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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독서 - 김형석 교수를 만든
김형석 지음 / 비전과리더십 / 2021년 5월
평점 :
1920년 출생의 김형석 박사님은 우리 부모님이 매우 존경하시는 분이라 익히 들어 왔는데 어쩌다보니 방송도 못 보았고 책도 못 읽었다가 이번에 이렇게 읽게 되었다. 이십여년전에 나온 책이라지만 그래도 7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이셨을 나이에 쓴 글이라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놀랍게 다가왔다. 2021년 책머리말에서 본인도 이십년이 지났지만 그때보다 정신이나 마음이 더 늙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신단다. 시부모님도 팔순이 넘으시니 몸도 정신도 조금씩 흐릿해지시는데 어찌 이럴수가 있을까. 끝없는 독서와 사색 덕분이 아닐까..
처음엔 호기심으로 읽어나가다가 이내 그 당시의 문인들과 해외문인 철학가들의 사상과 사생활 그리고 김형석 박사님의 젊은 시절 일제강점기에 제대로 한글을 쓰지 못하고 일본어만 해야 했던 학창시절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그 시대가 확 다가왔다. 서구의 철학자 학자들이 일본이나 한국의 대학으로 들어와 강의를 했던 것도 신기했고 오히려 지금보다 그 시대가 더 활발했던 것 같다. 학생들의 학업과 공부의 의지는 지금과 다를 바가 없고 대학에 들어가서야 한국어를 실컷 쓸 수 있었다는 사실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중학교 시절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수차례 읽으면서 느꼈던 감동과 느낌을 적어놓으셨고 그것이 긴 독서의 시작이셨다고 한다. 이후 부활, 안나 까레니나를 읽었는데 부활에서는 그만한 감동을 느끼지 못하고 안나 까레니나를 읽으면서는 전쟁과 평화때의 느낌이 살아났다니 고전 명작은 정말 그때나 지금이나 대단한 작품들임에 틀림없다. 당시 일본이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에 심취되어 우리나라에도 전해졌기에 그 영향으로 내가 어릴적에도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같은 작가의 작품들이 미국작가들의 작품보다 유명했던 것도 다 그 영향인 것 같다. 참 신기한 일이다. 내가 이미 태어나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던 일들이 다 일제강점기부터 누적된 것들이라는게 이 책을 읽으며 더욱 확신이 들었다. 김형석 박사님의 대단한 기억력으로 쓴 이 책들을 읽자니 이분이 1920년전의 시대와 현재의 다리를 잇는 산증인이신것이다.
마찬가지로 독일의 철학자들의 계보도 우리 시대의 그 누구보다 박사님이 더욱 가까운 시대를 살았기에 엄청나게 실감있게 다가온다. 책으로 뒤늦게 공부한 후대들보다 훨씬 그 시대에 걸쳐서 소문들을 듣고 자랐던 사람과 모든 것을 다 씌어진 책에만 의존하는 후대들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칸트와 헤겔 등 독일관념론의 시작과 끝, 피히테나 헤닝같은 제자들은 결코 그들의 세계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어서 나의 철학은 그런것이 아니네 라고 안타까워 했다는 얘기들.. 헤겔에서 마르크스 그리고 열명이 넘는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풀어 놓으신다.
그리고 또 한편으론 쇼펜하우어, 그 뒤를 이은 니체나 헤겔의 뒤를 이은 키르케고르 같은 철학자들의 이야기, 존 스튜어트 밀, 1800년대 후기 사람들은 그나마 김형석 교수와 더 가까운 사람들인 것이다. 그들의 사생활 이야기도 조금씩 언급되는데 매우 흥미로왔다. 말년에 정신병으로 고생한 철학자가 많았다는 사실은 무얼 의미할까. 그들도 나이가 들면 뭔가가 흐려진다는 것인데 김형석 박사님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신앙의 힘일까.
일본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러시아 국적이지만 독일에서 수학한 라파엘 쾨베르 교수의 이야기도 매우 흥미로왔다. 1893년 누군가의 추천으로 일본 도쿄대학교에 부임한 교수로서 학생들과의 대담이 남아있는데 그 이야기들도 흥미롭고 제대로 된 질문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도 고찰해 볼 수 있었다. 고향에 대한 언급을 자주 했다는데 독일말을 특히 그리워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포들도 말년에는 한국말을 실컷 쓸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말을 한다니 고국의 언어는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하나의 언어라도 제대로 습득한 후에 제2의 언어를 배우는 것도 생각해 볼만하다. 두가지 언어를 완벽하게 할 수는 없다고 한다. 몇명의 천재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요즘 유아기부터 한국어는 무시하고 너무 영어만 배우는 아이들 부모들에게도 생각해 볼 문제이다. 내가 만약 글을 쓸 때에 한국에서 나고 자라 이정도 언어를 구사하지 못한다면 한국어로도 영어로도 내가 생각한 바나 어휘를 제대로 넣은 글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이 매우 괴로웠을 것 같다. 그래서 영어를 못한다는 자괴감이 늘 있었는데 살짝 해방감을 느꼈던 대목이었다.
암튼 김형석 박사님의 백년의 독서를 읽고 있자니 요즈음 스마트폰만 들고 살았던 생활들이 반성이 되고 너무 멀티로 살아서 이것저것 다 제대로 못하는 느낌이었는데 다시금 책을 정독을 하며 살아야 나의 뇌도 덜 늙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철학책을 다시금 읽고픈 사람들에게 길잡이가 될 책이고 정독을 하고픈 사람들 그리고 백년의 신사에게 삶의 지혜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