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기도하고 먹어라 - 미친 듯이 웃긴 인도 요리 탐방기
마이클 부스 지음, 김현수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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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5 마이클부스.

이 책을 만난 건 작년 알라딘에서 우연히 참여하게 된 댓글 이벤트 덕이었다. (첨부 이미지 참조)
마이클 부스의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을 읽은 뒤였고, 나는 블랙유머나 시니컬한 농담을 좋아하는 편인데다 잘 모르던 북유럽에 대해 알게 해주는게 좋아서 그 책도 제법 잘 봤다. 나중에 리뷰를 보니 불만이 더 많았다. 아무래도 ‘미친 듯이 웃긴’ 이라는 수식어가 담긴 부제 때문에 다들 속았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출판사는 이번 인도 여행기에도 ‘미친 듯이 웃긴’이라는 말을 끝내 포기하지 못했는데 이게 또 패착이 아닐까 싶었다..게다가 인도 요리 탐방기, 라는 부제와 달리 뒤의 절반은 요가와 명상으로 흘러가고 마무리된다. 식도락 여행기를 바라고 읽던 사람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기보다는 개빡침을 안길 우려도 있다. 카레라이스 달라는 사람한테 카레는 당신 마음 안에 있습니다 하면 진짜 살인 나는 것이다…
아무튼 그러한 유머 코드를 가진 출판사 관계자 분 덕에 제가 황송하게도 글항아리 책을 삼십만원어치나 소장하고 이제 막 두 권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별 다섯 개는 어른의 사정으로 알고 넘어갑시다. ㅋㅋㅋ

인도는 신화와 역사와 종교와 문화와 예술과 관련해서는 궁금한 점이 많은 나라였지만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동아리 선배 중에 홀로 인도에 다녀온 언니랑, 또 나중에 배우자를 따라 인도에 잠시 살다온 언니랑, 본인이 주재원이 되어 인도에 오래 체류하게 된 오빠를 보며 신기해하긴 했다. 낯설고 한국보다 편리하지 않은 곳에 그렇게 오래 머무는 게 대단하다 난 못해...하고…
관악구의 오랜 맛집 인도음식점 옷살에 친한 사람들을 데려가 여기 맛있지, 아저씨가 자꾸 물 따라주네, 하는 정도가 내가 인도에 대해 품은 호의의 최대치인 것 같다.

그리고 자꾸만 단체로 춤을 추는 인도영화의 작위성이나…친구가 리뷰대회 같이 나가자 해놓고 쏙 빠져 혼자 꾸역꾸역 읽고 썼지만 강화길 소설가에게 까여 삐짐 지수만 잔뜩 상승한 아룬다티 로이의 지복의 성자…(구글 저서 번역에 행복한 성직자로 되어 있어서 웃김 ㅋㅋ) 그 정도가 인도 문화를 맛보기로 조금 손가락만 담근 정도…

코로나19는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만 더 세게 때려서 그 나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걸리고 죽고 한다는 소식을 들으며 인도는 더더욱 먼 곳이 되어 버렸구나, 원래도 갈 생각이 없었는데 거기 뿐 아니라 국경을 넘는 일은 당분간 어렵겠구나 하는 날들이다. 그래서 그런가 작년에 조금 읽다 덮은 여행기도 다시 펼쳐 읽으니 흥미로웠다.

마이클 부스는 서른 아홉에 중년의 위기 운운하는데 사실은 알코올 중독 문제로 배우자를 걱정하게 했다. 그때문인가, 배우자와 아이 둘과 함께 장기 인도 여행을 떠난다. 처음에는 식도락 여행을 즐기며 인도의 여러 지방을 누비고 다닌다. 대항해시대하면서 염료 향신료 향료 모은다고 간간히 들리던 항구 이름이 나올 땐 오 나 저기 잘은 모르지만 들어봄 ㅋㅋㅋ하고 반가웠다. 그런데 갑자기 배우자 리센이 이제 처먹는 여행 그만하고 내가 요기 섭외해 놨으니 거기서 몇 주 동안 수련하고 술 끊어, 안 그러면 너랑 안 살아, 하고 강력한 처방을 내려서 마이클 부스는 강제로 요가와 명상 수업을 받게 된다. 그게 의외로 좋아서 스스로 초월 명상 워크숍까지 찾아가고 영국에 돌아와서도 계속 명상과 요가를 하며 절제를 찾게 되었다-는 해피엔딩.

나도 모르게 요가 이야기가 나오면 책을 읽다 말고 유튜브에 초보 요가 쳐가지고 몇 동작을 따라하고 있었다 ㅋㅋㅋ 제대로 요가 해 본 적은 없고 위핏으로 스트레칭이나 하던 건데 휴가 동안 집에 처박혀서 걷지도 않고 백신 맞고 진통제나 삼키며 골골대다가 누워서 영상에서 시키는대로 요렇게 조렇게 몸을 조금 움직이니 기분이 좀 나아지는 것도 같았다.

