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만 사야지. 

-이제 책 안 산다. 

-산 거 다 읽고 산다. 


 내가 문화인류학자였다면, 책에 미친 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촌락의 호모 알라디누스, 호모 리디큘러스(readiculous)들의 구매 행태, 책 전염, 책탑 포틀래치 같은 것에 관해 연구해보고 싶었을 것 같다. 먼 미래 종이책이 멸종에 가까워지는 날, 역시나 멸종할 듯 말 듯 근근히 명맥을 잇는 소수 민족 책처돌이들이 (매달 책에 플렉스하는 소득으로 서점 기둥뿌리를 지탱하며) 저 무렵부터 저러고 살고 있었더라고 참고하라고… 


 11월부터 1월까지, 한 달에 읽은 책 두세 권 남짓이면 책쟁이가 책 끊은 거나 다름 없지 않습니까…그래도 살아는 집니다… 공부 열심히 잘 한 날은 상으로 조금씩 읽기로 했는데 상 받는 날이 드물다… 상 받을 만한 날은 지쳐서 쓰러져 잔다…


 직전에 올해는 안 사고 안 읽어…해 놓고 안 읽긴 하는데 샀다. 구매하고 나서 역시 알라딘 책쟁이들은 다 거짓말쟁이야… 나 포함해서… 맨날 안 산다면서 자꾸 사… 뭐 다짐하고 안 지키는게 인간의 존재 이유죠.



 집에 오니 식구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뭐야? 쌀국수야? 곰탕이야? 묻는다. 응, 책이야. 하니까 그럼 그렇지 하고 뿔뿔이 흩어진다… 중고판매자님 이 쌀국수 맛있나요? 적어도 박스 이미지는 호객에 성공했다.


 


 어제 시킨 책들, 알라딘 직배송 새 책은 한 권이고 나머지는 중고로 모셨다. 앤드류 포터는 왠지 신작 새 책으로 하나 사주고 싶었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처음 봤을 땐 전자책 빌려 봤고, 다시 종이책 살 땐 21세기북스의 구판을 모셨다. 그런데 신작 배색이랑 구판 배색이 거의 깔맞춤!!!


 초판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의 난해한 겉지를 벗겨 내면…

이렇게 상큼한 민트와 베이비핑크 속살이 드러나는데… 신간 소설집이 나름 비슷한 색채 디자인을 채택했다. 푸른색과 분홍색.


 양안다 시집도 또 샀다. 2018년, 난 두번째 아이를 낳았는데, 양안다 시인은 두번째 시집을 낳았다. 무엇이든 낳아 보세요. ‘천사를 거부하는 우울한 연인에게’ 시집은 사랑을 많이 받는지 독후감으로 검색 유입이 제법 많이 된다. 저도 양안다의 시 좋아합니다. 그치만 최애 시인은 황인찬… 양안다 시인은 두번째(울지 마)


 다윈은 모아 쌓고만 있는데 이제 ‘비글호 항해기’, ‘종의 기원’,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 월리스의 ‘말레이제도’ 다 갖췄으니 진화론이 싹튼 여행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데…(아직 안 따라감…언젠가는…)

서왕모는 고전 문학 보다 보면 가끔 나와서 제목 보니 왠지 친숙한 책이었다… 이건 그거랑 상관 없나? 뭔가 땡겨서 사고 보면 은근 팔백작님한테 세일즈 당한 책이 많다. 노승영 번역가님 책이기도 하고, 뭔 쉼표인지 따옴표인지 겁나 많은 부분인가(생략된 부분인가)…그거 직접 볼라고 삼…벽돌은 일단 쟁이는 겁니다… 착한 가격에 샀다. 


 


 패션 이과, 문과 벗어나려 발버둥 중인 놈은 자꾸 과학책을 쟁인다. 이런저런 과학책이랑, 작년에 보니까 메디컬 어쩌구 하는 책 생각보다 재밌어서 하나씩 또 모으고, 동명 영화만 들어본 잠수종(복)과 나비 책이랑 사진 잔뜩인 민물고기 책은 천 얼마 밖에 안 해서 담아 봤다.


 아, 그리고 제가 구매 내역에 스티커북 검색하면 구매건수만 100건 넘는 인간인데… (거기에 곱하기 3-5쯤 하면 얼추 권수 맞을 듯…더 될지도…현존/절판된 스티커의 과반 이상은 하여간에 사 봄) 어린이에게 밥보다 스티커를 더 먹여 육아를 날로 먹은 인간인데…이번에도 스티커를 하나 샀다. 가끔 알라딘 직배송 중고로 미개봉 스티커북을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데… 그런데 이번에 온 것은 어마어마했다.

두툼하고, 디자인도 개성있고, 작은어린이가 요즘 푹 빠진 세계지도, 국기, 국가 잔뜩 품은 스티커북이라 사 보았는데, 뭔가 큰어린이 키울 때조차 본 적 없는 시리즈였다. 


