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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구지 지게사 - 200g, 핸드드립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1년 10월
평점 :
품절
수요일에 온 커피를 금요일 아침에 처음 마셨다. 조금 일찍(여섯 시 안 되어서) 눈이 떠졌는데 다시 잠이 안 와서, 그런데 바깥에 출근 준비에 분주한 소리에 괜히 일찍 나가서 방해하지 말자, 하고 이불 속에 가만 누워 전자책을 펼쳤다. 채털리부인의 사랑을 읽는데, 드디어 사냥터지기 멜로즈가 등장했다. 클리퍼드가 마침 코니에게 어디 가서 네가 알아서 아들 하나 만들어 와, 자식을 ‘그것’이라 칭하며 기막힌 소리를 한 직후였다. 음, 코니는 아이를 낳지는 않겠지? 나의 재미를 위해 열심히 파이팅해 보렴, 현관문 닫히는 소리에 꾸물꾸물 방 밖으로 기어나와 캡슐커피랑 아직 포장도 안 깐 새 커피 사이에 고민하다 새 커피를 깠다.
시리얼에 견과류 한 봉 툭 털어 넣고 우유 부어서 먹으면서 드리퍼에 물 뿌리면서 커피를 내렸다. 그러면서 인터넷으로 장을 보았다. 주말에 먹을 거리들, 치킨 만들어 먹어야지 하고 닭다리정육 시키고, 우유랑 과자랑 과일이랑 달걀이랑 케찹이랑 라면이랑 짬뽕이랑 떡볶이랑...먹고 사는 일은 참 끝이 없구나. 문득 돌아보니 먹는 데 굉장히 소홀한 요즘이다. 그냥 의무적으로 되는대로 배고프지 않을 만큼 겨우 먹는다. 꼬맹이들은 주중에 엄마가 챙겨줘서 그나마 다행이다. 주말에는 그냥 대충 먹인다. 알약 하나로 하루 식사 다 해결되는 시대가 나 사는 동안 올까, 그럼 그 남은 시간 뭐할거니. 왜 사니. 왜 먹는 즐거움을 모르는 거니. 나는 진짜 왜 살까. ㅋㅋㅋ
싱글 원두는 늘 무난했다. 에티오피아도 그랬다. 전에도 구지 커피 먹었던 거 같은데. 찾아보니 일 년 전 쯤 구지 모모라 라는 원두를 동백꽃 다음으로 구매했다고 한다. 겨우 일 년 전인데, 너무도 까마득히 먼 옛날 같다. 그땐, 복직 직후였고, 많은 변화가 휘몰아쳐서 지금보다 힘들었던 것 같다. 요즘은, 힘이야 들기야 하겠지만 그럭저럭 삶에 적응했다. 그냥 이게 나야. 아마 이렇게 계속 살겠지. sometimes feel so happy, sometimes feel so sad. linger on your pale blue eyes. 아무말 잔치 하네 ㅋㅋㅋ 벨벳언더그라운드 좋아했다. 듣고 가시죠. (모바일에서는 이미지나 동영상 첨부가 안 된다...어쩔 수 없이 링크만 링거링거링)
Velvet Underground - Pale Blue Eyes
https://youtu.be/KisHhIRihMY
패티 스미스 하나도 모르는데 들은 노래도 없는데 그녀의 연인이었던 로버트 메이플소프 사진에 관심이 생겨서 패티 스미스가 쓴 책 한 권 중고로 질렀다. 아마 오늘 올 것이다. 아닌가 배송조회 하니 내일 오네... 얘기는 다 읽고 나서 하는 걸로... 패티 스미스 노래 좀 찾아 들어봐야겠다.
금요일이다. 좋다. 주말은 불붙은 속눈썹 타듯 홀라당 지나갈 것이다. 아뜨뜨 하고 새 주가 또 금방 오겠지. 주말에 열심히 드립드립 하면서 허송세월하고 링거 맞고나서 한 주 맞이 해야겠다. 대부분의 사람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가 없다. 하고 싶은 걸 조금이라도 하면서 버티는 게 나 같은 커먼 피플 대부분의 삶이겠지. 먹고 싶은 원두 살 수 있고 보고 싶은 책 살 수(때론 찔금 볼 수) 있으니 인류 전체로 보자면 운 좋은, 선택 받은 삶일 것이다. 그래도 위로가 되지 않는구나. 오늘치 한 주치 아무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