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AD 니체 How To Read 시리즈
키스 안셀 피어슨 지음, 서정은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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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철학은 기존 사상의 정반대 지점으로 비집어 올라가 기어이 비틀어 생각하는 데서 출발한다.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는 빛과 꿈, 예언과 밝음, 그리고 여기에서 기인하는 가현성, 이해가능한 지식, 중용과 관련된 아폴론적인 세계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무정형의 흐름, 신비로운 직관, 극단과 관련된 디오니소스적인 세계를 상정하면서 아폴론적인 세계는 개별자를 대변하고, 디오니스소적인 세계는 개별성이 해체되어 자연의 근본적인 힘과 에너지로 녹아들어 그 안에서 기쁨을 향유한다고 주장한다. 니체는 비극의 영웅들은 아폴론적인 세계 속에서 시련과 고통을 분투하는 개별자로 그려지고 있지만, 실상은 개별화의 고통을 겪는 디오니소스적 영웅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근본적으로 자연으로 융합된 하나의 상태일뿐 개별성은 모든 악의 원인이므로  거부되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즉, 우리의 고통은 자연으로부터 소외되어 개인화되어 있고, 이를 인식하면서부터 고통을 당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의 비극이 감정을 정화시키는 카타르시스를 준다고 주장했지만, 니체는 비극이 주는 공포와 연민은, 파괴로 인해 얻게되는 디오니소스적 숭고미를 통해 디오니소스적 세계로 편입되는 생의 기쁨을 선사하면서 인간의 의지를 억압하고 부정하는 허무주의를 극복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통해서는 절대 진리에 대하여 정면으로 부정한다. 니체는 형이상학적 철학의 결함을 지적하면서, 사물의 기원은 그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갖는 물자체의 개념에서 기원하는 것이 아니며 세계는 승화과정을 통해 보여지는 일종의 현상이라고 단언한다. 특히 기원과 끝을 찾으려는 확실성에 대한 철학의 시도를 종교의 잔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우주의 기원, 목적 등을 묻는 질의는 윤리와 종교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우리의 시선을 왜곡시키므로 이러한 질문에 맞서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식의 개발이 아니라 새로운 철학자들이 도래하여야한다고 주장한다.


<선악을 넘어서>, <우상의 황혼> 등을 통해서 니체는 심리학과 과학의 초보 단계에서 등장하는 이성의 언어가 특정한 방식으로 사유하게 만드는 습관을 갖게 하며, 이 때문에 세계를 허구적으로 인식하게 하고, 세계를 있는 그대로 묘사할 중립적인 용어를 갖지 못한 인간의 결함으로 인해 진실에서 벗어나 비이성적 개념으로서 도덕과 형이상학을 찬양해왔다고 지적한다.


<즐거운 학문>, <이 사람을 보라> 등에서 니체는 신의 죽음을 언급한다. 니체는 세계 너머에 대한 환상이 현실의 삶과 그릇된 관계를 맺게 한다고 생각하면서 상징적인 신, 기독교적인 신은 죽었으며, 우리가 천착한 구조와 질서, 즉 신학적, 철학적 신념 등도 근거를 상실하게 되었다고 단언한다. 우주를 유기체나 기계로 보는 것, 삶을 죽음에 대립되는 것으로 보는 것, 신에 대한 허구를 물질에 대한 숭배로 대체하는 것 등에 대하여 경계할 것을 강조한다. 현세를 경멸하면서 경험하지 못한 영원한 세계를 갈구하는 대신 영원한 세계를 우리가 늘상 살아내는 유일한 현실에 아로새겨야 한다고 덧붙인다.

 

정치적 환상으로 세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삶을 다시 한번 살기 원하는 태도로 살아내는, 현재와 똑같은 삶이 반복되는 영원회귀의 개념을 삶에 적용할 것을 강조한다.

 

배후와 이면을 살피고, 의문부호와 오해를 잔뜩 지닌 채 막연하게 표현되고 있는 것들을 분석해야 한다고 믿은 니체는 집요하게, 그러므로 자기파괴에 이를 때까지 끊임없이 부정과 극단에 섬으로써 철학의 지평이 넓혀왔다. 그의 방식을 차용하자면, 인간의 개별성이 사라지는 디오니소스적 세계를 지향한다면 도대체 영원회귀의 개념까지 펼치면서 개별적 생에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사뭇 궁금해지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며, 차선은 하루 빨리 죽는 것이라는 섬뜩한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 아닌가 싶은.

