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지음 / 열림원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20190801 김애란

김애란의 소설을 처음 만난 여름을 생각했다. 딱 지금 같은 무렵, 2007년이었다. 통장에 든 단 130만원으로 100에 30짜리 반지하를 구해 엄마와 은거했다. 세입자 구함을 알리는 흰종이 위에는 괄호치고 100/32에어컨 이라 써 있었는데 월 2만원씩 더 내면 에어컨을 달아준다는 뜻이었다. 나와 엄마는 그 셈법이 참 어이없다고 생각했고 괄호 앞의 더 저렴한 숫자를 택했다. 주인은 반지하 옆 창고에서 아주아주 낡은 선풍기를 꺼내 빌려주었다. 여름엔 무더위, 겨울엔 결로로 인해 퐁퐁 피어나는 곰팡이에 시달렸다. 그래도 지나고 보면 주인 내외 그간 거친 수많은 집주인들 중에는 좋은 사람 축에 속했다. 1년을 못 채우고 이사 나갈 때도 그래, 더 좋은 데로 가게 된 거면 축하해줘야지 하고 배웅해줬으니.
다음 달 월세를 내기 위해 과외 알바를 구하고 비는 시간에 시험 공부를 하던 나, 20여 년동안 받은 상처가 굳다 못해 멍해져 어찌할 바를 모르고 불안에 떨면서도 돈은 벌어야겠어서 베이비시터 일을 나가던 엄마. 둘의 소일 거리를 위해 나는 돈이 생기는 대로 부지런히 책을 사모으고 피씨방에 가서 영화 파일을 다운받아 인터넷이 없는 집의 컴퓨터(동생이 그림 작업한다고 다른 짐은 다 두고 컴퓨터는 챙겨왔다)로 날랐다. 소설책은 번갈아가며 보고 영화(구타유발자 같은 거. 취항 참)는 같이 봤다.
그런 방에 살 때 그런 비슷한 방과 가난을 이야기하고, 하여간 내 처지랑 너무 맞는 이야기들을 젊은 김애란이 써준 덕에 달려라 아비를 재미있게 읽었고 위로도 받았다. 내 생애주기에 맞춰 또다른 이야기들이 속속 나와서 침이 고인다, 비행운, 바깥은 여름... 안타까워하며 슬퍼하며 여러번 읽었다. 애기를 낳고 두번째로 두근두근 내인생을 읽고는 조금 울었던 것 같다.
그렇게 자라는?늙는? 동안 전작을 다 봤으니 내 만신전 같은 책꽂이엔 당연히 김애란 코너가 있다. 산문집 소식을 듣고는 아무래도, 안 읽는게 낫겠지, 하다가도 결국 팬 된 도리로 읽고나서 후회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구입했다.

읽는 동안의 팔할 정도는 역시 내게 에세이는 맞지 않아, 2005년에 쓴 글까지 묶다니 양심 무엇, 왜 이걸 참고 읽는가, 얼른 다 읽고 벗어나 중고서점에 팔아야지 하는 시간이었다. 글쓰는 이에게는 예의 없지만 기대한 나에게는 그랬다. 다음 소설책이나 얼른 내주면 보고 싶다 하고.
제임스 설터 산문집을 보고 별로다 했던 것의 세 배 정도 더 별로였다. 특히 2부 읽는 게 힘들었다. 작가와 친한 다른 작가들, 유명 작가에 대한 그리움과 친분과 사랑이 담긴 닭살 돋는 글. 그게 뭐 그리 고까울 일이냐 싶은데 재미없고 무익하다는 생각을 못 지웠다. 그 작가들 읽어보고 싶다 하는 생각을 들게 하지 못한 게 패인 아닐까요.

각 글마다 쓰인 연도는 적혀 있는데 각 산문이 어떤 용도와 맥락으로 쓰여진 건지 밝혀줬더라면 그런 마음이 좀 덜했을 것 같다. 이미 읽은 글들이 있어서 짐작이 가는 용도도 있지만 아닌 것도 많았다. 누군가의 수상 축하, 자신의 수상 소감, 서평, 추모 등등 실린 지면과 낭독된 상황을 알려줬더라면. 그런 것 없이도 순전히 문장과 짧은 글 하나 만으로도 울리고 벅찬 사람들도 있기야 있겠지만 나는 거기 속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 소외감 넘치고 으으. 너무하다 너무해. 한 거겠지.

