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들 - 장강명 연작소설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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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4 장강명
작년 이맘쯤 장강명에게 꽂혀서 전작을 다 읽어버렸다. 재미있었다. 지금은 좀 식었지만 신작이 나와 읽어보았다. 알라딘의 20주년 선물로.
읽다보니 오락가락하는 기분이었다. 이게 과연...소설일까? 신문 기획 연재물 같기도 하고 소위 말하는 문학성도 떨어지고. 한편으로는 난쏘공 같은 걸 하고 싶었나? 그런데 그건 예쁘고 환상적인데. 여긴 그런게 없어. 그러다가 또 주의깊게 읽게 되고. 다 읽고나서도 모르겠다. 이런 글이 필요하긴 하다. 다만 조금 더 세련되면 좋겠다. 메시지를 담으면 왜 촌스러워지기 쉬운지 모르겠다. 어렵다.

-알바생 자르기-젊은작가상 수상집에서 읽은 걸 다시 보았다. 나는 같이 일하는 보조 비정규 인력에게 일 안 시키고 내가 다해. 그걸 나름 자랑인 줄 알았다. 나는 혜미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은영이었는지도 모른다.

-대기발령-어쩌면 해고보다 더 잔인하다. 우리가 앉은 자리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이런 식이면 안 된다. 알면서도 아직 우리 차례가 아니라고 쉽게 눈을 감는다.

-공장 밖에서-구성은 어정쩡했지만 산 자인 해고를 면한 사람들과 죽은 자인 해고자의 대립, 자본가가 아닌 같은 노동자끼리 대립하는 잔혹한 장면을 접하는 건 신선하고 불편하고 슬펐다.

-현수동 빵집 삼국지-제목은 솔직히 모르겠다. 삼국지 붙이기에 어울리진 않는다. 프랜차이즈의 허울과 자영업자의 고충을 그린 점은 좋았다. 치킨 버전이었으면 더 핫했을 것 같다. 진짜 전쟁이지.

-사람 사는 집-그나마 제일 소설 느낌나는 소설이었다.영화 귀여워도 그랬고 난쏘공도 그랬고 철거촌은 늘 디스토피아, 종말 세계처럼(나쁜 의미로) 환상적으로 그려지는 것 같다.

-카메라 테스트-이게 더 전쟁 같았다. 단 한 자리를 위해 모여든. 단 한 순간으로 모든 게 무너지는. 공채에 대한 회의를 보였던 작가의 르포가 이 소설에 압축적으로 녹아든 느낌이었다. 연예인이나 배우 오디션 같은 소재로 해도 마찬가지였을 듯.

-대외 활동의 신-이것도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었다. 사실 재미있다고 하면 안 될 것 같다. 취업 시장에서 뭐라도 내세우기 위해 허울 좋은 대외 활동에 자본가들에게 노동을 착취당하고 그렇게 길들여지다 운이 좋아야 대기업 정규직이 되어 안도할 수 있는 청춘이란. 토익을 잠깐 준비했지만 응시한 적은 없다. 대외 활동이니 공모전이니 안 해봤다. 스펙도 없이 직업 세계에 안착한 건 운좋은 일이고 감사할 일이지만... 만일 이런 세상에서 다시 취업을 하라면 과연 날 받아줄 자리가 있긴 할까.

-모두, 친절하다-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서비스 노동의 세계.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 돌아보는 건 의의가 있지만 하루 안에 우겨 넣은 모습이 작위적인 느낌이었다.