 

모든 만물은 생성해왔으므로 역사적으로 철학하기가 필요하다고 단언했는데, 니체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정과 극단을 넘나들며 자기 모순과 자기 파괴의 극한까지 자신을 몰아댄 그의 삶의 이력을 분석함으로써 그를 알아가는 데서부터 출발해야한다는 생각도 든다.

 

철학교수 출신인 저자의 장점은 니체의 저작을 차례대로 소개하면서 그의 사상 읽기를 독려하는 데서 드러난다. 저자가 걸러내고 그려낸 니체가 아니라 니체 자신의 육성으로 그의 철학을 표현하도록하는 기술 방식은 친철하지는 않지만, 편견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서술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같은 철학의 문외한들에게는 저자의 전문성을 살려 니체 철학의 개요를 간단하게라도 저자의 후기 방식으로 서술하여 삽입했다면 이해도와 가독성을 훨씬 높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슬로터다이크는 니체가 자기 정당화를 위해 자기중심적 논리에 빠져 있으며 스스로가 위대한 원한의 희생자가 되었다고 주장한다..중략..니체는 끊임없이 타인에 의해 찬양받고 인정받고자 하는 사람의 태도를 취하거나 자신의 천재성을 알아주지 못하는 동시대인들 때문에 스스로를 위한 찬가를 불러댄다는 것이다. 니체는 계속해서 자신을 착취하고 자신의 활력과 지적 능력을 명성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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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의 감정수업 - 내 마음의 주인으로 살기 위한 감정 선택 훈련
게리 D. 맥케이. 돈 딩크마이어 지음, 김유광 옮김 / 시목(始木)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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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 열풍 이후 실제 감정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안내하고 실습하도록 하는 일종의 지침서격인 책이다.

 

트라우마는 비합리적인 사고 체계를 거쳐 일종의 목적을 가진 감정이 만들어낸 허상일뿐이므로, 트라우마는 없다는, 아들러의 관점을 성실히 반영한 실용서답게 매 장마다 기본 전제에 충실하다.

 

첫 장에서는 감정은 선택할 수 있으며, 일상에서 표출되는 다양한 감정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특히 감정은 평소 우리의 믿음이나 관점이 결정하는 것으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 감정이 변한다는 점을 설명한다. 바꾸어말하면 관점의 스펙트럼을 넓혀야하고,  현재 시점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여러 맥락과 중층의 진실들이 교차하며 표출된 결과라는 점을 이해하도록 강조한다.

 

또 감정 선택의 8가지 원칙으로, 감정과 생활 양식 탐구하기,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과거에 얽매이지 않기, 무슨 생각을 하는지 깨닫기, 감정의 목적을 인식하기,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기, 언어습과 바꾸기, 감정을 바꾸는 구체적인 계획 세우기 등을 제시하면서 감정을 컨트롤하기 위해서는  더 고차원적인 인지체계가 작동해야 함을 드러내고 있다.

 

다양한 감정의 목적이나 그러한 감정에 쉽게 노출되는 유형을 분석한 대목은 흥미롭다. 가령 분노는 타인이나 상황을 통제하려 하거나 경기에서 승리의 열정을 고취하기 위하여, 그리고 상대에게 복수하거나 억울한 경우 권리를 보호하려는 목적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우울의 궁극적인 목적은 '책임회피'이며 부정적인 사고 방식,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은 사람,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높은 사람, 화를 잘 내는 사람 등에서 발현율이 높아진다는 점에 주목한다. 죄책감의 목적은, 본인을 스스로 처벌해 심리적 자유를 얻기 위함, 의무를 저버리려는 목적, 스스로를 변명하기 위함. 타인에 대한 우월감을 표시하거나, 분노를 감춤 또는 자신의 선의를 입증하기 위함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불안은 위험요소는 과대평가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과소평가할 때 나타나며 나쁜 일이 벌어진다는 가정하에 행동할 때 생긴다는 점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아들러 관점을 반영하여 기쁨이나 행복도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ACE 방법을 활용하라고 제시하는데, A(인정), C(선택), E(실행)의 3가지 절차가 그것이다. 자신과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이해하고, 새로운 목적과 믿음, 감정을 선택한 후 새로운 선택을 위한 행동을 실행하라는 것이다.