뒷부분에서 그래도 마음에 드는 글 몇 편을 찾아 그래, 이거 한 두편이라도 건졌으면 한 권 읽은 보람은 있지 않겠니. 끝이 좋으니 좋은 거야. 빨리 팔고 싶다고 한 거 좀 미안해 하렴 하고 아주 잠깐 반성(도 했지만 아마 곧 팔러 나가려)했다.
내가 알던 이름인 단치히와 아우슈비츠 대신 그단스크와 오시비엥침이란 발음을 알려준 부분.
연필에 얽힌 제법 길고 최근에 쓴 글이 이 책에 실린 단문 중에는 가장 마음에 들었다.
눈먼자들의 국가에 실린 글을 다시 읽을 기회가 된 건 좋으면서도 슬펐고.

아마도, 내가 브레히트의 시집’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소설집’상어가 사람이라면’을 중고로 사서 꽂아놓고 봐야지, 하게 만든 같은 사람 이야기가 나온 부분도 좋았다. 여기서 겹치는 인생, 이라 하기엔 그 두 사람과 내 접점은 전혀 없는 것에 가깝고 내가 일방적으로 바라보는 두 위인?의 만남에 대한 것이니.
스무살 때였다. 동아리방에 내가 잘 모르는 고학번 대학원생 선배 언니가 들렀다가 의자에 앉은 채 담배에 불을 붙였(나 붙이려 했)다. 나는 정색을 하며 룸은 금연이에요! 라고(다른 선배들에게 들은 대로)쏘아 붙였고, 그 선배는 이제는 그러니, 미안. 하고 담배 연기(붙였군)를 손으로 흩뜨리며 부리나케 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아마도 다시는 동아리방에 들르지 않았다.
나중에야 내가 쫓아버린 그 언니가 중고등학교 시절 마르고 닳게 듣던 모노크롬 go with the light을 피쳐링한 소리꾼인 걸 알았다. 뒤늦게 집구석에 앉아 벅스 뮤직에서 그 언니가 완창한 춘향가를 찾아 듣고 개인 홈페이지를 들락대며 언니의 글과 그림을 구경하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그 언니가 활동할 당시 상어가 사람이라면, 이라는 제목의 동아리 공연을 기획해 팜플렛이 동방 구석을 굴러다녔고, 전공 수업을 들을 때 어느 교수님이 같은 제목을 언급하며 이야기한 내용이 (지금은 기억 안나지만)인상 깊었고, 그 언니가 브레히트를 판소리로 재구성해 공연 한다는 소식만 듣고 가보진 못하면서 브레히트 책을 사 모은 것이었다. 그 언니가 하는 인디밴드 공연은 나중에 선배들을 따라 몇 번 보러갔다. 앨범 음원도 구입해 한 때 들었다.
뭐 그런 소리꾼이 김애란 작가의 소설로 판소리를 꾸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새로웠다.
나의 무지와 무례를 깨닫는 건 항상 뒤늦고 그건 사는 일에서도 책읽기에서도 항상 마찬가지다. 늦더라도 깨달으면 다행인가 싶지만 이미 생각과 말과 글로 저지른 죄가 산을 쌓아 나는 발설지옥행 특급열차 티켓을 진작에 예매해놨다. 내 혀에 밭 갈고 과일 키우면 아주 주렁주렁 잘도 열릴 거야.

잊기 좋은 이름이란 없다는, 물 속 골리앗 작가노트는 전에도 봤었는데, 소년을 온갖 곤경 속에 내버려둔 잔인한 처사에 대한 대답은 되지 못했다.
나는 잊어야 할 이름들을 아직 너무 많이 기억한다. 때로는 잊는 게 예의이고 도리인 경우도 많다. 지워야 할 문장이 이 글 안에도 한 가득이지만 나는 지우지 않고 두고두고 부끄러워하는 쪽을 택한다. 이건 나의 문제인데 반대의 경우도 문제이긴 할 것이다.

이름이라는 이름으로 느슨하게 묶인 이 책은, 그 느슨한 정도가 너무 심해서 이름으로 관통되는 글들이 제대로 묶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별로 좋아하며 읽지 못한 것 같다.

