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임재 연습 : 국내 최초 완역본 - 단조로운 일상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로렌스 형제 지음, 임종원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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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궁극적인 결과는 성화라고 얼핏 듣기는 했지만, 성화의 구체적인 모습이 무엇인지 제대로 가늠하기에는 일천한 믿음을 갖고 있기에 항상 그 구체적인 실상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물론 성경의 많은 믿음의 선진들을 통해 성화의 모습을 어느 정도 추상할 수는 있었지만, 일상에서 하릴없이 부유하고 있는 습관적인 또는 문화적인 믿음(?)을 관통하는 어떤 모범을 마주하고 싶은 것은 모태 신앙을 가진 나에게는 어떤 갈망 같은 것이었던 것 같다. 


로렌스 형제는 나의 오랜 소원을 한번에 성취해 준 본보기인 동시에 나의 믿음이 표류하는 까닭을 정확히 짚어주는 메트로놈 같은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이 책은 맨발의 까르멜수도회에서 부엌 일이나 잡다한 일들을 맡아 행하던 로렌스 형제와 드 보포르 대수도원장이 주고 받은 편지, 그리고 로렌스 형제가 남긴 메모 등을 모아 그의 사후에 출간한 것으로, 어떻게 소박하고 굳건한 믿음으로 일생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임재를 맛보는 영광된 삶이 가능한지 보여준다. 


로렌스 형제는 가난한 가문에서 태어나 잠시 전쟁에 나가 군 복무를 하기도 하고, 은행가의 사환으로 근무하기도 했지만, 세속을 떠나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수도원에 귀의한다. 세상의 이력으로 보면 보잘 것 없는 그는 수도원에서도 허드렛일을 맡아 처리하는 데 그의 믿음에 수도원장은 물론 주변 성도들이 감탄한다. 한마디로 그의 믿음은 꾸미는 말이나 위선적인 행동을 벗어나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놓치지 않은 방법은 무엇인지 삶으로 보여주었으며, 믿음의 실력은 결국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내가 아니라 한나님의 입장에서 사유하고 행동하며 하나님께 삶의 주도권을 내어드리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가르친다. 


로렌스 형제의 글이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의 모든 믿음의 발로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일 것 같다. 주인의 말을 듣는 종의 위치에서 수행하는 복종을 넘어서서 사랑하기에 나를 버리고 주님을 의지하고자 하는 순종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그의 행적을 쫒으면 당연하게 터득할 수 있다.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그가 골방에 앉아 몇 시간 씩 기도하는 대신 일상의 모든 순간에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시도했다는 점이다. 하나님이시라면 이 상황에서 내게 무엇을 요구하실까, 묻는 질문보다 오히려 그의 대화는 수많은 기쁨과 감사, 영광스러움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 차 잇었다는 점. 


심리학적 긍정성과 다른 점은, 그는 싫고 좋은 것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하나님께 심취한 나머지 자신의 모든 언동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할까 봐 조바심을 냈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병상에 누워 있을 때도 그는 그의 육체적 고통과 그에 대한 자신의 대응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까 고민하느라, 주변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정말 아픈 것인가 의심할 정도였다니 영성이 육체의 고통에만 몰입하지 않도록 어떻게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추측할 수 있을 정도다. 


하나님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계시고 오직 믿음만으로 기뻐하고 만족하며 십자가를 지고 고난받는 것에 익숙하라는 당부와,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 우리를 정화시키시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자신을 맡기고 포기하지 말고 주님의 문을 두드리는 한편 하나님을 아는 것을 본분으로 삼으라는 격려는 잠잠하면서도 강력한 일침이 된다.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순간에도, 심지어는 불신앙과 죄악을 저지르는 순간에도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이야기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대화해야 하며 끊임없이 정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성급함과 충동성을 버리고 부드럽고 차분하게 행동하며 어느 때든지 하나님을 경배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누려야 하며 나의 모든 수고를 받아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이러한 모든 행위는 믿음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항상 어떤 미덕이 필요하고 어떤 죄악에 쉽게 넘어지는지 주의 깊게 살피라고 다진다. 