 

실용서답게 아들러 철학의 기본을 소개하기 보다는 실제 감정을 다루는 기술에 대하여 집중하고 있는데, 다양한 감정의 목적과 유형을 소개하고, 실천적인 전략을 제시한 점은 긍정적이지만, 실제 실천하고 실습하는 부분이 더욱 구체적이어야 저술의 소기의 목적에 더욱 가까워지지 않을까 싶다. 덧붙여 같은 상황, 같은 감정을 두고 프로이드나 아들러식의 접근법으로 다룰 때 어떤 점이 달라지겠는지 비교하는 부분이 있다면 더 깊이 있는 저작이 되지 않을까 싶다.

똑같은 사건을 보고도 전혀 다른 감정을 느낀다면, 결국 관점이 감정을 결정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나의 감정은 나의 관점을 변화시킴으로써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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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HOW TO READ 융 How To Read 시리즈
데이비드 테이시 지음, 박현순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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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건강에 대한 개념을 정리하면서 찾아 읽게 되었다. 프로이트, 아들러가 정신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상정하고, 개인의 심리적 치유에 접근한 반면, 인간의 존재를 영적인 존재로까지 확장하면서 정신 그 이상의 접목을 통해 영혼의 치유까지 나아가야한다고 보았던, 그러므로 개인을 넘어서 민족, 사회, 역사의 치유까지 확장되는 융의 생각을 개괄적으로 알아보는 데 더할나위 없이 좋은 책이다.

 

융의 저작에서 직접 발췌한 내용을 통해 융의 목소리로 융의 주장을 정리하므로, 비교적 짧은 시간에 깊이 있게 사색하는 데 도움이 된다.

 

융은 성역할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생각과 반대로, 성역할은 심리적이며 생물학적인 영향으로 정해진다고 믿는다. 남성성과 여성성은 음과 양처럼 공존하는 것으로 여성은 주로 연결성과 사랑을 의미하는 여성 원리에 의해 지배되고, 남성은 변별력이나 인식과 관련되는 남성 원리에 의해 지배된다고 주장하면서 남성은 무의식적으로 여성적인 측면인 아니마를 가지고 있고, 여성은 남성적인 측면인 아니무스를 가지고 있는데 문화나 종교적인 의식을 통해 남성성이나 여성성은 본성으로부터 성취되는 것이라는 견해를 밝힌다. 융은 사회적인 통과의례가 희미해지면서 남성성과 여성성의 전도 또는 와해가 일어나는 점을 지적하면서 반대성의 본성이 인격에 통합은 되어야하지만 원형적인 남성성과 여성성의 보존에 방점을 찍는다.

 

융은 또한 신경증은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신경증이 우리를 치료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신과 질환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살지 못한 삶은 무의식에 축적되는데, 신경증의 발현은 편향된 정신적 에너지의 고갈을 알게 하는 동시에 치명적이고 파괴적인 상황이 임박하기 전 우리에게 경고하는 일종의 신호로 작동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신경증이 발현되지 않았다는 의미는 정신 에너를 집중하여 인간으로서의 이상적 삶, 즉 본질에 집중하는 대신 적당하게 타협하면서 살고 있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친다.

 

융에게서 무의식은 영적인 세계와 연결되는 일종의 통로로 해석되는 측면이 있다. 자아가 내면의 상들과 대화하며 확장된 의식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명상, 일기 쓰기, 묵상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꿈은 우리를 원형의 삶으로 이끄는 일종의 상징이며, 의식과 무의식을 화해시키는 장이 될 수 있다는 데서 다른 학자들과 견해가 달라진다.

 

융은 영적인 의미를 삶에 부여함으로써 정체감, 내적 현실감과 실체감을 부여하여야 하며 이것은 내면의 자기를 대면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가면을 벗어버리고 그 이상의 것을 각성하게 하는 동시에 건강의 근원이 된다고 단언한다. 융은 시, 음악, 예술, 의례, 의식 등과 같은 종교를 통해, 자아 바깥에 존재할 줄 아는 묵시이자 상징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고, 그 결과 자아중심성에서 벗어나고 합리성의 전복을 극복할 수 있다는 데까지 주장을 확장시킨다.