-음악의 가격-디지털 음원을 내고 딱 한 번 정산을 받았다. 만원 안팎. 데이터 없는 요금제를 쓰다보니 스트리밍보다는 다운로드 구매를 하고 최애밴드들은 아직도 시디를 구매한다. 그래서 뭐. 음악이 아니더라도 나는 수많은 재화와 용역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가. 화자의 마지막 넋두리처럼 스트리밍의 시대에 모든 서비스가 원격 제공되는 소위 4차산업혁명 사회가 되면 모든 것들이 공평한 대가를 받을 수 있을까. (애초에 그땐 우리의 필요 자체가 남아있을까. )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초반부 읽자마자 웃었다. 하하. 이거. 내 얘기. 장강명이 먼저 써버렸다. 공통점: 고3, 좆같은 급식, 개선 요구 운동, 투서, 차이점: 난 단독범행(?), 익명 투서, 그래서 안 잡힘, 우리 학교는 공립이고 교장은 이 소설 재단처럼 멍청하게 확산시키는 인물이 아니었다. 교활했다. 바로 입단속을 위해 그래그래 다 들어줄게 캄다운 전략을 취했고...이 소설처럼 달라진 것 없이 내가 졸업할 때까지 급식은 개쓰레기처럼 맛없었다. 나중에 주변 몇 아이들에게 내가 범인이라 밝히자 반응은 ‘대학 못 가면 어쩌려고’였다. 입시는 옳고 그름과 상관 없이 한국 고교생에게는 절대 가치이고 아이들이 자유인이 되지 못하고 스스로 굴복하고 예속되게 만드는 족쇄같다. 좆쇄.

친구 카페에 투서 날 남겨둔 글(유인물 원문 포함)이 있어 퍼왔다.
2002년 4월 18일(여고생아. 넌 그로부터 16년 후 이 날 둘째를 낳는단다. 알고 있니. 미래의 너로부터. )
2002.04.18.
교장 선생님께- 급식 개선을 부탁드리며 
안녕하세요. 저희는 학교를 사랑하고 선생님들을 존경하는 학생들입니다. 각설하고, 저희가 교장 선생님께 이 글을 올리는 것은 급식의 개선을 부탁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학생들의 불평과 건의가 있어왔지만 달라지는 게 없는 걸 보면 교장 선생님께서 잘 모르셔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교장 선생님께 직접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저희 학생들은 한 끼당 중식 2100원 석식 3000원씩을 내고 하루 대부분의 끼니를 '(주)아벨라고메'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아벨라고메'가 제공하는 음식은 자주 학생들의 지탄을 살만한 것들이었습니다. 최근의 예를 들어 중식 반찬에 콩나물, 떡볶이, 깍두기, 무국이 나왔습니다. 단백질은 찾아볼 수 없는 식단이며 떡볶이는 절대 반찬이 아닌 '분식'입니다. 무국에는 고기 한 점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중식 반찬 중 쥐포가 나왔었는데 심히 비리고 역한 냄새가 나서 먹지 못하고 대부분 버려졌습니다. 석식에서도 반찬이 차지할 넓은 자리에 제리포나 과일조각이 담겨있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반찬을 다 갖추고서 그런 것이 나온다면 모를까요. 이 한 면에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한 예들이 있지만...대부분 이런 식으로 부실한 반찬들이 제공되고 만족스러운 식사는 아주 드뭅니다. 급식 개선건의는 하루 이틀, 몇 주 몇 달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몇 년에 걸쳐 나온 이야기입니다. 해마다 설문조사 같은 걸 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이쯤 되었다면 업체 자체에 개선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고 업체 퇴출 및 새 업체 선정도 고려해봤어야 하지 않습니까? 저희들은 급식업체의 메뉴와 서비스, 위생상태를 볼 때 도저히 우리가 요구받는 가격에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집에서 부모님께서 싸 주시는 도시락을 먹는 게 제일 바람직하다는 것은 알지만 0교시를 위해 일찍 등교해야 하는 저희로써는 새벽같이 도시락 두 개씩을 싸는 어머니의 수고를 참을 수 없어 부득이하게 급식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밖의 음식을 집의 것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최소한 불평 없이 먹을 수준은 되야 하지 않겠습니까? 잔밥이 많이 나오는 것은 저희가 배가 불러서 그렇겠습니까? 먹을 수 없어서, 맛이 없어서 남기게 됩니다. 한창 자라날 나이에,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으며 학업에 전념 할 저희의 건강은 엉망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희는 저희의 건강을 지켜나가고 보호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이 정도 저희의 상황을 호소했으니 교장 선생님께서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시고 문제 해결에 힘써주시리라 생각합니다. 급식의 개선이 되었든 새 업체 선정이 되었든 저희 학생들이 만족하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저희는 교장 선생님께서 업체와 결탁했다는 둥의 개소리는 믿지 않습니다. 존경하는 교장 선생님께서 그러실 리가 절대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혹시 '급식에는 별 문제가 없다' 는 판단이 서실 경우, 
2주만 저희와 함께 점심을 드시길 간청합니다. 
저희는 한 달간 개선여부를 지켜보겠습니다. 그때도 지금 상황에서 별로 나아진 게 없다고 판단될 시에는 새로운 방법을 강구하겠습니다.-학교 내부적 방법이든 외부적 방법이든 폭력적이든 비폭력적이든- 지금보다는 더 과격한 방법이 동원되리라고 기대하시면 됩니다. 협박이 아니라 저희의 건강을 지키고 꼬박꼬박 내는 급식비에 합당한 음식과 서비스를 받고자하는 저희의 몸부림입니다. 
다시 한 번 급식 개선에 힘써 주실 것을 부탁드리며- 퇴임 전까지 건강하시고 무사하시길 빕니다. -분당 청년 폭도 연맹단 올림. 