하나님을 혼자 계시게 하지 말라는 역설에서 하나님을 향한 깊은 사랑이 느껴진다. 그는 천상의 보좌를 버리고 죄인과 함께 하고 싶어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기에, 그 믿음의 행보는 도전이 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기의 믿음을 살아 있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시때때로 너무나 적은 믿음을 보여 주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각종 규율과 행실에서 믿음을 취하는 대신, 날마다 변덕스럽게 오락가락하는 수준 낮은 헌신에 기대는 모습은 실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살아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기본 정신이요, 아주 높은 수준의 완전함으로 우리를 인도하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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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의 힘 - 지리는 어떻게 개인의 운명을, 세계사를,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가 지리의 힘 1
팀 마샬 지음, 김미선 옮김 / 사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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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이 의식을 결정한다는 주장에 빗대어 본다면 이 책의 저자는 지리, 즉 땅이 우리의 정치, 경제, 역사 등 삶의 좌표를 상당 부분 결정한다고 단언한다. 산맥, 하천망 등 지리적 요인은 단순히 우리가 살아가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는 것이며, 기후, 인계, 통계, 문화, 지역, 천연 자원에 대한 접근성 등 또한  총체적으로 지정학적인 지리적인 요인에 포섭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요인들을 바탕으로 국제적 현안을 접근할 때 현상의 실체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책 전반에 걸쳐 사례를 들어 실증한다. 


저자는 해양 강국을 꿈꾸며 다양한 민족을 통합하고 영유권 분쟁을 마다 않는 중국의 속내, 지리적으로 축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전략적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한편 막강한 해군력, 에너지 자급 자족 등을 내세우며 패권을 휘두르는 미국, 지리의 이점과 단점에 따라 이합집산하면서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유럽연합, 넓은 지형과 풍부한 천연 자원이 있어 주변국을 상대로 경제 전쟁을 필살기로 내세우지만 부동항이 없어 해상권 장악에서 미흡한 러시아, 높은 산맥과 험준한 지형으로 인해 발전이 저해되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된 후 풍부한 자원과 광활한 지리적 요건이 오히려 분쟁의 요건이 되고 있는 아프리카, 종교와 지리, 강대국의 계산속 때문에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는 중동, 인도와 파키스탄의 갈등과 경쟁에 영향을 미친 지리적 특성, 북극을 둘러싼 각국의 첨예한 경제 및 외교의 실상 등을 상세히 설명함으로써 지정학적 세계관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역설한다. 


무엇보다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입장은 아무래도 눈길을 뗄 수 없었다. 한반도의 위치와 군사 기지 등의 지정학적 현실을 살피다보면 한반도 긴장에만 집중할 수 없는 것이 대만과 중국의 갈등이 가시적으로 촉발되는 시점에서 제주도를 기점으로 강대국 간 전선이 우리 나라에서 형성될 수도 있다는 추론마저 들었다. 북한의 위협 뿐만 아니라 주변국의 긴장 상태를 면밀하게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각성할 수 밖에 없다. 


저자가 2편을 통해서 드러낼 지정학적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까, 통찰력 있는 대담한 시각과 근거 중심의 설득력 높은 자료들이 어떤 하모니를 보여줄 것인지 기대된다. 또 저자가 책의 도입부에서 언급했듯이 단순히 지리뿐만 아니라 인구 특성, 기후, 문화 등의 지정학적 측면을 고려할 때 세계 각 지역의 운명을 어떻게 예측하고 진단할 수 있을 것인지 보다 총체적인 연구서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생긴다. 