 

그는  우리의 병은 영혼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상징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고 진단한다. 상징적인 삶을 살지 못하므로 진부한 삶을 견디지 못해 탈출 경로를 찾기 위해 춤, 여행, 스포츠, 오락 등 온갖 형식을 만들어내 떠들석한 행위와 특별한 진기함에 중독된다고도 주장한다. 초월된 영적인 의미와 통합됨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상징과 같은 일종의 그림 언어로 이해된다면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생의 편린들은 결코 진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평범하고 소소한 삶이 인간 그 이상의 영적인 의미와 연결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통합을 추구하면서 초월을 위한 신중한 수단을 탐색해야하는 데, 그것이 약화되면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형태로 표출된다고 주장하면서 그 대표적인 예로 전쟁을 든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융은 사람들이 전쟁을 기뻐하는 모습을 포착하게 된다. 그 이유로 사람들이 전쟁을 사회나 정치의 문제로 떠넘기면서, 이성이 의례적으로 파기되는 것이 가능해지면 온갖 비합리성이 허용되므로, 마침내 전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통찰력도 발휘한다.

 

융의 주장이 다소 과학적이지 못하고, 비합리적인 주장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탈과학을 통한, 새로운 지평에서의 개인, 사회적 치유에 일종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하게 된다.

 

 합리성과 효율성에 천착하는 시대, 영적 건강의 문제가 도외시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개인을 넘어서서 우리 민족, 우리 사회의 아픔과 병적인 현상들을 이해하고, 치유하는 데 융의 앞선 생각들이  도움이 되리라는 데 확신을 준다.


사람들이 신경증에 걸리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삶이 너무나 합리적이기 때문에, 그 속에서 내가 다른 어떤 존재라는 것, 또한 그 속에서 내가 신성한 삶의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 중 한 사람으로서 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는 그러한 상징적인 생활이 결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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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8
헤르만 헤세 지음, 박병덕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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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는 일상의 지겨움과 나태함을 정면으로 반격하면서, 일상성을 위대한 깨달음과 단숨에 연결시키는 미덕을 지녔다.

 

주인공 싯다르타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고자 유일자인 아트만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며 친구 고빈다와 함께 고행자의 무리들에 합류한다.

 

싯다르타는 사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자아를 버리는 목표를 추구하지만 여의치 않자 해탈의 경지에 오른 고타마를 찾아 나선다. 부처의 경지에 오른 고타마를 만나 가르침을 받지만, 고타마 자신이 성취한 해탈의 경험은 결코 언어로 배울 수 없다는 점을 깨닫고 고타마도 떠나게 된다.

 

이후 싯다르타는 카밀라를 만나 부와 권력을 쟁취하고 육체적 즐거움에 몰입하면서 인생의 기쁨들을 만끽하며 깨달음을 추구하지만, 여전히 자아를 버리고 아트만과 일체화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카밀라를 떠난 싯다르타는 배움 짧은 뱃사공의 조수로 살아가게 된다.

 

싯다르타는 끊임없이 흐르지만, 늘 동일한 물인 강물을 바라보면서, 카밀라에게 얻은 아들을 직접 키우면서, 생의 의지대로 각성하지는 못했더라도 삶의 본능에 충실한 사람들을 마주하며 아트만과 하나가 되는 일체성을 경험하게 되고, 모두와 하나가 되는 체현 과정을 겪는다. 비록 깨달음이 없어도 주어진 일상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아트만과 온전히 통합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침내는  하나의 얼굴이었다가 모두의 형상으로 흘러가며 다시 하나로 모아지는 범아일여의 경지를 마주한다.

 

죽고, 살고, 만나고, 헤어지고, 성장하고 늙어가는 그 모든 것이 단일성과 동시성을 갖는다는 싯다르타의 마지막 고백을 통해 헤세는 따지고, 나누고, 인식하고, 분절하는 서양적 사고에 균열을 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확신하게 된다. 인식과 삶이 하나가 되도록 통합시키는 일상성의 회복을 통해 삶의 위대함과 깊은 의미를 드러내고자 하는 작가의 결연한 의지와 더불어 흐르는 강물처럼 끊어지지 않고 유려하게 이어지는 문장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감탄하게 되는 작품이다.

 

이 돌멩이는 돌멩이다. 그것은 또한 부처이기도 하다. 내가 그것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까닭은 그것이 장차 언제가는 이런 것 또는 저런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리고 항상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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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 사도신경 강해설교 그리스도교문헌총서 2
토마스 아퀴나스 지음,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사상과문화연구원 편찬, 손은실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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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의 대가답게 이해하기 쉬운 삽화를 통해 비유를 들어 풀이하는 방식이 아니라 성경 말씀으로 다시 말씀의 의미를 해석하는 정공법을 택한다. 성경의 권위에서부터 시작되는 사도신경 강해는 그러므로 오히려 담백하면서도 묵직한 울림을 준다.

