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파리를 걷다
진동선 지음 / 북스코프(아카넷)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파리의 첫 인상은 <올드> 그 자체였다. 온갖 네온 싸인과 쭉쭉 뻗은 대로 가득히 질주하는 차들로 가득찬 서울 사람의 눈에 파리의 첫 느낌은 <오래된 신비함>이었다. 사진들로만 봐 왔던 파리의 도시 곳곳은 정성들여 연출한 사진보다 훨씬 더 아름다왔다. 

<올드 파리를 걷다> 제목을 보는 순간, 그때의 그 느낌들이 강렬하게 다가와 집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또 어떻게 변했을 지 모르지만, 내가 보았던 십 수년 전의 파리의 거리가 그대로 펼쳐지는 것만 같은 기대감으로. 

그저 멋진 풍경과 감초 같이 곁들인 에세이 정도로 생각했던 이 책은 인상보다 훨씬 더 묵직하다. 2010년 파리를 방문한 사진작가 진동선은 1890년대를 기점으로 온갖 만국 박람회가 열렸던 파리가 어떻게 변해 버렸는지, 각종 산업과 기계 문명으로 인해 파괴되고 버려진 <올드 파리>를 끈질긴 시선으로 찾아 다닌다. 그가 찾아다니는 <올드 파리>의 실마리는 일종의 도큐먼트 사진작가라고 할 수 있는 <외젠 앗제>의 시선이다. 

 

   
 

외젠 앗제 

1857년 2월 12일에 태어나 1927년 8월 4일에 세상을 떠난 파리 사진가다. 1868년에는 어린 선원이었고, 1876년에는 유랑 극단 배우였다. 1896년 파리에서 사진을 시작한 후 프랑스 문학과 미술에 초현실주의 영감을 제공했고, 수많은 예술가에게 사진을 제공했다. 파리 현대화와 대도시화를 목도하고 그 모든 대도시적 시간과 사건과 역사를 카메라에 담았으나 정작 본인은 1927년 사진 1만 7천여 점만 남기고 쓸쓸하게 삶과 이별한 카메라의 서정시인이었다. p.32

 
   

  

   
  올드 파리의 몰락 - 낡은 도시, 오래된 건물, 비좁은 뒷골목이 붕괴된다...앗제는 올드 파리의 길을 걷고, 사진을 찍었다. 외상과 내상을 입은 옛 궁전, 교회, 건물, 어느덧 잊히고 몰락해가는 지난 삶의 풍경과 풍속을 카메라에 담았다.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 비루한 삶의 거처, 직업, 사람들이었다.
앗제의 사진에 거대한 용광로와 목재 연료의 가마가 나란히 공존하는 사진이 있다. 증기기관과 나란히 수차가 내달리고, 휘황찬란한 백화점 옆에 낡은 구멍가게가 있다. 멋진 턱시도를 입은 신사 옆에 초라한 넝마주이가 공존하는 사진이 있다. 또 나자빠진 지난 시간의 잔해 뒤로 한껏 솟아오르는 철골, 유리로 된 현대식 건물, 새로운 상품으로 채워진 상가, 만지지 말고 오로지 눈으로만 보아야 하는 쇼윈도 사진이 있다. 모두 옛 파리의 마지막 숨결을 암시한다. 사라진 시간을 누설한다. p.65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변해가는 파리의 마지막 모습들을 끊임없이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던 앗제의 시선을 따라 저자도 골목 골목을 누비고 있다. 올드 파리의 찬란했던 영광과 혁명의 기치 아래 뿌려진 수많은 피의 울부짖음, 전 세계의 유행과 개방의 중심지가 된 파리의 빛과 어두움으로 가득찬 그 골목 골목을 카메라에 담아내며 그 곳에 서려있는 역사와 인문학적 예술적 사실들을 풀어내고 있다. 