개소리를 길게도 써놨네. 아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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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8-01 14: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야하나 말아야하나...... 정말이지 더 모르게 되었네요.

반유행열반인 2019-08-01 14:35   좋아요 0 | URL
음 알라딘에 팔지 말고 syo에게 투척해서 읽고 팔아서 그 돈으로 이자를 불려 몇 년 후에 커피값으로 내렴. 할까요. 그게 아니면 저는 조만간 팔러 달려나갈 거에요.

syo 2019-08-01 14:38   좋아요 1 | URL
뭘 그렇게 번거롭게요 ㅎㅎㅎ 기다리고 있으면 도서관에 들어올텐데요. 어차피 출간일 6개월 내 신간은 못 팔지 않나요. 11월까지는 짤 없이 보유하셔야 되요ㅎㅎ

커피값은 월급이라는 정말 어색한 그것으로 대겠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19-08-01 14:44   좋아요 0 | URL
직접 들고가서 팔면 사 주는 거 같아요. 같이 팔고 싶은 게 구병모 근작 두 권 (...)
저는 어색한 그것을 정말 가슴 뿌듯한 그것으로 읽었습니다. 겨우 책팔아 다른 책 살 궁리를 하고 있자니 다시 따박따박 길들여지는 그것 받는 자리로 얼른 갈까 하는...쥐꼬리라도 제 것이 더 커서 그때 되면 아무래도 제가 내려 들 거에요.

syo 2019-08-01 14:52   좋아요 1 | URL
긴 쥐꼬리가 짧은 쥐꼬리를 위해 희사하려는 사회는 아름다우면서도 구슬프네요..... 뒷일은 뒤에 생각하는 것이지요.

저도 김초엽 좋았지만 팔고 싶어요 ㅋㅋㅋㅋ

munsun09 2019-08-01 1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써 저랑 똑같이 팔기 생각하시군요^^
알라딘에서 구매는 하지만 회원간 팔기는 6개월 지나야 된다네요.
저도 이래저래 고민입니다.
더운 날씨 잊을 건 잊으시고 건강하게 보내세요~~

반유행열반인 2019-08-01 14:46   좋아요 1 | URL
알라딘에 팔면 절반 뚝 잘라 매입해주더라구요. 그럼에도, 언제든 달려나갈 준비를...하고 있습니다. (애란 언니 미안해...)
munsun09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 2019-12-11 2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ㅋ 방금 다 읽고 2부 노잼이라고 생각하고 별 두개 깎았는데,,, 통했다!!!

반유행열반인 2019-12-12 03:42   좋아요 0 | URL
나으 애란 언니가 이럴 수는 읍서! 하는 충격적 노잼 노유익의 기억...진작 팔아다 그 돈으로 김금희 소설 사 봤어요 ㅋㅋㅋㅋ
 
셋을 위한 왈츠
윤이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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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30 윤이형


말 그대로 미친 바람이 불어서, 창 밖 창 안 나무들이 꺾어질 듯 흔들리고 단발머리 소녀도 기저귀만 찬 발가숭이도 머리카락을 흩날린다. 그러면서도 각자 뭔가 집중해서 들여다본다. 예전에 끄적여둔 낙서가 잔뜩 담긴 스케치북, 바람에 날리는 이면지 같은 것. 습하고 무덥다. 저도 모르게 잔인한 소년이 휘두르던 줄넘기가 내던 소리를 닮은 바람 소리가 무섭다. 세상이 망하는 날의 오전같이 평화롭다. 평화는 깨지고 단발머리와 발가숭이가 싸우는 소리, 울음소리가 그런 날 아니고요, 그냥 평범한 날임을 일깨운다.
그리 많이 읽지도 않았지만 읽어도 모르겠다. 더 많이 읽어도 모를 것이다. 읽는 일 밖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읽는다.

작년에 읽은 러브레플리카와 오늘까지 읽은 이 소설 사이에는 십 년 가량의 간극이 있다. 삼십대 초반에서 사십대 초반까지 나이를 허투루 먹지 않은 작가의 문장은 날카롭게 갈리고 빛을 발하게 되었다. 온통 어둡고 외롭고 비관적인 속에서 막연하게 기대하던 것들이 제법 자신있게, 조금은 더 희망을 믿으며 자라났다. 물론 지금보다는 거친 십여년 전 이야기들도 집요하고 섬뜩하고 몽상적으로 풀어낸 재주가 보였다. 그 사이 또 어떻게 진화했을까 다음 소설집이 궁금하다.