그리고 책을 읽는 도중 샤워를 하다가 나는 이미 다 가지고 있고 이제 잃을 일만 남았네, 그걸 너무 슬퍼하지 말아야지, 그런데 마이클 부스는 굳이 인도까지 가야했을까? 원효대사 봐라, 뼈에 고인 썩은 물 먹고 득도하는데, 뭐 이런 생각하고 후반부를 보니 거의 똑같은 이야기가 써 있어서 아 사람의 생각이란 생각보다 다 비슷하고 특별할 게 없나 보다…아닌가 원체 걱정쟁이에 불안쟁이인 나랑 비슷한 성격의 마이클 부스라 코드가 맞는건가 나도 술주정뱅이가 될 위험은 있지 이번에 카브루에서 한정판 맥주 나왔다고 그걸 이만원 넘게 주고 앱에다 시켜서 곰탕집 가서 픽업까지 받았지 엣헴 주사 맞아서 아직 못 먹었는데… 이런 뻘 생각도 하다가 옷살에 가고 싶은데 나갈 일도 나가기도 귀찮으니, 하고 그냥 전지현이 광고하는 즉석 카레를 네 봉다리 시켰다.

내세와 업과 개인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방식의 해결책은 진보의 적이고 그래서 좌파들이 인도문화를 별로 안 좋아할 것 같긴 한데. 세상을 바꾸겠다는 인간들이 몇 번을 뒤집어놓고 혁명을 일으키고 누굴 죽이고 권력자가 바뀌어도 개인의 삶은 평온해지기는 커녕 죽거나 아프거나 더 가난해지거나 불행해지는 걸 보면, 인도식으로라도 먹을 것으로 위안 받고, 요가든 명상이든 아편이든 위안 거리가 있어야 버티는 게 삶이 아닌가 싶었다.


+밑줄 긋기
-아시아에서 가장 큰 시장(과일과 야채를 파는 부분만 10평방킬로미터)이라 알려진 이곳을 관광객들이 찾지 않는 이유가 있다. 소풍 갈 때 가져갈 맛난 것들로 예쁜 바구니를 채우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둘러볼 만한 그림 같은 시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자드푸르는 매일 5억이란 인구를 먹이기 위해 돌아가는 곳이고, 그런 광경은 절대 예쁘장할 수 없다. 썩어가는 농산물이 바닥에 흥건하게 깔려 있다. 특히 이곳의 정육점을 한번 보고 나면 웬만한 사람은 인도에서는 절대로 다시 고기를 입에 대지 못할 것이다.(71)

-나는 하루 전에 사우리시가 한 말을 떠올렸다. “델리에서 자란 사람이면 누구나 이 세상 어디서든 아무 거나 다 먹을 수 있어요.” (75)

-그날의 깨달음은 애스거의 입에서 나왔다. “우리가 이걸 머리에 하긴 했지만, 우린 원래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에요.” (88, 암리차르 시장에서 터번을 두른 뒤.)

-프랑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인도를 이렇게 묘사했다. “오래 사용해서 올이 다 드러나고 수없이 다시 꿰맨 아주 오래된 태피스트리.” 이보다 더 자이푸르를 완벽하게 표현할 순 없다. 내 눈에는 마치 16세기의 도시 하나를 통째로 발굴한 뒤, 상업이 아직도 활발하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군데군데 시멘틀르 조금씩 바르고, 싸구려 아크릴 간판 조각들을 여기저기 걸고, 비닐봉지와 돌들을 쫙 깔아놓은 것 같았다. (117)

-자식이란 크게 벌어진 상처 같은 존재다. 운명은 언제라도 그 안으로 손가락을 넣고 찔러댈 수 있다. 그리고 나처럼 가뜩이나 이런저런 일로 죄책감에 영원히 절뚝거려야 하는 사람에게, 나의 잘못된 결정으로 내 아들이 이런 식으로 고통을 당해야 한다는 사실은 정말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142)

-링의 말이 암시하는 바는 나를 개선함으로써 더 나아가 세상을 개선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비록 지극히 작디작은 요인이라 해도, 제네바호에 던진 조약돌 하나가 호수의 수위를 높일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적어도 내가 식욕과 중독 증세를 완화할 수 있다면 다른 이들에게 더 많은 조니 워커와 초콜릿 케이크가 돌아가게 될 테니 그것도 하나의 작은 시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337)

-“제가 들은 얘기인데요, 달라이 라마의 오른팔인 어떤 남자는 공중으로 몸이 떠오르는 걸 막기 위해 무거운 모자를 쓴대요.”
킴이 말했고, 그 순간 우리가 탄 오토릭샤가 도로의 움푹 팬 곳에 부딪히며 우리 셋을 공중으로 붕 띄웠다. (383)

-힌두교는 액체와 같아요. 흑백이 아니고 회색입니다. 힌두교도가 아닌 사람들은 혼란스러울 수도 있어요. 모든 개개인에게 각자의 종교를 주고자 하기 때문이죠. 아무도 소외시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아무도 소외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다소 애매모호해야만 해요. 확실한 형태를 규정지을 수 없어요.
…”뭐, 동양에서는 홀로코스트 같은 재앙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제가 여기 인도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지구상에 여기만큼 우울한 곳도 없는 것 같은데요.”
“네, 우리는 모든 걸 신에게 맡겨버렸으니까요! 그 점은 잘못됐죠. 반면에 서양에서는 모든 걸 개인에게 떠넘기죠. 오늘날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하는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당신 같은 이성주의자들은 사회의 실패가 곧 개인의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의무와 책임이 개인에게 꼭 붙어다니는 이윱니다. 인도에서는 모든 책임을 신에게 돌립니다…” (415)