실제로 역사를 다룬 저술이나 오늘날 국제 문제를 다룬 보고서들에서 자주 도외시되는 것이 바로 국내외 정치의 근간을 이루는 물리적 현실이다. 확실히 지리학은 무엇 못지 않게 왜 라는 질문의 근간을 이룬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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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사회 - 왜 우리는 삶에서 고통을 추방하는가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이재영 옮김 / 김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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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삶에 대한 희구가 어느 때보다 높게 솟구치는 요즘인데, 우리가 삶에서 고통을 추방하고 있다니 저자의 진단은 얼핏 보면 어떤 도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더구나 이러한 현상은 이미 상당히 진척되기라도 한 것처럼 "왜"일까 그 이유를 따져 물으니 도저히 책을 펼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도처에서 '고통스럽다'는데, '고통을 추방하고 있다'는 지적은 열뜬 이상주의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의견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우리의 생에서 자연스럽게 배태되는 고통이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나아가 성과주의와 결합하면서 어떻게 각색되고 재편되는지 명확하게 기술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고통을 피해야 한다는 공포에 휩싸여 고통을 감수할 용기를 잃어버리고 삶의 영역에 드리워진 고통을 외면하는 데 놀라운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이해 당사자 간의 고통을 피하려는 움직임은 진통 정치로 이어져 탈민주주의를 가속화하고, 권력을 스마트하게 변모시킨다. 물리적인 힘으로 대표되던 권력의 속성은 푸코가 지적한 규율과 감시 제도 속에서 고통 없는 권력을 행사한다. 여기에 더해 성과주의를 덧입은 개인은 스스로를 규율하고 감시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내면의 독재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 


또 고통을 직면하여 그 의미를 일깨우고 성찰적 삶을 돌아보도록 추구해야 할 예술과 문화는 소비 및 상업주의와 결탁하여 적당한 즐거움만 주는 데서 그치면서 동일한 것의 변주만 생산해내고 있다고 소개한다. 


긍정 심리학은  고통 회피의 사명을 충실하게 실천한다고 본다. 즉 모든 초점을 기분과 감정에 맞추고 그 궤도에서 일탈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있는 힘껏 몰아낸다. 덧붙여 디지털 아비투스를 갖춘 현대인은 머무름이나 성찰, 서사를 통해서 고통에서 만들어내는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능력이 미미해져 모든 것들을 타자화하면서 마침내 무감각한 상태로 나아간다. 이러한 무감각은 현대인의 최고 목표인 행복으로 가는 길목에서는 방해물 같은 존재이기에 기분의 고양을 위해 무언가를 끊임없이 탐닉하고 더 큰 자극을 추구하며 마침내 중독의 험로로 나아간다는 것. 


니체가 고통 속에서 더 나은 건강을 찾은 것과 달리 우리는 고통을 피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보니 우리의 고통은 육체적 의미로만 축소되고 고통의 문제는 결국 의학의 문제인 것처럼 한정된다고 진단한다. 작가는 고통을 피하려는 노력 탓에 건강은 지상 목표가 되어가고 진통과 마취는 당연한 건강 기제로 작동한다고 본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바이러스가 나타나자 코로나 사회 속에서 삶의 모습은 순식간에 면역을 앞세우며 생존의 삶으로 변모했다고 서술한다. 오직 생존을 위해서 바이러스의 고통을 피하려는 모든 노력을 경주하면서 건강 전문가가 현상의 진단을 독점하는 한편 삶은 생과 사의 측정 가능한 도식 내지는 데이터로 치환되었다는 점을 또렷하게 인식시킨다. 


저자는 고통의 억압과 은폐는 삶의 변화, 발전, 창조의 가능성을 차단하면서 사랑, 소통, 연대, 공감을 하지 못하도록 작동하기에 결국 우리는 상실하며 고립될 뿐이라고 주장한다. 고통의 추방은 더 좋은 삶에 대한 고민을 위축시키고 삶의 의미는 오로지 죽음이 아니라는 것으로 안심한다는 역자의 후기야 말로 고통 자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다루는 전략이 가져오는 가장 큰 폐해일 것이다. 


고통의 포효가 들리지 않았던 것은 고통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을 대상화하므로 고통을 은닉하고 회피하기 때문이라는 지적, 가슴을 후벼파는 일갈이다. 