-검은 불가사리-어려서 쓴 시, 소포로 받은 상자 속, 꿈 속 해변에서 반복되어 등장하고 화자의 눈에 박혀 모두가 외면하고 소중한 이들을 해친 불가사리. 짐작이 되는 은유이다. 불가사리와 작은 병사들의 전투도. 검은 별모양 눈동자의 시각 이미지가 강렬했다. Protect me from what I want.
-셋을 위한 왈츠-그림쟁이 삼남매의 비극의 삼각형, 삼박자의 왈츠. 셋 사이의 긴장이 잘 와닿지는 않았다. 둘도 어려운데 셋은 내게는 너무너무너무 어렵다.
-피의 일요일-와우를 한 번도 안해봐서 구체적인 이미지는 상상이 안 되지만, 게임 속 캐릭터가 바깥 조종자들에게 대항한다는 설정은 흥미로웠다.
-절규-뭉크의 그림으로 겹쳐지는 모습은 다소 식상하지만, 소리지르는 여자와 상처입히는 남자(소리지르게 하는 여자)의 감정선(레즈비언 서사?), 절규 대행이라는 이색 돈벌이 소재는 비현실적이지만 재미있었다. 퀴어 서사는 잘 영글어 나중의 루카에서 제대로 포텐이 터지지.
-DJ론리니스-디제잉을 잘 모르는 내게도 나름 비유들이 와닿았다. 이 소설은 악기들의 도서관 사이에 살짝 껴놓고 김중혁이 쓴 거라고 우겨도 나는 아마 깜짝 속았을 것 같다. 그녀 안에 작게 하반신만 잠긴 채 숨어 있던 존재는 뭔가. 좀 생경한데 또 뻔하다. 굿바이가 조금 더 세련되어진 모습 같다.
-말들이 내게로 걸어왔다-말과 말. 유치할 수 있는 말장난인데 유치하지 않았다. 쌍둥이의 질투. 언어를 지배하는 자와 그러지 못해 시기하는 자. 남의 말을 없앨 수는 있어도 빼앗아 올 수는 없잖아. 그러니 부러워할지언정 미워하진 말자. 추해.
-안개의 섬-자신이 예쁘지 않은 걸 알고,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게임 개발자 이야기. 안개섬의 나무와의 대화는 너무 예측 가능해서 김새는데. 직장에서 잘 나가고 어린 남편 있고 뭐가 불만이냐! 육체와 정신 운운하는 건 약간 상투적이지만 공감되는 부분도 없진 않았다. 내가 그래서 거울을 안 봐. ㅋㅋㅋ
-판도라의 여름-비밀을 통제하려는 강박. 그 불행에 대해 잘 그렸다. 작가는 SF소설을 쓸때도 감각이 돋보이는데, 과학과 공상에 방점을 찍는 게 아니라 인간과 관계에 대해 고민한 지점을 잘 풀어내서 그런 것 같다.

바람이 아직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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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20190726 박상영
저녁을 먹다 아홉 살 딸에게 물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나 자신을 좋아할 수 있어? 어떻게 하면 자신감을 얻을까? 애한테 왜 그런 걸 물었나 몰라.
딸은 길게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우선, 좋은 취미를 가지는 거야. 그걸 해.
그리고 남에게 베풀면서 살아.
안 될 거 같아도 뭐든 일단 해 보고.
확신에 찬 말투로 눈을 빛내며 똑부러지게 말했다.
오 나의 현자야. 지혜와 살아온 기간은 비례하지 않는구나.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지 아이는 자신감이 넘치고 대체로 행복해 보인다.
나도 그렇게 한 번 살아봐야겠네.

박상영의 두번째 소설집을 읽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불행한 사람의 이야기를 정말 웃기게 쓰는 재주가 있는 작가였다.
작가도, 재희도, 수많은 영이도, 규호도 모두 덜 불행하고 아프지 않게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심으로. 불행해야 글이 나오고 그걸 읽어야 나도 재미있지만 두 권 즐겁게 해줬으면 만족할게. 이제 좀 행복해지렴. 그 방법은 위에 나와 있습니다. 나도 아직 못해봤지만.

