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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지음 / 열림원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20190801 김애란
김애란의 소설을 처음 만난 여름을 생각했다. 딱 지금 같은 무렵, 2007년이었다. 통장에 든 단 130만원으로 100에 30짜리 반지하를 구해 엄마와 은거했다. 세입자 구함을 알리는 흰종이 위에는 괄호치고 100/32에어컨 이라 써 있었는데 월 2만원씩 더 내면 에어컨을 달아준다는 뜻이었다. 나와 엄마는 그 셈법이 참 어이없다고 생각했고 괄호 앞의 더 저렴한 숫자를 택했다. 주인은 반지하 옆 창고에서 아주아주 낡은 선풍기를 꺼내 빌려주었다. 여름엔 무더위, 겨울엔 결로로 인해 퐁퐁 피어나는 곰팡이에 시달렸다. 그래도 지나고 보면 주인 내외 그간 거친 수많은 집주인들 중에는 좋은 사람 축에 속했다. 1년을 못 채우고 이사 나갈 때도 그래, 더 좋은 데로 가게 된 거면 축하해줘야지 하고 배웅해줬으니.
다음 달 월세를 내기 위해 과외 알바를 구하고 비는 시간에 시험 공부를 하던 나, 20여 년동안 받은 상처가 굳다 못해 멍해져 어찌할 바를 모르고 불안에 떨면서도 돈은 벌어야겠어서 베이비시터 일을 나가던 엄마. 둘의 소일 거리를 위해 나는 돈이 생기는 대로 부지런히 책을 사모으고 피씨방에 가서 영화 파일을 다운받아 인터넷이 없는 집의 컴퓨터(동생이 그림 작업한다고 다른 짐은 다 두고 컴퓨터는 챙겨왔다)로 날랐다. 소설책은 번갈아가며 보고 영화(구타유발자 같은 거. 취항 참)는 같이 봤다.
그런 방에 살 때 그런 비슷한 방과 가난을 이야기하고, 하여간 내 처지랑 너무 맞는 이야기들을 젊은 김애란이 써준 덕에 달려라 아비를 재미있게 읽었고 위로도 받았다. 내 생애주기에 맞춰 또다른 이야기들이 속속 나와서 침이 고인다, 비행운, 바깥은 여름... 안타까워하며 슬퍼하며 여러번 읽었다. 애기를 낳고 두번째로 두근두근 내인생을 읽고는 조금 울었던 것 같다.
그렇게 자라는?늙는? 동안 전작을 다 봤으니 내 만신전 같은 책꽂이엔 당연히 김애란 코너가 있다. 산문집 소식을 듣고는 아무래도, 안 읽는게 낫겠지, 하다가도 결국 팬 된 도리로 읽고나서 후회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구입했다.
읽는 동안의 팔할 정도는 역시 내게 에세이는 맞지 않아, 2005년에 쓴 글까지 묶다니 양심 무엇, 왜 이걸 참고 읽는가, 얼른 다 읽고 벗어나 중고서점에 팔아야지 하는 시간이었다. 글쓰는 이에게는 예의 없지만 기대한 나에게는 그랬다. 다음 소설책이나 얼른 내주면 보고 싶다 하고.
제임스 설터 산문집을 보고 별로다 했던 것의 세 배 정도 더 별로였다. 특히 2부 읽는 게 힘들었다. 작가와 친한 다른 작가들, 유명 작가에 대한 그리움과 친분과 사랑이 담긴 닭살 돋는 글. 그게 뭐 그리 고까울 일이냐 싶은데 재미없고 무익하다는 생각을 못 지웠다. 그 작가들 읽어보고 싶다 하는 생각을 들게 하지 못한 게 패인 아닐까요.
각 글마다 쓰인 연도는 적혀 있는데 각 산문이 어떤 용도와 맥락으로 쓰여진 건지 밝혀줬더라면 그런 마음이 좀 덜했을 것 같다. 이미 읽은 글들이 있어서 짐작이 가는 용도도 있지만 아닌 것도 많았다. 누군가의 수상 축하, 자신의 수상 소감, 서평, 추모 등등 실린 지면과 낭독된 상황을 알려줬더라면. 그런 것 없이도 순전히 문장과 짧은 글 하나 만으로도 울리고 벅찬 사람들도 있기야 있겠지만 나는 거기 속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 소외감 넘치고 으으. 너무하다 너무해. 한 거겠지.