<사진 에세이를 넘어서 인문학적 에세이를 꿈꾸었다. 또 기행문을 넘어서 소설을 꿈꾸었다...p.388> 

저자의 에필로그에 나와 있는 대로 이 책은 사진집의 첫 인상을 무색케 하는 인문학적 에세이라고 정의해야 할 듯하다. 사라져 가는 올드 파리에 대한 감상에서 시작하는가 했더니, 사라져 가게 된 역사적 배경과 시대적 상황, 그 시대의 문인과 예술가들의 감성을 서정적인 사진과 객관적인 자료들을 잘 버무려 놓고 있다. 

앗제가 활동하던 시기의 파리, 1890년대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의 파리는 그야말로 예술가들의 무대였다. 인상파 화가들, 초현실주의 작가와 예술가들은 파리의 거리로 까페로 골목으로 모여들어 그 시대의 현재를 담아내고 미래를 그려내기에 분주했다. 그 시작은 <마네>였다. 

 

   
 

그에게 <인상<은 현대적 삶의 단상이다. 새로운 문화의 출현을 알리는 환각적 풍경에 대한 인상이다. "마네의 그림은 그림을 통한 신구 간의 날선 싸움 혹은 과거와 미래를 두고 벌이는 시대 인식의 투쟁"과도 같다. 
인상은 순간의 이미지다. 순간에 관찰된 감각적 인식이며 관찰자의 감각기관에 수용되는 짧은 잔영이다. 그러나 내면을 응시하는 힘, 보이지 않는 순간적인 것까지 삶의 본질로 끌어안은 현대성의 인식이다. 바로 마네의 그림이다.
모네, 세잔, 피사로 같은 새로운 회화의 선구자들도 마네가 뿌리였다. 실제로 마네와 함께 파리 교외에서 작업했으며 햇빛에 반사되는 것처럼 현대 파리 사람들이 여흥을 생생히 목격했다. 파편적인 삶, 덧없는 삶, 떠밀리듯 휩쓸려가는 부초 같은 삶에 대한 현대성의 감각을 공유했다. 모두 급격한 사회 변화에 대한 새로운 이성의 출현이었고, 파편적인 파리의 시간, 덧없는 파리의 삶에 대한 인상이었다. p.120

 
   

 

책 곳곳에서 예술가들을 만난다. 마네, 시인 보들레르, 모네, 세잔, 르느와르, 피카소, 샤갈, 마티스, 만 레이, 장 콕토, 키키, 키슬링.......
책에서만 화보에서만 사진에서만 보던 그들이 파리의 골목 골목을 어울려 다니며 파리의 로통드 까페에 앉아 예술을 논하며, 어느 골목 어귀의 작업실에서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그림들을 그리고 있는 것. 사라져 가는 올드 파리의 어느 구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그 현장 속으로 어느새 나도 들어가 있었다.
개개의 예술가들을 그닥 좋아하지는 않지만, 지금 내가 <인상파>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미래파> 등으로 규정지어 있는 '사조'로 배우고 알고 있는 그 시대 그 생각의 흐름이 파리라는 도시에 온전히 녹아져 있는 듯한 감동. 상상만으로도 짜릿한 경험이다. 저자의 시선을 따라 그저 활자로만 경험하기에 너무 아쉬운 풍경이다. 

 

   
 

그 중 까페 로통드가 전위 예술가들의 본거지였다. 아방가르드 예술 정신의 발신지였고, 다다에서 초현실주의까지 세계 미술의 전진기지였으며 현대미술을 오늘의 모습으로 있게 한 역사적 장소였다. 1900년에 문을 연 로통드는 전화기까지 갖추고 있었다. 피카소, 모딜리아니는 매일 이곳으로 출근했다. 바야흐로 몽파르나스 시대였다. p.207

 
   

  

사라져 가는 것들 - 시간을 포함한-에 대한 외젠 앗제의 집요하고 꼼꼼한 시선은 그것이 <올드 파리>의 기록이었음에도 어느 덧 현실을 초월한 <초현실주의 파리>로 규정된다. 초현실주의 작가들에 의한 정의였겠지만, 20세기 초의 파리가 얼마나 빨리 급격하게 옛것을 벗어버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불과 몇 년 전의 것이 <올드>가 되었다가 <초현실>까지 되어 버리는 문명의 어두운 뒷면. 

