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최규석 지음 / 길찾기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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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알고 있는, 그러나 맨정신으로는 대놓고 까발리기에 거북스러운, 때묻은 일상에 대한 적나라한 파헤침. 

 

최규석의 단편집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에 대한 나의 최종 판결이다.

6편의 단편들은 각각 나름의 주제의식을 가지고 만들어진 독립된 세계이다.
‘내사랑 단백질’은 동물세계에서 공인된 살육인 육식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와 그것을 통해 인간들의 세련되게 위장된 약육강식의 비정함을 돌려 말하고있다, ‘콜라맨’에서는 은폐된 죄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리바이던’과 ‘선택’은 현대 한국 사회의 병폐들과 그것에 감염된 암울한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다, ‘솔잎’은 권력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심이 사건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작품들이 말하고 있는 주제나 인식들이 특별히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러나 이 각각의 단편들은 신선한 발상과 빠른 이야기 전개, 그리고 사실적이면서 섬뜩한 그림으로 하여금 충격을 넘어서 거부감마저 느끼게 한다. 이미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한 새로운 의미부여, 혹은 낯설게하기가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6편의 단편 외에도 아스팔트 위에서 모질게 살고 있는 민들레처럼 단편들 사이에 조그많게 놓여있는 쪽만화 세 편도 함축적이면서 최규석의 신선함과 잔혹함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밥그릇을 놓고 벌이는 정의롭지 못한 인간의 약육강식, 그러한 야만의 사회에서 야수의 가면을 벗어 던지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잔혹한 사회에서 자신이 누군지 생각해 본 적 없이 남과 비교만 해왔던 ‘플라워’의 암담한 모습이 정답없이 문제만을 던져 놓는 최규석이라는 작가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유일한 해결책의 실마리는 아닐까. 자신을 돌아보라는.....

최규석의 작품집에서 유쾌한 만화 읽기는 표면적으로 성공한다. 기발한 발상과 재치있는 그림들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서는 결코 유쾌할 수가 없는 최규석의 잔혹함이 이 작품집을 칭찬할 수밖에 없는 근원적인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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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6-18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잔혹하다... 우리 사회가 좀 많이 잔혹하죠? 이런 사회에서 좋게 사는 건 정말 위험하고 바보같은 일인가봐요. 잘 읽었어요.

비로그인 2004-06-18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감동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