스티커도 멀쩡히 미사용으로 잘 보존되어 있고…

 스티커 붙이면 재밌겠다. 곧 작은 어린이가 다 붙였지만… 과연 이 스티커북은 언제 태어났을까요????


 


 2004년… 그냥 책도 아닌 스티커북이 무려 20년 동안 손길 닿지 않은 채 어딘가에 잠들어 있다 우리 집에 왔다. 다 붙인 스티커북을 보니… 선사시대 움집에서 나온 곡식 한줌으로 죽 쒀 먹은 것 같다… 곱게 잘 보존된 유물은 몇 분 사이 소비되었다… 저 해 벚꽃놀이 다녀와서 연애 시작한 애기 대학생 커플은 애 둘 놓고 중년배로 늙고 있다는… 저 때 태어난 애들은 재작년에 수능 봤다는… 올해 삼수생 되었다는… (나랑 친구네!!!)


 책 그만 사야지. 이제 책 안 산다. 산 거 다 읽고 산다. 오늘도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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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2-02 2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이그 참. 전 서왕모 세일즈는 안 했습니다. ㅎㅎㅎ 탱고하고 저항은 널리 알리고 싶지만 말입지요.

반유행열반인 2024-02-02 20:34   좋아요 2 | URL
이상하게 팔백작님이 난 별로…하는 게 저한테는 세일즈포인트인지 유독 기억에 남다가 어느새 사고 맙니다…ㅋㅋㅋㅋ 짐승들의 유희라든가…이것저것…

유수 2024-02-03 0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엇이든 낳아보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4-02-03 08:29   좋아요 1 | URL
우리는 유기체는 실컷 낳았으니 같이 글이나 낳을래?? ㅋㅋㅋㅋ

유수 2024-02-03 19:48   좋아요 1 | URL
글 낳고 싶어요!! 방치된 서재..

반유행열반인 2024-02-04 08:55   좋아요 2 | URL
서재야 뭐 더 방치하셔도 ㅋㅋㅋ나 좋자고 쓰는 거니까 혼자 남 안 보는데 일기 끄적이거나 저처럼 영양가 없는 구매평 나부랑이라도 ㅋㅋㅋ 더 위대해질 필요없이 진통 없는 걸로만 살살 낳아도 뭐 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4-02-03 0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반님 생지하세요?
우리앤 사탐하는 문과에요. 귀하고 쓸데 없는 문과 아이;;;

반유행열반인 2024-02-03 09:06   좋아요 2 | URL
네 생지러에 기하이 입니다 ㅋㅋㅋ 저도 전생엔 문과로 꿀빨다 (아마 첫 수능때 이과였으면 입시 실패했겠죠…) 회계하는 마음으로다 수학 과학을 하고 있습니다… ㅋㅋㅋ 오히려 이과과목 적성에 맞지 않으면 문과가 입시전략으론 나은 선택인 것도 같습니다. 화이팅 고삼이!!

새파랑 2024-02-04 23: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파곰탕면

맛없을수가 없을거 같은데요? ㅋㅋ

저도 책은 안읽어도 책은 사게 되더라구요. 이사한다고 책 많이 주고 팔고 버렸는데.... 또 사는건 왜일까요..

그놈의 기대 평점 적립금...

반유행열반인 2024-02-05 11:06   좋아요 2 | URL
책을 버리기도 하시는 군요!!! ㄷㄷ 저는 그래서 주기적으로 알라딘 앱도 지웠다 깔았다 해요. 기대평점 적립금 유혹 줄인다고 ㅋㅋ(그래놓고 적립금 안 받은 채로 또 사고…)

scott 2024-02-04 2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이 긁어 모으신 유물들 보다 제 눈엔 파곰탕면만 뙁!^^ 열반인님은 지식의 양식을 채우고 저는 낼 파곰탕면으로 배를 채워야 겠어요 ^ㅎ^

반유행열반인 2024-02-05 11:05   좋아요 1 | URL
저 국수는 코스트코만 판다더라구요? 저희집에는 곰탕맛 아닌 매운맛?인 같은 회사 것만 있어서 그냥 궁금해하기만 하고 말아야겠네요 ㅋㅋㅋ제 몫까지 맛있게 드세요!!!

북깨비 2024-02-09 15: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저 3대 거짓말을 어찌나 밥먹듯이 해댔는지 이제 남편은 들어주지도 않고 씅을 내지요...

반유행열반인 2024-02-10 09:43   좋아요 1 | URL
아니 씅은 왜 내신대요 ㅋㅋ 밥먹듯이면 좀 양호하시고 숨쉬듯이 하는 저 같은 놈도 있잖아요ㅋㅋㅋㅋ새해책많이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