행복장치는 사람들을 개별화하고 사회의 탈정치화와 탈연대화를 초래한다. 각자가 스스로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행복은 사적인 문제가 된다. 고통 또한 개인적인 실패의 결과로 해석된다. 그래서 혁명 대신 우울이 있다...중략..진통사회는 고통을 의학적 문제로, 사적인 문제로 만들어 탈정치화한다. 이를 통해 고통의 사회적 차원을 억압하고 은폐한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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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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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자 마자 바로 책을 찾아보았다. 불안과 불화, 불확실성과 혼돈이 침착된 세계는 여전히 출렁이는데, 문학은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호기심도 일었고, 내게는 생소한 노르웨이 출신의 작가라는 이력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놀랍게도 작가는 삶과 죽음, 그리고 살아감과 죽어감이 무엇인지 요한네스라는 인물을 통해 대담하게 그려냈다. 의미와 이유를 찾는 데 익숙해진 현대인이 정말 잊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 가르치기라도 하듯 작가는 소박한 어부의 일대기를 통해 의미가 아니라 존재를, 이유가 아니라 생과 사의 근원을 탐색하면서 자의식 과잉 탓에 존재 자체가 어려워진 의식의 틈새를 예리하게 파고든다. 


1장에서는 요한네스의 탄생이 그려진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은 요한네스는 올라이의 아들로 태어나는데, 세상의 전부였던 엄마와 분리되어 추운 세상으로 혼자 나와 모든 사람들과 분리되어, 언제나 혼자로 살면서 모든 것이 지나가면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리라는, 올라이의 독백 속에서 탄생한다. 올라이는 태어나서 살고 죽어가는 그 모든 것이 무에서 무로 돌아가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무 이상의 무엇이 드리워지는데 그것이 신의 영혼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요한네스의 탄생 순간, 공간을 파고드는 소리와 고요함은 뒤섞여 서로 연결되면서도 떨어져 새로운 고요한 소음으로 나아간다. 작가는 생명의 탄생 시점에 드리워진 일상의 소리들이 변화해가는 과정을 표현하면서 서로 어우러지면서도 독립적으로 배치되는 시공간의 역설적인 질서를 명민하게 드러낸다. 


2장에서는 어느 날 요한네스가 침대에서 일어나 겪은 기묘한 일상이 주제가 된다. 평소와 달리 몸이 가볍다고 느끼는 요한네스는 오랜 친구 페테르를 만나고 꽃게를 사러 올라오는 안나를 마주친다. 또 오래 전 죽은 아내 에르나와 조우한다. 소천한 게 확실한 페테르센을 만나는 가 하면, 젊어 세상을 떠난 누이 마그나도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주변인들과의 만남 뒤로는 요한네스의 어부로서의 삶이 배경이 된다. 그는 지나온 모든 일상 속에서 그들을 다시 일상의 한 단편으로 만나게 된다. 살아 생전 서로 머리를 잘라주었던 페테르와 다시 약속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는 방금 보였던 에르나가 갑자기 사라지는 데 놀라고 막내 딸 싱네가 자신을 모른 채 스쳐 지나가며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과정을 통해 점점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막내 딸 싱네가 죽은 요한네스를 발견하고 의사를 부르고 사위를 부르는 동안 요한네스는 다시 찾아온 페테르를 만난다. 


페테르는 죽음을 지각한 요한네스를 배로 이끌어 새로운 세계로 데려가는 인물로 현신하는데, 이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새로운 몸을 잠깐 돌려받았다고 고백한다. 페테르는 다음 세상은 어떤 장소가 아니며 너와 나의 구분이 없으면서도 요한네스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거기에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거기에서는 언어가 사라지고 페테르와 그는 그 자신이면서 동시에 아니기도 한, 모든 것이 하나이면서도 서로 다른, 그러므로 차이가 없고 모든 것이 고요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담백한 줄거리를 더욱 진중하면서도 웅장하게 진동시키는 문학적 재미는 아무래도 문체일 것 같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마침표를 찍지 않고, 대화나 생각은 쉼표로 구획하면서 주인공의 일대기, 즉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는 문장으로 이어나간다. 독서의 재미를 더하는 장치는 제목도 한 몫 하지 않을까 싶다. 그는 요한네스의 삶을 그리면서 아침과 저녁으로 종결하고 낮을 과감하게 생략한다. 그럼에도 요한네스의 낮은 일곱 남매를 키우고 아내와 사별하며 친구와 마을 사람들과의 일상이 반복되는 시간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요한네스의 삶에서 낮은 그저 지나가는 시간이었을 뿐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살고 죽는 그 과정은 요한네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 모든 생의 전환 과정에 포섭되므로 낮 시간 동안의 그의 삶은 존재 양식에 충실했던 것으로 이해되어 어떤 알 수 없는 충만감이 가슴에 차오른다. 