재희-게이친구에 대한 여성들의 판타지를 공고하게 공구리치는 또 하나의 컨텐츠랄까. 성별 성적지향 상관없이 저런 무람한 우정을 나눈 이들이 부럽다. 팩을 나눠 붙이고 서로를 위해 냉동 블루베리와 냉동 담배를 채워주며 자신의 연애 상대에 대해 밤늦도록 떠들 수 있다니. 늘 서로의 편이 되어주면서. 아니 세상에 그런 관계가 있긴 한 거야?
마이크만 잡으면 빵 터지는 케이팝 매니아. 이번 소설도 또 나왔다. 왜 훌러간 신나는 가요를 매번 눈물 흘리면서 웃기게 만드는 거지. 세 번 써 먹었으니 다음에 또 써 먹으면 레드 카드입니다. 그땐 진짜 안 웃을 거야.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젊은 작가상 책에서 봤지롱. 조금 있다 마저 한 번 더 봐야겠다.
대도시의 사랑법, 늦은 우기의 바캉스-두 편의 연작소설인데 거의 한 편처럼 읽힌다. 규호란 연인과의 시작과 끝 흥망성쇄 에필로그까지. 매번 걸림돌이 되는 카일리의 존재. 헤어진 뒤에야 그 사람이 정말 내게 필요하다는 걸 아는 일. 약간 중2병 돋는 일기장 같은 감정 표현이 넘치는데 그런 걸 아무렇지 않게 쓰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고 그게 뭐라고 부럽네.
인생을 몇 개의 글로 투척하는 이들을 보는 건 참 조마조마하다. 짧은 시간 만에 작가랑 엄청 친해진 거 같은 기분인데 다 털어 놓고 나면 다음엔 뭐 쓸 거야? 나야 재미있는데 넌 괜찮아? 괜찮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털털 털며 아항, 글이 되려고 이렇게 거지같은 일이 한가득이었구나, 책 잘 팔려서 개꿀 이제부턴 하하호호 이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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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19 1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야 재밌는 데 넌 괜찮아? ㅋㅋ 너무 동감되요 ㅋㅋ

반유행열반인 2019-08-19 18:50   좋아요 1 | URL
쟝쟝님은 괜찮아요? ㅋㅋ박상영을 향한 진실한 팬심이 감동적으로 느껴집니다.

- 2019-08-19 18:51   좋아요 1 | URL
저 진짜 너무 팬이예요 ㅠㅠㅠ 계속 써줬으면.. 그가 계속 불행했으면..(뭐????!) 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19-08-19 18:54   좋아요 1 | URL
작가가 불행할수록 재미가 비례하는 현실...잔인하고 모진 독자들ㅋㅋㅋ

- 2019-08-19 18:59   좋아요 1 | URL
다른 작가들은 모르겠는 데.. ‘영’이는 너무 상영이자낰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이 소설을 기점으로 우리 영이는 엄청 뜰테고 그럼 행복할거고 그럼 내 인생은 시궁창이니까 내 인생이랑은 멀어질거고...

반유행열반인 2019-08-19 19:01   좋아요 1 | URL
그래요. 이미 떠서 핵오브핵인싸 암흑의 핵심 코어의 코어로...멀어지라 그래...제일 헛걱정이 연예인 걱정이랑 인기 작가 걱정...나나 잘하쟈...하아...
 
산 자들 - 장강명 연작소설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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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4 장강명
작년 이맘쯤 장강명에게 꽂혀서 전작을 다 읽어버렸다. 재미있었다. 지금은 좀 식었지만 신작이 나와 읽어보았다. 알라딘의 20주년 선물로.
읽다보니 오락가락하는 기분이었다. 이게 과연...소설일까? 신문 기획 연재물 같기도 하고 소위 말하는 문학성도 떨어지고. 한편으로는 난쏘공 같은 걸 하고 싶었나? 그런데 그건 예쁘고 환상적인데. 여긴 그런게 없어. 그러다가 또 주의깊게 읽게 되고. 다 읽고나서도 모르겠다. 이런 글이 필요하긴 하다. 다만 조금 더 세련되면 좋겠다. 메시지를 담으면 왜 촌스러워지기 쉬운지 모르겠다. 어렵다.

