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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7년 8월
평점 :
거의 뭐 드래곤볼 급으로 유명한 작품이라 줄거리 요약은 생략하겠다. 사실 이런 유명작은 리뷰쓰기도 민망할뿐더러 워낙 많은 리뷰가 넘쳐흘러 내 글은 묻히리라 생각하지만, 읽었다는 기념으로 기록을 남기는 데에 의의를 둘 뿐이다. 나는 하루키의 작품을 ‘1Q84‘와 ‘노르웨이의 숲‘ 딱 두 작품만 읽었고, 더 이상 그의 책을 읽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나에게 하루키는 고품격 야설 작가로 각인돼버렸다. 한두 번 19금 씬이 나오면 그러려니 하겠다. 그런데 그의 섹스 묘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물론 그게 주 내용은 아니지만 이야기에 몰입 좀 해보려 하면 자꾸 섹스 장면을 언급하고 연상시켜준다. 작가가 작정하고 야설을 쓴다면 아마 화성인들도 구매해서 읽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는 섹스가 빠진 문학을 팥 없는 붕어빵처럼 보는 걸까.
여러 여자 인물들이 등장하고 주인공 주변을 맴도는데 하나같이 현실감 없는 캐릭터뿐이다. 1Q84에서도 느꼈지만 여자 캐릭터를 판타지에서 나올법한 설정으로 만들기를 즐겨 한다. 남친이 여러 여자들과 놀고 자고 하는데도, 불평 없이 지고지순한 사랑을 지키는 일편단심의 여자. 실연당한 자신을 알아주었다고 오늘 만난 남자와 섹스하는 낯선 여자. 좀처럼 생각을 읽을 수 없고, 대화도 부자연스러운데 어딘가 흡인력이 느껴져 계속 끌리는 몽환적인 여자 등등. 아니 무슨 여자가 환상의 동물 유니콘도 아니고 말야, 너무 괴리감 넘치는구만 그래. 소설은 그 시대를 반영한다는데 이 책이 쓰인 당시 일본여자들은 청순+도도+시크+섹시+순결의 매력을 모조리 다 가졌단 말인가? 진짜 그렇다면 나도 일본에 가서 살고 싶구만 그래.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작가가 환상에서 좀 벗어나셨으면.
진짜 이상한 건 이 책에 나오는 여자들은 도무지 질투심이라는 게 없다. 남친/절친이 다른 여자하고 어울리거나 잘 지내면 한국인들은 대판 싸우거나 헤어지는 게 보통인데 일본은 전혀 아니란 말인가? 요즘 일본여자들은 안 그렇겠지...? 아무튼 이런 설정도 여자를 환상의 동물로 묘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말 현실성이 너무 없군. 그리고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주인공도 대단한 쓰레기임. 많은 하렘물을 봐왔지만 이렇게 육체적으로 관계 맺는 하렘물은 진짜 비추다. 전반적으로 예쁘게 포장해놔서 그렇지 냉정하게 보면 진짜 지저분한 인물들만 모여있다.
작품의 출간 당시 세계적으로 커다란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어떻게 이런 작품이 존재할 수 있지 싶은 문화충격과 존경심을 불러일으켰다고는 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1960년대다 생각하면서 몰입해봤지만 그래도 난 잘 모르겠더라. 그때의 일본은 학생운동으로 사회를 왈칵 흔들고 뒤집던 때였다. 그래서 캐릭터들이 어딘가 결핍 증상에 정서불안 같은 형태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주인공도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며 허탄한 현실과 부딪힌다. 그리고 인물마다 아픈 사연이 있고 내상을 입어서 세상과 부분적으로 단절이 되어있다. 그래서 대부분이 결국 자살로 끝맺는다. 결과가 비슷한 걸 보면 모든 캐릭터가 주인공인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이의 부재로 인격이 형성되기도 전에 부서져버려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당하고 발 디딜 곳이 없어진 사람들의 모습이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 그래서 이 책의 다른 제목이 ‘상실의 시대‘인가 싶다. 그런데 이 책이 왜 그렇게나 인기있는지 모르겠다.
하루키는 별거 없는 일상생활도 엄청 있어 보이게 쓰는 능력자이다. 솔직히 이 작품은 사건이 발생하고도 그에 대한 내용을 주물러가는 내용이 아니라서 중반까지는 무슨 내용인지 파악이 어려워 흐릿하게 보였다. 메인 사건보다 서로 간에 감정과 내적 갈등 장면이 더 많아, 마치 여러 단편을 하나로 엮어놓은 느낌이었다. 겨우 두 작품 읽고 이런 말하면 안 되지만 대표작들을 읽었으니 할 말은 해야겠다. 글은 참 잘 쓰는데 이야기는 그렇지 못한 작가 같다. 작품마다 본인의 고뇌를 섬세하고 정교하게 다루어서 건들면 안 될 유리구슬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어쩐지 껍데기만 화려하고 알맹이는 평범하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어떤 리뷰에서는 작가가 미국의 오리지널 하드보일드 기법을 가져와서 고뇌하는 이야기는 잘 쓰지만 딱 거기까지 일 뿐이라는 글이 있었다. 하루키 팬들에겐 미안하지만 나도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거 같다. 노래로 비유하자면 가창력도 죽여주고 기교도 화려한데 감동이 오지 않는 그런 거. 이제는 그의 작품들이 고전문학의 반열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울림이 없어서 끝까지 무표정으로 읽어버렸다. 아, 19금 장면만 빼고. 섹스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기교만큼은 인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