일찍 끝난날 워드작성. A4용지에 20장 출력.(소규모;) 
새벽 5시 55분에 집을 나왔다. 빌어 먹을, 버스가 6시 15분에 왔다. 
6시 50분쯤 학교에 도착. 정문에 들어서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게시판에 유인물 부착. 다시 중앙 현관에 유인물 부착. 
학교에 들어서 교장실 문앞에 유인물 부착.(옆에 행정실에 수위 아저씨 
한테 걸릴까봐 열라 조마조마.) 올라가는 계단마다 몇장씩 흩뿌리고 
벽에도 부착. 2학년 교무실, 3학년 교무실 문에 부착. 급식 엘레베이터 
등등에 부착. 
아이들의 반응은 거의 폭발적이었다. 다들 2학년쪽을 의심. 
어떤애들은 아침에 오다가 남자애들 여렇이 몰려 가는걸 봤다고 함; 
곧 선생님들 임시 직원회의 소집, 각 학년 학년회장, 반장들, 학생회 임원 소집. 
교장 왈: 너희들이 원하는대로 해주겠다. 
오늘 급식 변경에 관한 안내문 나옴. 
정말 고치는지 어쩌는지는 더 두고봐야겠지만... 
용기없는 공부만 하는 교우들의 가슴에 불을 당긴 것만으로도 
흡족. 소극적이고 순종하는 태도에 다소 실망. 

00(친구 이름), 우린 세상을 바꿀수 있겠지?

졸업식날 00대상이라고, 학교 이름딴 상을 문돌이 대표로 받았다. 학교 최고상이라고 허울은 좋지만 의대 간 애들한테 외부에서 온 좋은 상 다 뿌리고 내신 좋았던 찌그래기에게 털어주는 거였다. 그 때 상을 건네는 교장에게 ‘급식 자보 기억 나세요?누가 했게요?’하고 말을 건넸다면 느와르 영화 같고 폼났겠지만 그땐 순진해서 그런 생각 못했고 이전 교장놈은 1학기 마치고 퇴임해서 다른 할배에게 받았다.

나는 좆같은 급식만 먹다 졸업했지만 다음해 급식 위탁업체가 바뀌고 그 다음해엔 직영급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세상을 바꾸었냐 하면 개뿔 나만 바뀌었다. 가끔 송곳인 척 철없이 어른들 들이받다 개까이고 얌전히 있던 다른 어른들이 총알받이 되어 탈탈 털린 내게 뒤늦게 다가와 우리가 미안해…이지랄하는 꼴을 보면서 나는 점점 말이 적어지고 결국엔 어떻게 하면 눈에 안 띄고 처박힐 수 있을까 하며 대가리만 눈 속에 처박은 꿩새끼가 되고 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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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7-24 2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브라보, 분당 청년 폭도 연맹단의 단주이자, 유일한 단원이신 열반인님을 뵙습니다.
저 필력 보소. 처음부터 끝까지 우린 널 의심할 뿐이라는 티를 팍팍 내면서도 사람을 구석으로 몰아넣는 저 포석도 좀 보소....

제가 보기에, 고3 때 기준, 열반인님의 필력은 syo같은 허접한 족속을 씹어돌리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19-07-24 22:05   좋아요 0 | URL
급식이를 맛 없는 급식으로 건드리면 나오는 포효 같은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