-알바생 자르기-젊은작가상 수상집에서 읽은 걸 다시 보았다. 나는 같이 일하는 보조 비정규 인력에게 일 안 시키고 내가 다해. 그걸 나름 자랑인 줄 알았다. 나는 혜미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은영이었는지도 모른다.

-대기발령-어쩌면 해고보다 더 잔인하다. 우리가 앉은 자리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이런 식이면 안 된다. 알면서도 아직 우리 차례가 아니라고 쉽게 눈을 감는다.

-공장 밖에서-구성은 어정쩡했지만 산 자인 해고를 면한 사람들과 죽은 자인 해고자의 대립, 자본가가 아닌 같은 노동자끼리 대립하는 잔혹한 장면을 접하는 건 신선하고 불편하고 슬펐다.

-현수동 빵집 삼국지-제목은 솔직히 모르겠다. 삼국지 붙이기에 어울리진 않는다. 프랜차이즈의 허울과 자영업자의 고충을 그린 점은 좋았다. 치킨 버전이었으면 더 핫했을 것 같다. 진짜 전쟁이지.

-사람 사는 집-그나마 제일 소설 느낌나는 소설이었다.영화 귀여워도 그랬고 난쏘공도 그랬고 철거촌은 늘 디스토피아, 종말 세계처럼(나쁜 의미로) 환상적으로 그려지는 것 같다.

-카메라 테스트-이게 더 전쟁 같았다. 단 한 자리를 위해 모여든. 단 한 순간으로 모든 게 무너지는. 공채에 대한 회의를 보였던 작가의 르포가 이 소설에 압축적으로 녹아든 느낌이었다. 연예인이나 배우 오디션 같은 소재로 해도 마찬가지였을 듯.

-대외 활동의 신-이것도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었다. 사실 재미있다고 하면 안 될 것 같다. 취업 시장에서 뭐라도 내세우기 위해 허울 좋은 대외 활동에 자본가들에게 노동을 착취당하고 그렇게 길들여지다 운이 좋아야 대기업 정규직이 되어 안도할 수 있는 청춘이란. 토익을 잠깐 준비했지만 응시한 적은 없다. 대외 활동이니 공모전이니 안 해봤다. 스펙도 없이 직업 세계에 안착한 건 운좋은 일이고 감사할 일이지만... 만일 이런 세상에서 다시 취업을 하라면 과연 날 받아줄 자리가 있긴 할까.

-모두, 친절하다-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서비스 노동의 세계.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 돌아보는 건 의의가 있지만 하루 안에 우겨 넣은 모습이 작위적인 느낌이었다.

-음악의 가격-디지털 음원을 내고 딱 한 번 정산을 받았다. 만원 안팎. 데이터 없는 요금제를 쓰다보니 스트리밍보다는 다운로드 구매를 하고 최애밴드들은 아직도 시디를 구매한다. 그래서 뭐. 음악이 아니더라도 나는 수많은 재화와 용역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가. 화자의 마지막 넋두리처럼 스트리밍의 시대에 모든 서비스가 원격 제공되는 소위 4차산업혁명 사회가 되면 모든 것들이 공평한 대가를 받을 수 있을까. (애초에 그땐 우리의 필요 자체가 남아있을까. )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초반부 읽자마자 웃었다. 하하. 이거. 내 얘기. 장강명이 먼저 써버렸다. 공통점: 고3, 좆같은 급식, 개선 요구 운동, 투서, 차이점: 난 단독범행(?), 익명 투서, 그래서 안 잡힘, 우리 학교는 공립이고 교장은 이 소설 재단처럼 멍청하게 확산시키는 인물이 아니었다. 교활했다. 바로 입단속을 위해 그래그래 다 들어줄게 캄다운 전략을 취했고...이 소설처럼 달라진 것 없이 내가 졸업할 때까지 급식은 개쓰레기처럼 맛없었다. 나중에 주변 몇 아이들에게 내가 범인이라 밝히자 반응은 ‘대학 못 가면 어쩌려고’였다. 입시는 옳고 그름과 상관 없이 한국 고교생에게는 절대 가치이고 아이들이 자유인이 되지 못하고 스스로 굴복하고 예속되게 만드는 족쇄같다. 좆쇄.