살고 죽는 것의 숭고함이 타자화 되고 삶에 대해 지나친 의미화를 추구하는 천착이,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요즘, 이 책이 주는 울림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유별난 구석이 있었지만, 자애롭고 선한 분이었어요, 그리고 아버지의 삶이 녹록지 않았다는 걸 저도 알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늘 속을 게워내야 했죠. 하지만 아버지는 자애롭고 선한 분이었요,싱네는 생각한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 하늘에 흰 구림이 떠간다, 그리고 오늘 바다는 저리도 잔잔하고 푸르게 빛나는데, 싱네는 생각한다, 요한네스, 아버지, 요한네스, 아버지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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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덕의 기술
벤자민 프랭클린 지음, 조지 L. 로저스 엮음, 정혜정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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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서 체득하는 한 가지 진리는 선포하는 것과 증명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영역이라는 것.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주장대로 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진실하고 온전한 삶이 있을까 생각하던 터에 우연히 <덕의 기술>을 읽게 되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인쇄공에서 출발하여 신문 발행인이 되었고, 작가, 과학자, 정치가, 교육자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면서 젊은이들에게 <덕의 기술>을 써서 선한 삶을 사는 방법을 가르치고 싶다는 열망을 가졌지만, 워낙 방대한 일들을 처리해야 했기에 뜻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다행이도 그의 삶에 깊이 공감한 저자가 그의 편지, 메모, 수필, 콩트 등을 읽으면서 프랭클린이 의도했던 바와 매우 유사한 이 책을 펴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삶의 매 단계를 거치면서 행운이나 횡재를 바라는 대신 선한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성실과 정진으로 나아갔고, 자신 앞에 놓은 과제를 진득하게 성취해 나갔다. 그야말로 말과 행동을 일치하는 삶을 끊임없이 희구했다. 


그는 선하게 살라고 구호만 외치는 대신 명확한 방법과 대안을 설정해서 실천했기에 자신이 터득하고 증명한 덕의 원칙을 세워 가르침을 준다. 그가 일생을 통해 세운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람은 덕 있는 삶,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 때만 행복하다. 둘째, 덕을 쌓기 위해서는 좋은 계획과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사람들은 진정한 이익과 정반대의 길로 갈 때가 많다. 넷째, 올바르게 번 돈은 은혜일 수 있지만, 그 반대는 항상 재앙이다. 닷섯째, 올바르게 생각할 때 올바르게 행동이 나온다. 여섯째, 건강은 되찾기보다 지키기가 훨씬 쉽다. 일곱째, 행복은 마음에서 솟아난다. 여덟째, 진실과 정직이 부족하면 모든 것이 부족하다. 아홉째, 이웃과 잘 지내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인생이 훨씬 만족스럽다. 열번째, 모든 인간 관계 가운데 가장 지속적이고 만족스러운 관계는 가족이다. 열한번째, 덕 있는 삶의 열매는 늙어가면서 더욱 분명해진다. 열두번째, 신앙은 행위를 규제하는 강력한 기준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위와 같은 덕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구체적인 실천 덕목을 13가지로 정하고 이를 지키고 평가할 체크표를 만들어 다이어리처럼 체계화했다는 것이다. 매일 자신이 정한 실천 덕목의 실행에 대하여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스스로 평가하면서 삶을 내실 있게 다녀나간 것. 


그가 덕의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정한 13가지 덕목은 절제, 침묵, 질서, 결단, 절약, 근면, 진실, 정의, 중용, 청결, 침착, 순결, 겸손으로, 각각의 덕목을 대표하는 실천 사항을 정했다. 