그러니까, 내가 보고 왔던 파리는 내 기준으로 <올드>였던 것. 난 그때 파리가 <올드>와 <뉴>를 참 조화롭고 아름답게도 잘 지켜왔다고만 생각했었다. 과거의 시간을 모두 싹 쓸어버린 서울과 비교하면서...하지만 그들의 뒷면도 그리 조화롭지만은 못했음을 알게 된다. 모든 시간은 사라져버린 것들의 현재다. 

 

   
 

20세기 초반의 파리는 모든 면에서 초현실이었다. 급격한 발전과 속도로 아우성이었고 혼란이었고 아노미였다.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과 동물이 차에 치였다. 인공조명에 밤이 낮이 되었고 새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시민들은 사라진 산책길에 망연자실했고 붕괴된 파사주에 길을 잃었다.
초현실주의는 이 같은 정황에서 꽃을 피웠다.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부터 감각상실을 막고, 무의식의 흐름을 차단하고, 속도의 시공간이 어떻게 우리를 이끌어가는지 깨어나게 했다. 그리하여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 꿈과 환상으로 채색된 초현실의 모습이라는 것을 자각시켰다. p.222
 

 
   

 

   
 

유행이 올드 파리의 몰락에 한몫했다. 지겨움을 느끼는 속도, 새로움을 요구하는 유행의 속도가 작용했다. 유행은 태생적으로 시간의 산물이다.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때, 시간의 죽음을 조롱할 때 태어나는 시간의 얼굴이다. 치명적이지 않은 유행은 없다. 어떤 유행도 치명적이다. 죽음을 전제하지 않는 유행은 없다. 죽이고 밀어내지 않는 유행은 없다. p352 

 
   

 

현재 파리의 화려함과 멋스러움에 감탄하지만 끊임없는 <올드 파리>에 대한 향수와 집착. 그건 사라져 가는 과거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리라. 앗제의 묘를 찾는 것도 사라져 가버린 <올드 파리>의 뒷 모습에라도 경의를 표하려는 작가의 마지막 예의 같기도 하다.  

현재, 내가 보고 있는 것은 과연 어떤 것들의 초현실일까. 내가 발디딛고 있는 현실이란 것은 또 어떤 것들을 죽이고 밀어내고 만들어진 인상일까. 저자가 본 20세기 초의 파리는 무자비하게 그 족적을 없앤 주범으로 나오지만, 21세기 초의 대한민국에서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그래도 파리는 훨씬 <올드>에 대해 예의바르다는 것이다. 그게 선진국이어서, 파리여서, 프랑스여서라기 보다는 앗제처럼, 이 책의 저자 처럼 사라진 <올드>에 대한 경외와 존경으로 끝없이 뒤쫏는 사람들이 존재하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아닐까. 

파리에 가고 싶다. <올드 파리>의 흔적들을 간직하고 오늘도 초현실의 현실을 만들어 내고 있는 <뉴 파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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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2-09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서울만 하겠습니까... ㅠㅠ

아, 여행가고 싶다. 여행가고 싶다. 여행가고 싶다. 여행가고 싶다. 여행가고 싶다. 여행가고 싶다. 여행가고 싶다. 여행가고 싶다. 여행가고 싶다. --- 끙.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2-09 09:0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사라져가는 파리라니...
파리를 그렇게 평가하면 서울은 뭐...우리의 사라진 수천년 역사는 어디서 보상받아야 되는거죠?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정말 미친 듯이 유럽엘 가고 싶더라구요.
우리 둘이 갈까요? ㅋㅋㅋ

아이리시스 2011-02-09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올드 파리.
두 분 또 벌써 파리 가셨다, 큭큭.
파리. 두 자가 들어간 책은 그것만으로도 선물이예요, 그죠?^^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2-09 20:4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
아이리시스님도 콜? ㅋㅋㅋ
여자들끼리 가는 여행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