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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궁전 ㅣ 안개 3부작 3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김수진 옮김 / 살림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이란성쌍둥이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너무 궁금했다. 판타지라고도 했다. 어드벤처라고도 했다. 시대적배경이나 자세한 내막도 모른채, 다만 이란성쌍둥이의 기묘한 해프닝에 대한 단서만을 붙잡고 그 단서만으로도 너무나 궁금해져버린 나였다. 어린아이들의 모험담이라니 살짝 어렸을때 봤던 영화 <구니스>나 <피터팬>을 떠올리며 맥이 풀려지려했지만, 읽기도 전에 맥이 풀리지 않는건 순전히 저자의 명성이었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9월의 빛>,<안개의 왕자>와 함께 안개 3부작으로 유명하다는 이 소설은 나를 다독이기 충분했다. 저자는 스페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무대는 인도 캘커타이다. 이 소설을 쓰기위해 인도를 충분히 방문을 했는지, 아니면 인도에서 원래 생활을 좀 하셨는지 알수는 없지만, 인도인이 아니면서 인도가 배경이고 인도인이 주인공인 소설을 쓰다니 참 의외였다.
옛날이야기를 너무나 좋아하는 내게 있어 그리스로마신화는 어렸을때부터 읽을만큼 읽어 더 이상은 신선하지 못한 이야기들이지만, 인도신화가 책속에서 조금씩 소개가 되어 너무 즐거웠다. 한을 품고 죽은 아버지의 원귀가 악마로 소환되어 쌍둥이 자식중에 한명의 몸을 뺏기위한 불사신같은 악마와, 그에 대항하는 쌍둥이와 쌍둥이의 고아원친구들, 너무 부럽기만한 <차우바 소사이어티>멤버들의 이야기이다. 원귀인 악마와 싸우는 아이들과, 아이들과 싸우는 원귀인 악마를 보면 약간 유치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의 추리나 친구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겠다는 용감무쌍한 정신과 행동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고, 복선으로 살며시 나타나는 여신들의 이야기는 말도 안되는 게임같은 스토리에 단비와 같은 상쾌함을 주기도 했다.
쌍둥이들의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지은 집의 비밀번호는 디도였다. 디도는 페니키아의 신화인데 카르타고 여왕 디도의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는 카르타고에서 신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스스로 불속으로 뛰어들어 불의 신으로 거듭났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나라마다 신화가 다르게 설명되기도 한다. 내가 들었던 아이네이아스와 관련된 그녀의 또다른 전설은 <버림받은 여인>의 모습쯤 되지않을까? 쌍둥이들이 찾아간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지은 집으로 들어갔다가 하룻밤을 보낸뒤, 친구 이언이 잠시 집을 나올때 문이 저절로 닫히며 비밀번호였던 디도에서 칼리로 바뀌어 버린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난 그 순간 움찔했다. 칼리라는 여신은 살인을 즐기는 여신이기 때문에 난 집에 남겨진 쌍둥이가 어떻게 될 지 눈치챌수 있었던 것이다. 칼리여신은 시바신의 부인이기도 하다. 항상 피에 굶주려 있어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한 피의 희생자가 많았다고 한다. 혀를 내놓고 다니며 악당을 징벌하며 그 피를 마시는 것으로 유명한 여신이었다. 책속에서 이런 복선들이 슬며시 내보여질때 움찔거리며 공포를 즐기는것은 꼬맹이들과 싸우는 철없는 귀신악마의 광대놀음에 한줄기 빛이 되기도 했다.
16살, 1900년 초기로 보자면 충분히 어른구실을 할 수 도 있었겠지만 김빠지는 설정이 아닐수 없다. 나는 궁금했다. 왜 어른을 등장시키지 않고, 아이들을 내세웠을까? 저자는 왜 그랬을까? 궁금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다 생각난 그들의 모임 <차우바 소사이어티>. 아마 어른이었다면, 자신들의 가족이나 자신들의 상황때문에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친구를 위해 목숨이 아깝지 않다 생각했더라도 결정적인 순간엔 몸을 빼버리고 말것이다. 그러나 한창 나이인 16세는 친구를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아깝지 않았으리란 생각이 든다. 저자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어른과 어른악마의 싸움이라면 좀 더 흥미진진 했을수도 있었겠지만, 이런 사춘기 소년소녀들의 심리를 꿰뚫고 이런 설정을 했다는것을 이제야 알아차렸다니 그나마 뒤늦게라도 알아챈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책을 읽으며 <차우바 소사이어티>의 모임이 너무나 부러웠다. 물론 나도 학창시절 그런 모임은 있었다. 그러나 나의 모임은 그들과는 차원이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고아이기 때문에 사회에서 꼭 살아남기위해 조직된 그들과, 잠신 걸신에 빠진 여고생들의 모임이 같을리 있겠는가. 그들은 비밀까지 공유했지만, 우리는 비밀을 공유하는듯 하면서도 결정적인것은 항상 비공개로 남겼었던, 이름마저 내비치기 허접했던 모임이었다. 야자시간에 교실한귀퉁이에서 요약노트를 생명줄인양 움켜쥐고 목이 꺾일대로 꺾여 자던때나, 책상위에 엎어져 정석에 침을 흘리며 자던 기억이나 항상 잠이 부족해 눈에 핏발이 늘 서있고, 아침식사보다는 5분의 달콤한 잠을 즐기느라 늘 배고팠던 기억속의 우리들. 허접했지만 그래도 즐거운 추억이다. 지금쯤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지 무척이나 그립다. 그리고 우리보다 차원이 틀리게 더욱 돈독했던 그들이 너무나 부럽다.
해리포터 시리즈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길들여져 있던 나에게, 이 책이 판타지라고 하면 살짝 부족한 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봤다면 판타지적 요소가 부족하다 한들 그게 큰 문제는 아니라 생각한다. <안개에 가려 보일 듯 말 듯 감춰진 미스터리를 다룬 안개3부작> 이라고 소개를 하는데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이 보여주는 안개 3부작이라면 나머지 2부작도 읽어볼만 할 것 같다. 다음에는 어떤 미스터리를 보여줄지, 다음에는 어디가 배경이 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발리우드에서 영화화 할지 헐리우드에서 영화화 할지, 영화로 제작되어도 <퍼시잭슨과 번개도둑>보다는 나을것이라 장담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제일 좋은것은 원작을 읽는것이다. 영화로도 좋겠지만, 책으로 읽는것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