친구 카페에 투서 날 남겨둔 글(유인물 원문 포함)이 있어 퍼왔다.
2002년 4월 18일(여고생아. 넌 그로부터 16년 후 이 날 둘째를 낳는단다. 알고 있니. 미래의 너로부터. )
2002.04.18.
교장 선생님께- 급식 개선을 부탁드리며 
안녕하세요. 저희는 학교를 사랑하고 선생님들을 존경하는 학생들입니다. 각설하고, 저희가 교장 선생님께 이 글을 올리는 것은 급식의 개선을 부탁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학생들의 불평과 건의가 있어왔지만 달라지는 게 없는 걸 보면 교장 선생님께서 잘 모르셔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교장 선생님께 직접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저희 학생들은 한 끼당 중식 2100원 석식 3000원씩을 내고 하루 대부분의 끼니를 '(주)아벨라고메'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아벨라고메'가 제공하는 음식은 자주 학생들의 지탄을 살만한 것들이었습니다. 최근의 예를 들어 중식 반찬에 콩나물, 떡볶이, 깍두기, 무국이 나왔습니다. 단백질은 찾아볼 수 없는 식단이며 떡볶이는 절대 반찬이 아닌 '분식'입니다. 무국에는 고기 한 점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중식 반찬 중 쥐포가 나왔었는데 심히 비리고 역한 냄새가 나서 먹지 못하고 대부분 버려졌습니다. 석식에서도 반찬이 차지할 넓은 자리에 제리포나 과일조각이 담겨있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반찬을 다 갖추고서 그런 것이 나온다면 모를까요. 이 한 면에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한 예들이 있지만...대부분 이런 식으로 부실한 반찬들이 제공되고 만족스러운 식사는 아주 드뭅니다. 급식 개선건의는 하루 이틀, 몇 주 몇 달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몇 년에 걸쳐 나온 이야기입니다. 해마다 설문조사 같은 걸 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이쯤 되었다면 업체 자체에 개선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고 업체 퇴출 및 새 업체 선정도 고려해봤어야 하지 않습니까? 저희들은 급식업체의 메뉴와 서비스, 위생상태를 볼 때 도저히 우리가 요구받는 가격에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집에서 부모님께서 싸 주시는 도시락을 먹는 게 제일 바람직하다는 것은 알지만 0교시를 위해 일찍 등교해야 하는 저희로써는 새벽같이 도시락 두 개씩을 싸는 어머니의 수고를 참을 수 없어 부득이하게 급식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밖의 음식을 집의 것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최소한 불평 없이 먹을 수준은 되야 하지 않겠습니까? 잔밥이 많이 나오는 것은 저희가 배가 불러서 그렇겠습니까? 먹을 수 없어서, 맛이 없어서 남기게 됩니다. 한창 자라날 나이에,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으며 학업에 전념 할 저희의 건강은 엉망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희는 저희의 건강을 지켜나가고 보호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이 정도 저희의 상황을 호소했으니 교장 선생님께서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시고 문제 해결에 힘써주시리라 생각합니다. 급식의 개선이 되었든 새 업체 선정이 되었든 저희 학생들이 만족하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저희는 교장 선생님께서 업체와 결탁했다는 둥의 개소리는 믿지 않습니다. 존경하는 교장 선생님께서 그러실 리가 절대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혹시 '급식에는 별 문제가 없다' 는 판단이 서실 경우, 
2주만 저희와 함께 점심을 드시길 간청합니다. 
저희는 한 달간 개선여부를 지켜보겠습니다. 그때도 지금 상황에서 별로 나아진 게 없다고 판단될 시에는 새로운 방법을 강구하겠습니다.-학교 내부적 방법이든 외부적 방법이든 폭력적이든 비폭력적이든- 지금보다는 더 과격한 방법이 동원되리라고 기대하시면 됩니다. 협박이 아니라 저희의 건강을 지키고 꼬박꼬박 내는 급식비에 합당한 음식과 서비스를 받고자하는 저희의 몸부림입니다. 
다시 한 번 급식 개선에 힘써 주실 것을 부탁드리며- 퇴임 전까지 건강하시고 무사하시길 빕니다. -분당 청년 폭도 연맹단 올림. 