뒷부분에서 그래도 마음에 드는 글 몇 편을 찾아 그래, 이거 한 두편이라도 건졌으면 한 권 읽은 보람은 있지 않겠니. 끝이 좋으니 좋은 거야. 빨리 팔고 싶다고 한 거 좀 미안해 하렴 하고 아주 잠깐 반성(도 했지만 아마 곧 팔러 나가려)했다.
내가 알던 이름인 단치히와 아우슈비츠 대신 그단스크와 오시비엥침이란 발음을 알려준 부분.
연필에 얽힌 제법 길고 최근에 쓴 글이 이 책에 실린 단문 중에는 가장 마음에 들었다.
눈먼자들의 국가에 실린 글을 다시 읽을 기회가 된 건 좋으면서도 슬펐고.
아마도, 내가 브레히트의 시집’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소설집’상어가 사람이라면’을 중고로 사서 꽂아놓고 봐야지, 하게 만든 같은 사람 이야기가 나온 부분도 좋았다. 여기서 겹치는 인생, 이라 하기엔 그 두 사람과 내 접점은 전혀 없는 것에 가깝고 내가 일방적으로 바라보는 두 위인?의 만남에 대한 것이니.
스무살 때였다. 동아리방에 내가 잘 모르는 고학번 대학원생 선배 언니가 들렀다가 의자에 앉은 채 담배에 불을 붙였(나 붙이려 했)다. 나는 정색을 하며 룸은 금연이에요! 라고(다른 선배들에게 들은 대로)쏘아 붙였고, 그 선배는 이제는 그러니, 미안. 하고 담배 연기(붙였군)를 손으로 흩뜨리며 부리나케 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아마도 다시는 동아리방에 들르지 않았다.
나중에야 내가 쫓아버린 그 언니가 중고등학교 시절 마르고 닳게 듣던 모노크롬 go with the light을 피쳐링한 소리꾼인 걸 알았다. 뒤늦게 집구석에 앉아 벅스 뮤직에서 그 언니가 완창한 춘향가를 찾아 듣고 개인 홈페이지를 들락대며 언니의 글과 그림을 구경하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그 언니가 활동할 당시 상어가 사람이라면, 이라는 제목의 동아리 공연을 기획해 팜플렛이 동방 구석을 굴러다녔고, 전공 수업을 들을 때 어느 교수님이 같은 제목을 언급하며 이야기한 내용이 (지금은 기억 안나지만)인상 깊었고, 그 언니가 브레히트를 판소리로 재구성해 공연 한다는 소식만 듣고 가보진 못하면서 브레히트 책을 사 모은 것이었다. 그 언니가 하는 인디밴드 공연은 나중에 선배들을 따라 몇 번 보러갔다. 앨범 음원도 구입해 한 때 들었다.
뭐 그런 소리꾼이 김애란 작가의 소설로 판소리를 꾸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새로웠다.
나의 무지와 무례를 깨닫는 건 항상 뒤늦고 그건 사는 일에서도 책읽기에서도 항상 마찬가지다. 늦더라도 깨달으면 다행인가 싶지만 이미 생각과 말과 글로 저지른 죄가 산을 쌓아 나는 발설지옥행 특급열차 티켓을 진작에 예매해놨다. 내 혀에 밭 갈고 과일 키우면 아주 주렁주렁 잘도 열릴 거야.
잊기 좋은 이름이란 없다는, 물 속 골리앗 작가노트는 전에도 봤었는데, 소년을 온갖 곤경 속에 내버려둔 잔인한 처사에 대한 대답은 되지 못했다.
나는 잊어야 할 이름들을 아직 너무 많이 기억한다. 때로는 잊는 게 예의이고 도리인 경우도 많다. 지워야 할 문장이 이 글 안에도 한 가득이지만 나는 지우지 않고 두고두고 부끄러워하는 쪽을 택한다. 이건 나의 문제인데 반대의 경우도 문제이긴 할 것이다.
이름이라는 이름으로 느슨하게 묶인 이 책은, 그 느슨한 정도가 너무 심해서 이름으로 관통되는 글들이 제대로 묶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별로 좋아하며 읽지 못한 것 같다.
개소리를 길게도 써놨네. 아이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