 밖에 없었나 보다.. 결국 스물 몇살이 되던 해.. 곪아처질데로 터진 타지오의 마음은 육신을 절벽으로 향하게 하고 만다. 소설 초입부부터 나오는 이야기이니 스포는 아니리라..

잠깐만 기다리시오!! 라고 타지오를 말리던 남자. 온갖 보석으로 이빨을 치장한 묘하게 아름다운 늙은 남자. 제우스 페테르 라마. 이름부터가 제우스라니..허허.. 자신이 가진 미술적 재능을 오히려 썩힌 채 온갖 말치장으로만 예술품을 만들어 비싸게 팔아치우는 능력으로 엄청난 부자가 된 바람둥이이자 자신밖에 모르는 나르시스트 제우스를 만나게 된 것은 운명의 장난이리라. 제우스의 제안을 하루에 걸쳐 듣게 된 타지오는 결국 악마에게 영혼을 팔게 되는 파우스트처럼 제우스에게 자신을 팔아버리게 된다. 제우스의 예술작품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타지오.. 

타지오란 이름은 내겐 아련한 아름다움을 주는 이름이다.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한 소설가가 사랑하게 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년의 이름이 바로 '타지오'가 아니었던가. 바로 베르사이유의 장미란 일본 순정만화에서의 오스칼의 모델이 된 남자가 이 타지오 역할을 맡았었다는 사실.. 암튼 바로 그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보게 된다면 그 타지오의 아름다움에 반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같은 이름이라는 우연으로라도 애정을 가지고 끝까지 지켜본 '타지오' 는 결국 인간이었던 자신을 포기할 정도로 엄청난 수술을 통해 예술작품으로 거듭나게 되며(소설에서는 자세한 언급을 꺼려할 정도로 그의 변한 모습은 상상을 초월할 듯 하다..) 온몸이 해체되어 다리에 철심과 봉이 마구 박힌 표지에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 다행히 사건들은 너무 안스럽게만 진행되지는 않는다. 그 가운데서 유머와 위트까지 엿볼 수 있으니 작가의 역량이 너무나 대단하다.

그래도 순간순간 안타까운 순간들과 어리석은 순간들을 지나치며 진정한 내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사람들...진정한 예술가인 한니발과 그의 딸인 피오나를 만나면서 구원을 얻게 된다.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된다. 그러면서 다시금 그들과 함께 살기 위해, 인간다운 삶을, 개인을 포기했었지만 인간성의 회복과 나는 나만의 것인 '자유'를 위해 이젠 그것을 다시 찾기 위한 몸부림이 시작된다.

물론 제우스 페테르 라마가 가만히 있겠는가. 그를 속이고 과연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것은 소설을 읽으면서 확인하기 바란다. 물질과 외모만능주의에서 비롯된 소설이지만 유머와 위트와 엽기와 구토와 감동과 눈물이 뒤섞인 아주 오랜만에 읽어보는 정통소설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온통 스릴러와 추리소설투성이인 책들 속에서 아름답게 빛나게 될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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