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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죽으려고 살기를 그만두었다 ㅣ 출구 1
허새로미 지음 / 봄알람 / 2021년 3월
평점 :
-20210611 허새로미.
책 제목은 줄바꿈을 잘 보아야 한다. 죽으려고/살기를 그만두었다, 가 아니라 죽으려고 살기/를 그만두었다, 가 책의 내용이나 저자의 의도에 맞을 것이다.
친구가 허새로미 선생의 앞선 언어에 관한 책을 읽고 좋다고 해서 빌렸다. 앞서 읽은 이웃의 후기를 보고 궁금하기도 했다. 나와는 다른 삶을 선택하고 꿋꿋이 살아가는 중인 또래 여성의 혼자 되기 그리고 같이 되기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달부터 삼대 다섯 명이 한집에 사는 북적북적한 집안에서는 이십대까지 내내 느끼던 외로움을 느낄 새가 별로 없다. 그래서 가끔은 혼자가 그리운가 싶은데, 사실은 둘이 그리운 거구나 싶다. 나는 언제나 일대일의 관계가 편한 사람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수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살아간다. 나는 개를 키운 적이 있지만 다시는 개를 키우고 싶지 않다.
나를 둘러싼 사람 대부분이 좋은 사람이고 나는 그들의 배려와 인내를 먹으며 살고 있는데, 이집에서 제일 못된 사람, 가부장에 가까운 사람이 내가 되는 건 싫은데, 그렇다고 내가 혼자나 둘이 되려고 도망쳐버리면 그건 더 못할 짓이니 이 안에서 더 나은 더 좋은 구성원이 되려고 노력해야 겠다 싶다.
나에게도 원가정에서의 도피 경험이 있긴 하다. 자잘하게는 스무 살 내내 반복되던 가출이 시작이었다. 그전에도 가정폭력이 반복되는 집을 떠나고 싶은 바람은 길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대학만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싶어 밤새 술주정하는 아비와 그걸 혼자 다 당해가며 내가 시험볼 때까지만 버티자, 하는 방패가 되어준 어미를 슬퍼하며 마냥 공부를 했고 남들이 좋다 하는 대학에 갔다. 아비는 내 학력과 거기에 따라오는 과외 아르바이트 수입조차 내가 도망쳐나갈 바탕이 될 것이라 생각했는지 니가 00대생이면 다냐, 하고 내가 다니는 학교에 시비를 걸고 장학금이며 아르바이트 수입으로 모아놓은 원룸 월세 보증금 오백만원 마저 홀랑 빼앗아 버렸다. 멍청이가 자기가 그동안 한 짓을 돌아보고 고칠 생각을 해야지, 그러고는 더 미쳐 날뛰고 술을 퍼먹어서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준비하던 이맘쯤 여름에 엄마와 둘이 집을 나왔다. 그러고 오년 쯤 살다 임신으로 새 가족을 꾸릴 수 밖에 없게 되었고, 그렇게 산지 이제 십년이 되었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지 가부장제와 먼 데다 머리 좋고 착하고 돈까지 잘 버는 유니콘 같은 사람을 만났고, 아이들도 그를 닮아 착하고 똑똑하다. 이 책 처음 부분을 보는 순간 나는 저자의 딸로서의 자아에 공감하기 보다는 내가 그 딸을 힘들게 하는 엄마로서 빙의해서 굉장히 슬펐다. 지금 같은 양육 태도를 유지하다가는 상처 입고 자란 내 아이들이 나를 무척이나 원망하겠구나, 싶어 조금 더 다정해져야 한다고 매번 다짐한다. 그리고 또 소리치고 다그치며 화를 내고 또 미안해 한다. 오히려 그런 내가 스스로 나쁜 엄마라 자책하면 아이는 세상에 진짜 나쁜 엄마가 얼마나 나쁜데, 엄마는 좋은 엄마 쪽에 가깝다고 위로를 한다. 그런 나는 내 아이들에게 어서 힘을 길러서 나랑 먼 곳으로 떠나, 내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너네들 살고 싶은대로 행복하게 살아, 얼른얼른 자라, 하고 마음 속으로 빈다.
결국 나를 지탱해주는 건 내 주변에서 이런 나라도 사랑하고 보살펴 주는 사람들, 이들이 없었다면 혼자였을 나는 그렇게 꿋꿋하지도 잘 살지도 못했을 것 같다. 지금보다 덜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고마움이 운 좋음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부쩍 많이 한다. 언제든 누구나 어떤 일로든 혼자가 될 수 있는 법. 그러니 더 감사하고 더 사랑해주고 나 하나 남더라도 그런 나 하나를 사랑하는 법을 더 익히는 게 필요하겠다. 살기를 그만두길 바라는 마음보다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마음을 더 키우면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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