 

서문에서 그는 믿음이 가장 필요한 이유로 네 가지를 꼽는데, 믿음을 통해 하나님과 연합되고, 우리 안에서 영생이 시작되며, 믿음을 통해 현재의 삶이 인도되는 동시에 믿음으로 우리가 숱한 유혹을 이겨낼 수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은 어리석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에 대하여도 우리 지성의 불완전함을 성찰하고, 자신의 이해를 넘어서는 진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하며, 누군가의 말은 어떻게 믿는지 반문하면서 믿음이 없으면 우리 삶 자체가 구성될 수 없다는 점을 되돌아본다면 보이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을 믿지 않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무엇보다 오직 한 분 하나님이 계시며, 만물의 통치자이며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데 우리가 다수의 신을 생각하는 이유로 네 가지 이유를 든다. 인간 지성의 연약함,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인간을 향한 아첨, 자녀와 친족을 향한 육적인 사랑, 악마의 악의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한 분이시고,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통치하시며 섭리하신다는 데 대한 인식이 흔들리면, 자칫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악마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믿는 마니교 같은 오류가 생길 수 있으며, 세상이 영원하다고 믿거나 또는  하나님이 선재하는 질료로 세상을 창조했다고 하는 생각에 빠질 수 있다는 데 경각심을 준다.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서 믿으면 하나님의 위대성을 인식하게 되고, 감사의식이 생기며, 역경 가운데에도 인도되고, 피조물을 바르게 사용하는 데까지 인식이 미칠 수 있게 되며, 마침내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으로 인도될 수 있다고 해석한다.

 

또한 하나님이 아버지이자 그리스도가 참된 아들이심을 믿어야 하는데, 그리스도가 선한 사람들과 차이 없는 방식으로서의 하나님의 아들이라거나 예수님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것이 아니라 피조물로 만들어졌다거나 영원이 계시지 않다거나 또는 하나님과 한 본질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식의 오류에 대하여도 성경 말씀으로 반박한다.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신, 성육신하셨다는 것에 대한 잘못된 이해도 지적한다.  예수님이 동정녀에게 태어나신 것은 동의하나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자격을 얻었다거나, 참된 육신을 가진 것이 아니라 외견상으로만 육신을 취한 것이라든지, 그리스도의 몸이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잉태된 것은 별도의 천상의 육체를 가지고, 다만 마리아를 통과할 뿐이라는 주장, 예수님께 영혼은 없다는 것 등 다양한 이단적 생각을 구체적인 성경 구절을 통해 배격한다.

 

하나님의 신성이 아니라 철저히 인성이 죽는 죽음을 경험함으로써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구원을 얻게 하신 십자가 사건을 바라볼 때, 사랑과 인내, 겸손과 순종, 땅에 속한 것들에 대한 경멸의 모범이 되신, 부끄러운 십자가를 참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고 권고한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에 대한 모든 벌을 감당하기 위하여 음부에 내려가셨고, 다시 부활하심으로써 우리도 그의 권능을 힘입어 다시 살게 되는 그 의미에 대하여도 섬세하게 되짚어준다.

 

저자는 형식적으로 되풀이하는 신앙고백으로서의 사도신경이 얼마나 위대하고 깊은 의미를 가지는지,  한 구절 한 구절씩 집요하게 탐색함으로써 말씀의 권능과 권위를 다시 인식하게 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창조, 사랑,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의 교리를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한편 아퀴나스의 강해설교를 따르다보면 연옥의 존재나 부활의 모습 등 개신교와 천주교의 교리상 차이점도 설핏 이해하게 된다. 또 교리의 중요성에 대한 자각과 동시에 지나친 논증이 오히려 말씀을 제한할 우려에 대하여도 생각하게 된다.

 

독자에게 읽히는 의미는 제각각일지라도 사도신경에 담겨진 엄청난 의미를 되짚어보면서 믿음과 신앙을 다시 점검하고, 묵상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인 것만은 분명하다.

한 사람으로 인해 죽음이 들어왔기 때문에 또한 한 사람으로 인해 죽은 자들의 부활이 옵니다...중략..영생에 있어서 첫째 요소는 사람이 하나님과 연합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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