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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아쉽게 201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하신 고은 시인께는 참 죄송한 말씀이지만, 덕분에 아주 재미있는 작가 한 명을 알게 되어 흐뭇해하고 있는 중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에게 관심을 가진적도 처음이고 그 작가의 책을 일부러 찾아 본 것도 처음이니까...
처음에 제목만 봤을 때는 무슨 추리소설이나 재미없는 정치소설이 아닌가 싶어 내키지 않았는데, 마침 도서관에 아주 새 책으로 고이 꽂혀져 있기에 냉큼 집어와 버려 읽게 되었다. 문체도, 주제도 심각할 수 있는 페루 사회의 문제들을 내보이기에 시종일관 진지하지만, 그 진지한 문체와 형식을 가지고 이렇게 위트넘치고 풍자적일 수 있는지 감탄스러울 정도다.
1973년에 발표한 소설이고,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60년대 중반, 페루의 아마존 유역의 국경 수비대 안이다. 사회적으로 격리되어있는 국경수비대 군인들이 주변 민간인 부락의 여자들을 성욕 해소의 수단으로 삼는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그런 일들이 자꾸 커지면서 군대에 대한 민심이 흉흉해지자 군대 수장들은 '특별봉사대'라는 군대내 비밀조직을 만들어 군사들의 성욕을 해소하고자 하는 비밀 프로젝트를 모의하기에 이른다. '특별봉사대'의 비밀을 철저히 지켜주면서도 완벽한 일처리를 할 수 있는 책임자로는 최고의 행정 전문가이자 꼿꼿하고 빈틈없는 판토하 대위가 적임자로 선출되고, 이야기는 그의 완벽한 일처리와 군대에 대한 절대 충성이 어떤 웃지못할 결과들을 가져오는지 유쾌한 문장으로 이어진다.
이야기는 '특별봉사대'의 이야기와 그 당시 사람들 사이에 떠오르던 신흥 이단 종교의 정신병적 현상을 교차적으로 보여주며 진행된다. 판토하 대위의 가정, 특별봉사대가 근무하는 은밀한 창고와 신흥종교집단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는 사람들의 종교 행위들을 번갈아 교차 편집하면서 한 사회가 어떻게 병적으로 미쳐가는지 보여준다고 할까. 1970년대의 소설임에도 영화적 교차편집의 장면들같은 소설 형식이 꽤나 인상적이다. 처음엔 이게 뭐야~하며 머릿속을 정리해 가며 읽어야 했으니까..
남미 사람들 특유의 호들갑스러움과 긍정적인 태도가 문체에 그대로 드러나고, 심각한 이야기를 위트와 재치로 풀어가고 있는 작가의 의도가 맞물려 사람들의 이기심과 추악함과 타락이 무겁지 않게 그려지고 있다. 무엇보다 판토하 대위가 자신이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특별봉사대'의 활동에 관해 상부에 보고하는 형식의 보고서를 읽다보면, 진지하고 철저하고 객관적인 듯한 보고서가 예상치 않게 얼마나 풍자적인 즐거움을 선사하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가정이나, 군대나, 사회나, 종교 집단에서...사람들이 목적과 상호적인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달려들 때, 얼마나 편협하고 맹목적이고 파괴적인 되는지 보여주는, 그래서 인간 시각의 한계와 약함을 보여주는 통렬하고도 즐거운 책이다. 이 작가의 다른 책들에도 호기심이 가는데 언제 날 잡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ps. 주인공 판토하 대위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매력적인지...이런 인물이 사랑받을 수 있다는게 신기하다~이건 아마도 작가의 역량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