-행복은 일시적이고, 덧없고, 손에 잡히지 않는다. 자기계발서에서 뭐라고 떠들어대든 간에 행복은 의지가 있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도, 포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도로 불러낼 수도 없다. 그리고 당연한 이치이지만, 때로 불행한 시간을 겪지 않고는 행복할 수도 없다. 그게 자명한 이치다. (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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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8-05 22: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매일 5억이란 인구를 먹이기 위해 돌아가는 곳/ 델리에서 자라는 사람은 아무거나 먹고 탈나지 않는 ㅋㅋㅋ 길버트 보다 더욱 현실적인 인도,먹방 인문 탐방기 인것 같습니다 ^ㅅ^

반유행열반인 2021-08-05 22:49   좋아요 3 | URL
직접 가 본 분들 덕에 방구석에 앉아서 간접 체험했네요 ㅎㅎㅎ사람 사이에 대면과 접촉과 교류가 사라지고 각자 움츠러드는 게 이놈으 감염병의 제일 치명타 같습니다…

붕붕툐툐 2021-08-05 23: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서 인도에 그렇게 베지테리안이 많았나봐요~ 저 인도여행 할 때 채식했었는데, 모든 곳에 채식 메뉴가 있어서 엄청 편하고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저는 인도에 크게 환상이 없었던 만큼 잘 먹고 잘 놀고 왔어요~ㅎㅎ
스토리 잇기 댓글이 넘 재밌네용~👍

반유행열반인 2021-08-06 07:16   좋아요 0 | URL
인도에 다녀오셨군요!!! 심지어 채식까지...진짜가 나타났다!!!!! ㅋㅋㅋ 생각해보니 요가와 명상 부분 읽을 때 음 붕붕툐툐님의 영역이다 했었어요ㅋㅋ

얄라알라 2021-08-06 00: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러니..어른의 사정으로 알고 넘어갑시다.˝ ^^ 열반인님만 구사할 수 있는 쿨한 고품격 유머^^ 좋아요좋아요!

반유행열반인 2021-08-06 07:17   좋아요 0 | URL
출판사에 보은을 해야 하는데 별이라도 후해야지 드릴 게 없더라구요 ㅋㅋㅋㅋ

새파랑 2021-08-06 0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의 저 댓글이 삼십만원짜리 댓글이군요~!!

개인적으로 왜 책 표지를 저렇게 디자인 한건지 이해가 안가네요 ㅡㅡ

반유행열반인 2021-08-06 07:1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약간 삐끕 표방한 느낌이져 저도 다 읽고서 표지 그림 누구야 하고 겉표지 뒷면 보니 한국에서 저런 짓(?)을 한 거 같아요 ㅋㅋㅋ그런데 저도 동아리 공연 포스터 같은 거 만들 때 그림판으로 더 한 거도 그려봐서 차마 욕은 못하겠고 ㅋㅋㅋㅋㅋ

라로 2021-08-06 0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또 반열샘 글에 넘어가 저 책을 질러야 한단 말입니깍??ㅠㅠ (책 안 사고 싶다고요오~~~!! 절규)

반유행열반인 2021-08-06 07:19   좋아요 0 | URL
아니 이 글을 보고 대체 왜 구매를 하신다는 겁니까 ㅋㅋㅋㅋ별 다섯 개는 예의상이고 실제로는 4.5개입니다 ㅋㅋㅋ 다 본 제 책 드리고 싶네요...(왜 멀죠 ㅠㅠ)

Yeagene 2021-08-06 11: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 리뷰도 재밌고 댓글도 재미져요 ㅎㅎ 삼십만원 값어치하는 댓글인데요 ㅎㅎㅎ 열반인님 덕에 이 책 읽고 싶어졌네요♡

반유행열반인 2021-08-06 11:39   좋아요 2 | URL
으아니 출판사에 보은하는 방향(=책 판매 촉진)이긴 한데 진짜 이웃 분께는 그냥 제 책 드리고 싶어요 ㅋㅋㅋㅋㅋ빌려보거나 저 처럼 얻어보면 쏘쏘한데 사 보면 화내는 분도(전작 보니) 생각보다 많아서요 ㅋㅋㅋㅋ

2021-08-06 1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06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06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1-08-06 1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당연한 이치이지만, 때로 불행한 시간을 겪지 않고는 행복할 수도 없다. 그게 자명한 이치다. (435)
- 저의 경우, 건강검진을 하기 위해 물도 못 마시는 금식을 하고 나니 시원하게 마신 물 한 잔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더군요.

반유행열반인 2021-08-06 14:39   좋아요 1 | URL
그러니 아프고나서 누리는 건강은 더 소중하겠지요 ㅎㅎㅎ항상 건강하시길 페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