먼저 그는 과식과 과음을 삼가고, 타인과 자신에게 이로운 것 외에는 말을 삼가도록 훈계했다. 또 모든 물건은 제자리에 정돈하고 모든 일은 정해진 시간을 지키며 해야 할 일은 하기로 결심하고, 결심한 일은 반드시 행하도록 강조했다. 타인과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 외에는 지출을 삼가고 시간을 헛되이 쓰지 말고 항상 유익한 일을 행하며 필요없는 행동은 하지 말라고 경계하는 한편 남을 일부러 속이려 하지 말고 순수하고 정의롭게 생각하면서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고 구체화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응당 돌아갈 이익을 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극단을 피하고 원망할 만한 일을 한 사람조차 원망하지 말라고 스스로를 가르쳤다. 몸과 옷차림, 집안을 청결히 하고, 사소한 일, 일상적인 사고, 혹은 불가피한 사고에 불안해하지 말며 건강이나 자녀를 갖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성 관계를 삼가도록 원칙을 정했다. 마지막으로 예수와 소크라테스를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플랭클린은 독자적으로는 이러한 개인적인 원칙을 성실히 다져가면서도  동시에 절친들과 함께 전토라는, 서로의 발전을 지향하는 작은 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도덕, 정치, 철학에 대한 토론을 나누면서 삶에 대한 통찰력을 키워나갔다. 


그의 탁월한 점은 개인을 넘어서 사회 공동체를 통해 선한 삶의 선순환 체계를 만들어가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의 삶을 철저하게 종교와의 일치에도 조준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는 만물을 만든 한 분의 신이 계시고 선한 사람이 되고 선행을 하는 것이 영원한 영혼을 가진 인간이 신을 기쁘게 하는 방편이라고 굳게 믿었기에 그의 믿음은 그의 말과 행동,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강력한 규제이자 기준이 되는 척도가 되었다. 


그는 과학자의 특성을 살려 맹목적인 신앙이 아니라, 이성과 철학의 관점에서 자신만의 신앙관을 만들어가면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지만, 여전히 인간의 일에 활발하게 개입한다고 논증하는 등 성찰적 믿음을 견지했다. 


그는 선한 삶의 목표를 세우고,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으로 균형 잡힌 삶의 원칙을 정한 후 실천해야 할 덕목을 추출해 끊임없이 평가하고 피드백함으로써 개인의 삶을 정갈하게 정돈하면서도 선한 지적 공동체와의 꾸준한 교류를 통해 다양한 분야에 대한 통찰적인 식견을 갖출 수 있도록 삶의 체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자칫 물질적이고 단편적인 삶으로 표류할 수 있는 원칙과 덕목의 원천을 신앙으로 잇대어 견고히 함으로써 절도 있는 삼각 구조를 설립했다. 


벤자민 프랭클린을 통해 왜 그가 미국인이 존경하는 인물인지, 그리고 치열한 삶을 살아낸 영웅이 어떤 토대 위에서 초기 미국의 체계를 세워나갔는지 가늠하게 된다. 이 책은 단순한 자기 계발서를 넘어서는 그 무언가를 훌륭하게 담아내고 있다. 

나는 어려움을 극복할 때 종이를 반으로 나눠 한쪽에는 찬성, 다른 쪽에는 반대라고 적습니다. 3-4일 정도 생각을 하면서 여러 가지 동기에 따라 짧은 생각을 적습니다. 그렇게 찬성과 반대의 이유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되면 각각의 무게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서로 무게가 같은 것끼리 지웁니다. 찬성하는 이유 하나와 반대하는 이유 두 가지의 무게가 같다면 이 세 가지를 지웁니다..중략..이렇게 무게가 같은 것끼리 지우고 나서 하루 이틀 정도를 더 생각합니다. 새로운 이유가 떠오르지 않으면 결정을 합니다. 비록 이유의 무게를 판단하는 게 어려울 수 있지만, 각각의 이유를 비교해서 생각하다 보면 모든 것이 확실히 보여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급한 마음도 줄어듭니다. 실제로 나는 이런 등식에서 큰 장점을 발견했는데 나는 이것을 ‘도덕의 대수학‘이라고 부릅니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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