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뉴 그럽 스트리트 - 생계형 작가들의 배고픈 거리
조지 기싱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1년 5월
평점 :
일개 독자가 소신발언 좀 하겠다. 나는 내 자식이 전업작가가 되겠다면 재능과 상관없이 필사적으로 뜯어말릴 것이다. 어렵지 않은 직업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래도 하루키 급의 재능이 아니고서야 전업작가는 결사 반대다. 헌데 시대 불문하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선배들을 보고도 포기 못한 작가 지망생들이 넘치는 걸 보면 작가란 직업은 참 매력적이긴 한가보다. 그런 이들이 있어 가뭄에 콩 나듯 걸작들이 탄생했다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건가. 아무튼 글쟁이들의 초라한 이상과 부당한 현실 사이에 흐르는 이념 대립을 잘 조명한 작품을 읽었다. 조지 오웰이 꽤나 존경했었다던 작가라는데, 읽어보니 과연 알 것도 같다.
여러 인물의 관계가 얽히고설켜서 요약이 쉽지는 않다. 일단 문필가인 두 남자의 개인사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주인공 재스퍼는 비평, 사설 등 돈 되는 글만을 쓰는 야심가 청년이다. 글을 기고할 수 있다면 어디든 찾아갔고, 문필업 종사자라면 누구든 관계 맺고 보는 기회주의자였다. 반면에 무명 소설가인 에드윈은 재능도 없는 데다 개복치급 유리멘탈 소유자였다. 또한 책을 쓰면서도 안 팔릴 거라며 매번 자기 비난에 빠지는 패배주의자였다. 이렇게 성격 다른 두 사람은 온갖 문인이 득실거리는 런던 바닥에서 어떻게든 글빨로 생계를 해결해야만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재스퍼는 요리조리 짱구를 굴려가며 일어서려는 반면, 에드윈은 집필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감 저하로 점점 가라앉는다.
이제는 작가들의 고충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거다. 그러니 뻔한 말들은 하지 않겠다. 이 책에 나오는 문필업자들은 글과 문학을 철저히 상품화하고 있다. 시장에서 팔리느냐 마느냐로 글의 가치를 매기는 출판계의 현실이, 모두를 싸구려 글만 양산해내는 생계형 작가로 바꿔놓았다. 가치야 어찌 됐든 팔리면 그만인 재스퍼와, 문인으로써 최소한의 자존심을 고수하는 에드윈의 가치관은 확연히 다르다. 웃기게도 에드윈이 재스퍼처럼 푼돈에 영혼을 팔지 않은 것은 그의 유리멘탈 덕분이었다. 나름 멋은 있었다만 반복되는 회피와 책임전가는 정말 보기 추했다. 오히려 대놓고 속물이었던 재스퍼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것은, 욕을 왕창 먹더라도 언제나 가족부터 챙기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이게 맞지.
분량의 절반은 두 남자를 따르는 여자들의 내용이다. 재스퍼의 생활력에 자극받은 에드윈의 아내는 남편을 향해 응원과 내조를 아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개복치 멘탈남은 저를 이해 못 해준다며 갈수록 삐딱대고 있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주제에 뭔 이해 타령만 해대는 남편의 이기심과, 사회적 지위나 체면을 포기 못하는 아내의 욕망이 화려하게 콜라보를 이룬다. 그러다 결국 별거하고 뒤늦게서야 각자의 잘못을 탓해보지만 이미 늦어버렸다는 흔한 결말. 재스퍼라고 다를 건 없었다. 그의 허세와 패기에 반해버린 메리언은 부친의 반대를 밀어내고 그와 결혼하려 한다. 허나 그녀의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자 줄곧 매달렸던 재스퍼는 결혼을 꺼려한다. 결혼해서 지금보다 더 가난해진다면 출세는 영영 불가했기 때문에. 이처럼 가난한 누군가에게는 사랑 또한 생계수단이자 상품 중 하나일 뿐이었다. 이해는 되는데 그래도 킹받네. 에잇, 퉤.
에밀 졸라처럼 조지 기싱 또한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빈민층의 삶 속에서 날것의 바이브를 뽑아낸다는 공통점 때문인지 이 둘의 글은 매우 닮아있다. 사실 보정이 안된 자연주의 문학에 세련미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현실고증을 하려거나 무언가를 풍자하려면 자연주의만 한 것도 없다는 사실. 무엇보다 이런 문학에서 다루는 인간군상이야말로 놓쳐선 안될 관전 포인트란 말씀. 아무리 재수 없고 야비하고 앞뒤가 꽉 막힌 인물이라도, 그렇게 행동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고 나면, 현실의 끔찍한 빌런들이 어째서 저 모양 저 꼴로 사는지 작게나마 이해가 된다. 여튼 다 좋았는데 읽다 보면 괜히 나까지 떨게 하는 춥고 가난한 작품이다. 겨울보다는 봄가을에 읽기를 권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