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HOW TO READ 융 How To Read 시리즈
데이비드 테이시 지음, 박현순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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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건강에 대한 개념을 정리하면서 찾아 읽게 되었다. 프로이트, 아들러가 정신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상정하고, 개인의 심리적 치유에 접근한 반면, 인간의 존재를 영적인 존재로까지 확장하면서 정신 그 이상의 접목을 통해 영혼의 치유까지 나아가야한다고 보았던, 그러므로 개인을 넘어서 민족, 사회, 역사의 치유까지 확장되는 융의 생각을 개괄적으로 알아보는 데 더할나위 없이 좋은 책이다.

 

융의 저작에서 직접 발췌한 내용을 통해 융의 목소리로 융의 주장을 정리하므로, 비교적 짧은 시간에 깊이 있게 사색하는 데 도움이 된다.

 

융은 성역할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생각과 반대로, 성역할은 심리적이며 생물학적인 영향으로 정해진다고 믿는다. 남성성과 여성성은 음과 양처럼 공존하는 것으로 여성은 주로 연결성과 사랑을 의미하는 여성 원리에 의해 지배되고, 남성은 변별력이나 인식과 관련되는 남성 원리에 의해 지배된다고 주장하면서 남성은 무의식적으로 여성적인 측면인 아니마를 가지고 있고, 여성은 남성적인 측면인 아니무스를 가지고 있는데 문화나 종교적인 의식을 통해 남성성이나 여성성은 본성으로부터 성취되는 것이라는 견해를 밝힌다. 융은 사회적인 통과의례가 희미해지면서 남성성과 여성성의 전도 또는 와해가 일어나는 점을 지적하면서 반대성의 본성이 인격에 통합은 되어야하지만 원형적인 남성성과 여성성의 보존에 방점을 찍는다.

 

융은 또한 신경증은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신경증이 우리를 치료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신과 질환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살지 못한 삶은 무의식에 축적되는데, 신경증의 발현은 편향된 정신적 에너지의 고갈을 알게 하는 동시에 치명적이고 파괴적인 상황이 임박하기 전 우리에게 경고하는 일종의 신호로 작동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신경증이 발현되지 않았다는 의미는 정신 에너를 집중하여 인간으로서의 이상적 삶, 즉 본질에 집중하는 대신 적당하게 타협하면서 살고 있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친다.

 

융에게서 무의식은 영적인 세계와 연결되는 일종의 통로로 해석되는 측면이 있다. 자아가 내면의 상들과 대화하며 확장된 의식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명상, 일기 쓰기, 묵상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꿈은 우리를 원형의 삶으로 이끄는 일종의 상징이며, 의식과 무의식을 화해시키는 장이 될 수 있다는 데서 다른 학자들과 견해가 달라진다.

 

융은 영적인 의미를 삶에 부여함으로써 정체감, 내적 현실감과 실체감을 부여하여야 하며 이것은 내면의 자기를 대면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가면을 벗어버리고 그 이상의 것을 각성하게 하는 동시에 건강의 근원이 된다고 단언한다. 융은 시, 음악, 예술, 의례, 의식 등과 같은 종교를 통해, 자아 바깥에 존재할 줄 아는 묵시이자 상징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고, 그 결과 자아중심성에서 벗어나고 합리성의 전복을 극복할 수 있다는 데까지 주장을 확장시킨다.

 

그는  우리의 병은 영혼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상징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고 진단한다. 상징적인 삶을 살지 못하므로 진부한 삶을 견디지 못해 탈출 경로를 찾기 위해 춤, 여행, 스포츠, 오락 등 온갖 형식을 만들어내 떠들석한 행위와 특별한 진기함에 중독된다고도 주장한다. 초월된 영적인 의미와 통합됨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상징과 같은 일종의 그림 언어로 이해된다면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생의 편린들은 결코 진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평범하고 소소한 삶이 인간 그 이상의 영적인 의미와 연결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통합을 추구하면서 초월을 위한 신중한 수단을 탐색해야하는 데, 그것이 약화되면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형태로 표출된다고 주장하면서 그 대표적인 예로 전쟁을 든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융은 사람들이 전쟁을 기뻐하는 모습을 포착하게 된다. 그 이유로 사람들이 전쟁을 사회나 정치의 문제로 떠넘기면서, 이성이 의례적으로 파기되는 것이 가능해지면 온갖 비합리성이 허용되므로, 마침내 전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통찰력도 발휘한다.

 

융의 주장이 다소 과학적이지 못하고, 비합리적인 주장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탈과학을 통한, 새로운 지평에서의 개인, 사회적 치유에 일종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하게 된다.

 

 합리성과 효율성에 천착하는 시대, 영적 건강의 문제가 도외시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개인을 넘어서서 우리 민족, 우리 사회의 아픔과 병적인 현상들을 이해하고, 치유하는 데 융의 앞선 생각들이  도움이 되리라는 데 확신을 준다.


사람들이 신경증에 걸리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삶이 너무나 합리적이기 때문에, 그 속에서 내가 다른 어떤 존재라는 것, 또한 그 속에서 내가 신성한 삶의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 중 한 사람으로서 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는 그러한 상징적인 생활이 결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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