일찍 끝난날 워드작성. A4용지에 20장 출력.(소규모;) 
새벽 5시 55분에 집을 나왔다. 빌어 먹을, 버스가 6시 15분에 왔다. 
6시 50분쯤 학교에 도착. 정문에 들어서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게시판에 유인물 부착. 다시 중앙 현관에 유인물 부착. 
학교에 들어서 교장실 문앞에 유인물 부착.(옆에 행정실에 수위 아저씨 
한테 걸릴까봐 열라 조마조마.) 올라가는 계단마다 몇장씩 흩뿌리고 
벽에도 부착. 2학년 교무실, 3학년 교무실 문에 부착. 급식 엘레베이터 
등등에 부착. 
아이들의 반응은 거의 폭발적이었다. 다들 2학년쪽을 의심. 
어떤애들은 아침에 오다가 남자애들 여렇이 몰려 가는걸 봤다고 함; 
곧 선생님들 임시 직원회의 소집, 각 학년 학년회장, 반장들, 학생회 임원 소집. 
교장 왈: 너희들이 원하는대로 해주겠다. 
오늘 급식 변경에 관한 안내문 나옴. 
정말 고치는지 어쩌는지는 더 두고봐야겠지만... 
용기없는 공부만 하는 교우들의 가슴에 불을 당긴 것만으로도 
흡족. 소극적이고 순종하는 태도에 다소 실망. 

00(친구 이름), 우린 세상을 바꿀수 있겠지?

졸업식날 00대상이라고, 학교 이름딴 상을 문돌이 대표로 받았다. 학교 최고상이라고 허울은 좋지만 의대 간 애들한테 외부에서 온 좋은 상 다 뿌리고 내신 좋았던 찌그래기에게 털어주는 거였다. 그 때 상을 건네는 교장에게 ‘급식 자보 기억 나세요?누가 했게요?’하고 말을 건넸다면 느와르 영화 같고 폼났겠지만 그땐 순진해서 그런 생각 못했고 이전 교장놈은 1학기 마치고 퇴임해서 다른 할배에게 받았다.

나는 좆같은 급식만 먹다 졸업했지만 다음해 급식 위탁업체가 바뀌고 그 다음해엔 직영급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세상을 바꾸었냐 하면 개뿔 나만 바뀌었다. 가끔 송곳인 척 철없이 어른들 들이받다 개까이고 얌전히 있던 다른 어른들이 총알받이 되어 탈탈 털린 내게 뒤늦게 다가와 우리가 미안해…이지랄하는 꼴을 보면서 나는 점점 말이 적어지고 결국엔 어떻게 하면 눈에 안 띄고 처박힐 수 있을까 하며 대가리만 눈 속에 처박은 꿩새끼가 되고 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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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7-24 2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브라보, 분당 청년 폭도 연맹단의 단주이자, 유일한 단원이신 열반인님을 뵙습니다.
저 필력 보소. 처음부터 끝까지 우린 널 의심할 뿐이라는 티를 팍팍 내면서도 사람을 구석으로 몰아넣는 저 포석도 좀 보소....

제가 보기에, 고3 때 기준, 열반인님의 필력은 syo같은 허접한 족속을 씹어돌리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19-07-24 22:05   좋아요 0 | URL
급식이를 맛 없는 급식으로 건드리면 나오는 포효 같은 거죠...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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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3 다니엘 글라타우어

연애소설을 즐겨보는 편은 아닌데 설정 자체가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34세, 혼인 생활 8년, 딸 하나 아들 하나, 누군가의 이메일을 기다린다.
뭐 안 비슷한 부분이 훨씬 더 많다. 에미는 아름답고 자신감이 넘친다.
레오는 최선의 끝맺음에 관해 깊이 고민한 듯하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에 곤경에 처한 인물들이 자신은 누군가 만든 이야기 속 배역일 뿐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 섬뜩한 순간을 생각보다 자주 보았다. 클리셰로 살지 않는 길. 이미 있는 이야기와 겹치지 않는 독창적인 방향 찾기. 망했다. 일곱 번째 파도는 당분간 읽지 않겠다. 나는 아홉 번째 파도(최은미)도 이미 봤거든?(...응?) 개체의 삶은 이리도 진부한 것이냐. 손끝 발끝 머리끝으로 퍼져나가는 화학물질의 작용은 그대로 즐기며 머리로는 응, 이야기네. 달달한 이야기야. 가끔 이런 걸 읽으며 정서 순화도 해줘야지.
그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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