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집나무
고규홍 지음, 김성철 사진 / 들녘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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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얽힌 이야기 하나

 

  도심지에서 생활하던 어린 시절, 내가 실제로 볼 수 있던 나무는 ‘앞으로 나란히’를 한 것처럼 줄을 맞추고 서있던 은행나무와 이름을 모르는 가로수가 전부였다. 그런데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학교에 입학을 했더니 교문 옆에 은행나무와는 비교도 안 되게 훨씬 큰 나무 한 그루가 하늘높이 솟아 있었다. 대뜸 조각구름이 걸린다는 커다란 나무가 바로 저 나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나무에 대한 나의 생각은 금세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어느 학교에서나 전해오는 이야기, 학교괴담의 주인공이 바로 그 나무였던 것이다. 머리를 풀어헤친 것처럼 푸른 가지들을 아래로 뻗어내린 그 나무는 밤 12시가 되면, 무서운 도깨비로 변해서 날이 샐 때까지 돌아다닌다. 만약에 그 도깨비를 만나면 절대로 다시는 학교로 돌아올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 당시 학교에서는 반별로 아침 일찍 학교 주변을 청소하고는 했었다. 우리 반이 아침 청소를 할 차례가 되었다. 제일 먼저 학교에 가보겠다는 생각으로 유난히 일찍 출근을 하셔야했던 아버지를 따라서 새벽에 벌떡 일어나 버렸다. 해가 뜨기 전, 나는 일등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학교로 향했다. 그런데 나의 발걸음은 학교의 정문이 보이기 시작하는 골목 입구에서 굳어버렸다. 어둠 사이로 희뿌연한 물체가 우뚝 서서, 휭휭거리는 바람소리에 맞추어 사납게 도리질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떠오르는 학교괴담. ‘걸음아 날 살려라’를 되뇌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일등의 꿈은 사라졌다. 해가 뜨고 날이 환하게 밝아져서야 학교에 갈 수가 있었다. 왜 늦었냐는 질문에 늦잠을 잤다는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있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뿐이다.
  어른이 되어 학교에 가보았다. 굵고 허연 줄기가 뼈대처럼 남아있는 나무를 보았다. 가지치기를 했는가보다. 오랜 세월을 어떻게 지내왔을까. 한아름이 넘게 굵었던 나무가 이제는 커버린 나의 한품에 꼭 안긴다. 나무 한 그루가 나의 지나감을 생각하게 한다.

 

이럴진대, 하물며 산사에 이르면......

 

  오랜 세월을 절간의 한 켠을 차지한 나무들이 있다. 깊은 산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오다가 절집에게 말없이 자신의 자리를 공양한 나무들이 있고, 새로 태어난 절집을 아름답게 수놓기 위해 멀리 이국의 땅에서 찾아온 나무들도 있다. 산사의 고요함과 넉넉함을 온몸으로 수행하듯 조용히 싹을 틔우는 나무들이 있고, 불법의 고매함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바꾼 나무들도 있다. 스님을 쫓아 수행과 고행의 길을 걷다가 산사로 돌아와 나무로 윤회한 지팡이도 있다. 절집나무들은 그렇게 자연의 일부가 되고, 산사의 일부가 되어 오랜 세월을 사람살이를 지켜보며 살아온 것이다.
  “절집나무”는 산사의 일부가 되어 오랜 세월 동안 사람살이를 지켜보던 절집나무들의 나무살이를 사람의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지은이 고규흥의 글과 김성철의 사진을 따라 33개의 절집에 살고있는 나무들에게 눈길을 건네다보면 어느새 나무들이 말을 건네오기 시작한다. 눈으로만 보던 나무들을 귀로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산꼭대기 절인 화암사를 찾아 오르던 오솔길에서 들려오던 풀벌레의 지저귐과 청량한 바람 소리가 사실은 세속의 번거로움을 일깨워주려는 굴참나무와 상수리나무의 목소리였음을 뒤늦게서야 깨닫고, 내소사로 가는 전나무숲의 어둠 속에서 간간히 들려오던 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스스로를 경계하지 못한 삶에 대해 회초리를 들려는 나무의 가르침이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게 된다.
  사람살이가 유한하고 고통과 시련을 동반하듯 “절집나무”의 나무살이에서도 고통과 시련의 옹이를 만나게 된다. 전쟁과 화재의 고통을 간신히 견뎌낸 나무들, 오랜 세월 열매를 맺기위해 혼신의 힘을 쏟다가 이제는 쓸쓸하게 삶의 뒤안길에 선 나무들, 단단한 바위덩어리의 한 줌 흙먼지 속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안간힘을 쓰는 나무들. 삶의 고통과 질곡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를 몸으로 느끼게 하는 나무살이이다.
  “절집나무”에는 절집나무뿐만아니라 일상의 삶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우리 주변의 나무들과 그것에 얽힌 이야기들도 재미있게 보여주고 있다. 암수가 바뀐 성균관 명륜당의 은행나무, 정원수로 자라나는 탱자나무의 특별한 모습, 나무들의 다양한 이름과 유래, 재산을 상속받아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있는 나무에 대한 이야기들은 신기함과 즐거운 웃음을 가져다준다.

 

일상에서 만나는 나무들의 새로운 의미

 

  새로운 습관이 하나 생겼다. 길을 걷다가 소나무를 만나면 꼭 다가가 솔잎의 숫자를 세어보고 소나무의 종류를 확인하기 위해 책에서 본 기억을 끄집어낸다. ‘솔잎이 두 가닥이면 육송, 여러 개의 가지가 낮게 퍼지고 있으면 반송, 잎이 세 가닥이면 수입종인 리기다소나무, 세 가닥이면서 줄기가 하얀색이면 백송으로 거의 대부분 천연기념물, 다섯 가닥이면 잣나무로 오엽송이라고도 한다.’ 이렇게해서 나무의 자세한 종류를 알게되면 친구와 비밀을 공유할 때 특별한 유대감이 느껴지는 것처럼 왠지 나무에게 더 많은 친근감이 느껴진다.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나무들이 있다. 그들은 아무런 말없이 그렇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가며 나무살이를 할 것이고, 나는 나대로 그들 사이를 건너다니며 사람살이를 할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푸르게 빛나던 잎새가 빨갛게 또는 노랗게 변하는 나무의 모습에서 내 삶의 색깔은 어떻게 물드는지 살펴보게 될 것이고, 세상사의 번잡함을 견뎌내기 힘들 때, “절집나무”의 이야기를 들으러 산사에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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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7-01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까지 사투를 벌이신 보람이 있네요. 너무너무 잘쓰셨습니다. 제가 심사위원이라면 이주의 마이리뷰에 이 글을 선정할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 책 얘기-->현재의 모습에 이르는 리뷰의 구성이 아름답기까지 하네요.

메시지 2004-07-02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과찬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마냐 2004-07-05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마태우스님의 '안목'이 장난이 아니었군요..ㅋㅋㅋ

책읽는나무 2004-07-06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정말 뽑히셨네요!!
저도 참 멋진 리뷰라고 생각했더랬는데.......^^
마태님의 안목도 대단한데요!!
지난번 제서재에서 하셨던 말씀도 예리한 분석력이라고 생각했더랬습니다...ㅎㅎ
마태님......심사위원단에 참가하세요!!
이젠 알라딘도 심사위원중 알라디너대표자도 한명정도는 같이 포함시켜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ㅎㅎ
이거 뭔말입니까??
메시지님 축하라러 와가지구선!!!.....^^

메시지 2004-07-07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